매일신문

세월 겹겹 쌓아올린 '인생의 하모니'…시니어합창단 '운경 유(遊) 앙상불'

60세 이상 남녀 단원 52명으로 구성, 전공자·비전공자 어울려 멋진 화음
주 2회 가곡·가요·팝 등 합창곡 연습…정기 연주회, 위문 공연 활발한 활동

시니어 합창단.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시니어 합창단.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지난 11월 4일 서울롯데콘서트홀에서 있었던 대한민국합창대제전 공연 모습.
지난 11월 4일 서울롯데콘서트홀에서 있었던 대한민국합창대제전 공연 모습. '운경 유앙상불' 제공

지난 3일(화요일) 오전 10시 대구 중구청 강당 대기실. 긴 검은색 치맛자락의 우아한 드레스를 입은 여성들과 검은색 바지에 흰색 상의·셔츠, 검은색 나비 넥타이를 한 깔끔한 차림을 한 남자들이 목청을 가다듬는다. 그 옆에서 화장을 하면서 옷을 여미는 여성 단원도 있다. 또 다른 단원은 종이를 꺼내 뚫어져라 악보를 보며 나지막이 노래를 읊조린다.

중후한 목소리의 남자와 꾀꼬리 같은 목소리를 내는 여성의 화음은 멋진 하모니를 이룬다. 9시에 리허설을 했지만 안심이 안 된 듯 긴장한 표정을 하고 있는 단원도 있지만 대부분은 즐겁고 행복한 모습이다. 이들은 시니어합창단 ' 운경 유(遊) 앙상불'이다.

오전 10시, 차례로 입장한 합창단은 피아노 반주에 맞춰 그동안 갈고 닦았던 노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박영호 지휘로 '치술령에서', '사공의 그리움' 등을 불러 큰 호응을 받았다. 특히 박 지휘자가 치술령에서의 얽힌 전설을 들려주고 노래를 부르자 뭉클하고 처연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객석에 앉은 관객은 대부분 할머니들. 트로트만 즐겨들었던 할머니들은 가곡을 부르자 신기한듯 귀를 쫑긋세운다. 여자 단원의 소프라노와 알토, 남자 단원의 테너와 베이스가 번갈아 가며 당겼다 놓았다, 때론 빠르게 느리게 노래를 하자 흥이 나는지 어깨를 들썩인다.

노래를 마치자 할머니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께 앙코르를 외친다. 이날 공연은 앙코르로 끝으로 마무리했다.

공연에 앞서 연습에 열중인 남자 단원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공연에 앞서 연습에 열중인 남자 단원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액티브시니어를 위한 새로운 일자리, '운경 遊(유)앙상블'

운경 유 앙상블은 올 3월 창단했다. 액티브 시니어를 위한 정부의 문화 콘텐츠 노인일자리사업으로 창단된 운경 유 앙상블은 공개 모집과 1, 2차 오디션을 거쳐 60세 이상의 남녀 52명(소프라노 15명, 알토 18명 등 여자 33명, 테너 8명, 베이스 11명 등 남자 19명)의 단원으로 구성돼 있다. 평균 연령은 67.4세, 최고령자는 78세. 가장 어린 단원은 60세다. 교회 성가대나 가곡교실, 합창단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음악을 전공한 단원도 12명이나 된다. 직업도 교사, 공무원, 경찰, 사업 등 다양하다.

앙상블 합창단은 지난 5월 28일 계명대 아담스채플에서 첫 연주를 가진 이후 10월 4일 대만국제보컬축제 'Happy50 Choral Carnival', 10월 9일 대한민국환경합창제, 10월 18일 대구세계합창제, 그리고 11월 4일 대한민국합창대제전 등에 출연해 갈채를 받았다. 또한 병원, 교회, 복지시설 등의 시민들을 위한 찾아가는 음악회도 가지며 활발한 연주활동을 하고 있다.

앙상블 합창단은 '음악도시 대구, 공연도시 대구'라는 문화콘텐츠를 접목한 새로운 개념의 노인일자리 사업이라는 점에서 특히 주목을 받고 있다. 시니어를 중심으로 전문 합창단을 구성하고 공연하면서 활동비를 지급하는 노인일자리 사업은 전국에서 운경 유 앙상블이 처음이다.

