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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에]트로트와 오페라는 평등하다

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공동대표

송가인의 공연 장면. 매일신문 DB
송가인의 공연 장면. 매일신문 DB

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이사
권은태 (사)대구콘텐츠 플랫폼 이사

대중적인 것은 저급하다는 인식
문화예술 대하는 정부의 현주소
모든 정책의 중심에 국민을 놓고
국민의 음악을 더 소중히 여겨야

'국민 MC' 유재석이 트로트 가수 '유산슬'로 데뷔했다. 요즘 가장 '핫'하다는 아침 생방송에도 나와 반짝이 옷을 입고 메뚜기 춤을 추며 자신을 어필했다. 그의 깜짝 등장에 시청자들은 손뼉을 쳤고 나중에 알게 된 사람들도 놀라워했다. 특히나 트로트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너나없이 유재석이 트로트 중흥에 불씨를 댕겼다며 반색했다.

"트로트는 돌려서 얘기 안 하거든요." 그의 말처럼 트로트는 직설적이다. 당신이 부르면 태평양을 건너서라도 무조건 달려갈 거라고 속 시원하게 말해준다.

출근길 버스부터 돌아오는 월급날까지, 내내 기다리다 지친 사람들에게 음악은 느긋하게 기다리며 음미하는 것이라 말하지 않는다. 먹고사느라 숨 가쁜 이에게 음악을 듣고 이해하려면 먼저 학습과 훈련을 통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속 모르는 소리도 하지 않는다. 트로트는 그냥 마음 가는 대로 듣고 즐기면 된다. 듣고 있으면 위로가 되고 함께 부를 땐 하나가 되며 혼자 흥얼거릴 땐 맺힌 것이 풀리기도 하는 그런 국민의 음악이다. 그래서 '국민 MC'와 트로트는 꽤 잘 어울린다.

사실, 이전부터 트로트는 세대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모두와 잘 통했다. '소녀시대' 서현은 주현미와 듀엣 곡 '짜라자짜'를 발표했고 '레드벨벳'은 TV에 나와 배호의 '안녕'을 노래했다. '슈퍼주니어'의 김희철은 록밴드인 '트랙스'의 김정모와 함께 '울산바위'를 불렀고 태연도 '사랑밖엔 난 몰라'를 그만의 감성으로 선보였다. 그리고 걸 그룹 '티아라'의 수많은 히트곡에도 '희자매'와 닮은 듯한 이른바 '뽕필'이 있었다.

이렇듯 트로트는 우리 음악 곳곳에 영감을 불어넣고 세대와 장르를 넘나들며 감동을 전해주고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예술이 아니다. 이는 대중음악의 다른 장르도 마찬가지다. 팬, 음반 제작사, 연예 기획사, 그리고 방송국에서까지 모두 대중음악을 예술이라 하고 대중가수를 '아티스트'라 칭하지만 정부는 그러지 않는다. 앞에 '대중'이 붙는 건 예술이 아니고 그걸 창작하고 표현하는 사람 또한 예술인이 아니다.

얼마 전 방탄소년단의 군 입대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적이 있었다. '나라가 부르면 가면 되고, 우리는 기다리면 되고'라며 팬들이 일찌감치 멋지고 현명한 답안을 내놓긴 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이런 논란은 아무 현실성 없는 헛된 것일 뿐이다. 정부의 기준으로 보면 그렇다.

방탄소년단이 병역특례의 대상이 되려면 일단 '예술인'부터 되어야 한다. 국위 선양을 얼마만큼 했느냐는 그다음의 문제다. 즉, 그들은 그들의 춤이 아니라 이를테면 발레를 춰야 하고 힙합이나 랩 대신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를 불러야 한다. 그래야 정부가 정해 놓은 예술인에 속하게 된다.

그런 다음 병역특례의 대상이 되려면 '그래미'나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가 아니라 유럽의 어느 이름 모를 콩쿠르라 할지라도 클래식 경연대회에 가서 상을 받아 와야 한다.

이게 현실이다. 그리고 문화예술을 대하는 우리 정부의 정책이자 시스템이다. 그야말로 대중적인 것은 곧 저급한 것이라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가장 대중적인 음악인 트로트는 가장 낮은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건 결국 대중도 저급한 존재라는 이야기밖에 되지 않는다.

지난 7월 더불어민주당 오영훈 의원이 '방송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범죄 전력이 있는 연예인을 종신토록 방송에 못 나오게 하자는 내용이다. 범죄가 조장될 수 있으니 그걸 막자는 취지에서란다. '직업 수행의 자유'에 관한 위헌 소지는 차치하고서도 어이없고 황당하다. 대중과 대중문화를 업신여기는 인식의 전형처럼 보인다.

그럴 거면 세금으로 사는 자신들에게 먼저 그런 제재를 가하는 게 맞다. 음주운전이라도 하다 걸리면 평생 출마를 못 하도록 말이다. 더불어 자신들이 함부로 여기는 그 연예인들만큼이라도 국민을 기쁘게 해 준 적이 있는지 스스로를 먼저 돌아봐야 한다.

그리고 이젠 문화예술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와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관련된 모든 정책의 중심에는 국민이 있어야 한다. 트로트와 오페라를 평등하게 대할 줄 알아야 하고 그래도 굳이 한 가지를 고르라면 국민을 존중하듯 국민의 음악을 더 소중히 여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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