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돌고 돈다. 몸의 피처럼. 피가 돌아야 하듯이 돈도 금고 속에 갇혀 있지 않고 돌아야 제 역할을 하리라. 그렇게 돌고 도는 돈 가운데 보수 도시라는 소문의 대구의 돈, 특히 이웃을 돕고 나눔을 위한 대구의 '착한 돈'은 더욱 빛이 난다면 믿을까. 그러나 사실이다. 지난날을 살피면 수긍하리라.
먼저 1907년 대구에서 불붙은 국채보상운동이다. 우리가 나랏빚이 얼마나 무서운지 처음 깨달았을 때다. 나라 관리와 권력자가 집안 장롱에 부정한 엽전을 재고 있을 당시, 대구 사람은 담배를 끊고 아낀 푼돈을, 부녀자는 비녀와 반지 등 패물에 이르기까지 돈이 될 만한 물건을 내놓았고, 이는 전국으로 요원의 불길처럼 번졌다.
사상 처음, 당시 1천700만 추정 인구의 1.8%인 31만7천여 명(추정)이 동참한 자발적 거국 모금운동은 이렇게 이뤄졌다. 1907년 1~7월까지 나랏빚(1천300만원)의 1.5%인 20만원(학계)이 모였다. 대구경북은 3만1천520명이 1만7천445원을 모았으니 대구경북인 165만7천여 명(1911년 기준)의 2%가 참여해 모금액의 8.7%(목표 1천300만원의 0.1%)를 채웠다.
이런 흐름은 1997년 외환위기 때 금모으기운동으로 재연됐다. 4천700만 국민의 7.5%인 351만 명이 나랏빚 1천200억달러의 1.8%인 22억달러 상당의 금 227.5t을 모아 제2국채보상운동으로도 조명됐다. 특히 국채보상운동 전파지 대구에서는 '대구사랑운동시민회의'라는 민·관 기구를 통한 자발적 범시민적 나눔운동도 일어났다.

무엇보다 이런 나눔운동은 이웃돕기 기부로 번졌다. 매일신문에서 2002년 11월 19일부터 매주 1회, 올 10월 8일까지 16년11개월 853회 연재한 '이웃사랑' 모금이 한국기록원의 신기록 인증을 받은 사례가 그렇다. 성금은 111억5천373만5천384원으로, 매주 130여 명 총 11만4천400명이 기부했으니 대구시민 244만 명의 5%에 가깝다.
더 있다. 1998년 발족한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성금 모금이다. 26년째 전국 꼴찌 수준의 대구 경제지표(1인당 국내총생산)와 달리 해마다 연말에 집중적으로 이뤄지는 모금회 이웃사랑 성금 접수는 목표 100℃를 초과하기 일쑤였고, 1억원 넘는 기부자도 현재 144호로 서울(277호), 경기(216호), 부산(177호) 다음에 이를 만큼 많다.
아울러 대구에는 다른 곳과 달리 얼굴 없는 '키다리 아저씨'와 '키다리 아줌마'도 기부 행렬을 채우고 있다. 2012년 1월부터 지난해까지 모두 8차례 걸쳐 매번 1억2천만원을 전한 아저씨와 2013년 1월부터 매월 10만~44만원까지 한 차례도 빠짐 없이 성금을 모금회에 보낸 청소 아주머니가 자랑스러운 주인공이지만 지금까지도 신분을 드러내지 않고 감추고 있다.

이렇게 돌고 도는 대구 돈은 대구의 공동체를 구르게 하는 대구만의 소중한 동력이 될 만하다. 이런 기부 문화에 새로운 사례도 생겼다. 7일 달성 서씨 대종회가 35억원에 이르는 600년 역사의 대구 중구 동산동 한옥마을 내 옛 구암서원 터를 대구시민에 내놓은 일이다. 세종 때 현 달성공원을 국가에 바치고 대구 사람의 세금 감면을 바란 옛 조상 서침(徐沈)의 뜻을 이은 후손다운 아름다움이 아닐 수 없다.
혼란스럽고 힘든 경제 사정 속에 다시 맞은 12월, 세밑이다. 거리 여기저기 구세군 자선냄비가 등장했고, 공동모금 활동도 이미 시작됐다. 날씨만큼 움츠린 마음이겠지만 늘 그랬듯, 대구의 '선(善)한 돈'은 돌고 돌아 대구의 올겨울도 지낼 만한 따뜻한 곳으로 이끄는 마력을 보이리라 믿는다. 부정적인 평가의 보수 도시 대구에서 돌고 도는 착한 돈은 죄가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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