앙상블 합창단은 대구시립합창단 상임지휘자를 역임한 박영호 지휘자의 지도로 주 2회 가곡, 민요, 가요, 동요, 팝 등 다양한 장르에 대한 합창곡을 연습하고, 정기연주회와 각종 위문 공연, 버스킹 등의 공연활동을 진행한다.

권병현 대구중구시니어클럽 관장은 "앙상블 합창단은 합창을 통해 액티브 시니어들이 갖고 있는 활동력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노인일자리 사업을 제시할 것"이라며 " 일상생활 속에 예술을 더하고, 이웃과 함께 문화를 나눌 멋진 합창단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래 부르는 것이 즐겁고 행복해요"

앙상블 합창단 단원들은 노래가 좋아서 모인 만큼 함께 노래 부르는 것이 즐겁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현재 단무장은 김복희(66·소프라노) 씨, 총무는 윤영두 (66·테너) 씨가 맡고 있다. 두 사람은 초등학교 동기동창이다. 김 단무장은 "초교 졸업 후 처음 만났는데 동기라 그런지 호흡도 잘 맞다"고 했다. 윤 총무는 "분위기가 너무 좋다. 월, 목요일 오후 연습날에는 1, 2명 빼고는 거의 참석할 정도로 열정을 가지고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합창단에서 가장 어린 김애령(60·소프라노) 씨는 "허드렛일은 언니, 오빠들이 다한다. 저는 귀염만 떨면 된다. 모두 노래해 본 경력이 있어 앞으로 역할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최고령자 함청자(78) 씨는 노래를 부르면 즐겁고 행복해 연습시간이 기다려진다고 했다. 함 씨는 "노래를 부르면 가슴 속 스트레스가 풀리면서 한층 젊어진 느낌이 든다"며 "여러 목소리가 모여 만든 아름다운 화음이 널리 널리 퍼져 사회 전체를 더욱 밝고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열심히 하고 있다"고 했다.

이 합창단에는 넷 커플이나 있다. 서명호(67·베이스 )·김정순(64·소프라노) 부부는 "지인의 권유로 시작했는데 부부가 함께하니 너무 좋다"고 말했다.

또 하나의 커플 노대현(69·베이스)·마영숙(61·알토) 씨는 성가대에서 갈고 닦은 실력을 자랑한다. 노 씨는 "저는 동적이고 아내는 정적이다. 함께 할 수 있는 것을 찾다보니 역시 노래였다. 음악이란 공통분모로 이야기하는 시간도 늘었다"며 좋아했다. 마 씨 역시 "음악은 만사 긍적적으로 만들어줘 너무 좋다"면서 "병원이나 복지시절에 공연을 하면 그들에게서 되레 배우고 오는 것이 많다"고 했다.

박영호 지휘자는 "그냥 노래가 좋아 모인 분들이다. 오디션으로 선발한 단원들인 만큼 수준도 높다. 기본적인 실력을 갖춘 분들이지만 갖기 다른 소리를 낸다. 그 목소리를 잘 요리해 하모니를 만드는 것이 제가 할 일"이라면서 "소리에다 마음까지 하나가 되면 금상첨화겠지요. 나이는 들었지만 모두 열정이 있어 잘 될 겁니다."

◆오는 17일 창단 정기연주회

앙상블 합창단은 오는 17일 오후 7시 30분 대구콘서트하우스에서 창단정기연주회를 갖는다.

합창단은 이날 '노을빛 친구들'을 비롯해 '치술령에서', '농부가', '사공의 그리움', '송이송이 눈꽃송이', '미선나무',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랑', '우리는', '마이웨이', '예스터데이' 등 가곡과 동요, 가요, 팝, 캐롤송 등 다양한 레퍼토리를 들려준다.

김복희 단무장은 "합창을 통해 사회참여를 하며 건강하고 활기찬 노후생활을 영위하는 시너어합창단의 첫 정기공연에 많은 격려와 참여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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