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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잘못 쓰고 있는 생활 속 존대어

최태연 전 계성고등학교 교사

최태연 전 계성고등학교 교사
최태연 전 계성고등학교 교사

우리 생활의 어느 곳도 예(禮)와 관계되지 않은 곳이 없다. 가정이나 직장에서 지킬 예절이 있고, 도시철도를 이용할 때도 지켜야 할 예절이 있다. 우리가 쓰는 말도 예절에 맞게 말해야 한다. 편지도 받는 상대가 있으므로 예(禮)에 맞게 편지를 써야 한다.

논어에 보면 공자의 수제자(首弟子) 안연(顔淵)이 공자께 인(仁)을 물었다. 공자는 "극기복례(克己復禮)가 인(仁)이 된다"고 했다. 극기복례란 자기의 본능적인 사욕을 억누르고 예(禮)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부연하면, 본능적인 사욕을 의지(意志)와 이성(理性)으로 억누르고 예(禮)를 실천하는 교육적인 인간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우리 생활에서 예(禮)를 생각해보자. 우리 집에는 아내와 나, 두 사람이 산다. 나갈 때는 "나 다녀올게"라고 하면, 아내는 "승차권, 핸드폰 챙겼어요?"라고 한다. "열쇠까지 다 챙겼어요." 이 대화가 자식이 밖에 나갈 때 부모님께 아뢰던 출필곡(出必告)에 해당된다. 부부는 서로 경어를 쓰는 것이 원칙이지만, 서로 반말을 해도 된다. 위의 '다녀올게'가 반말이다. 미완성의 말이다. '다녀올게요' '다녀오겠습니다'라고 해야 완결된 말이 된다.

가정에서 아내가 남편에게 공대어(恭待語)=존대어(尊待語)를 쓰는 것은 잘못이다. '계시다' '주무시다' '잡숫다' '오시다' '가시다' '하시다' '말씀' '진지' 등의 말이 공대어이다. 부부는 상하관계가 아니고 평등관계이다.

그래서 부부는 말도 평등해야 한다. 아내가 남편에게 공대어를 쓸 때, 남편도 아내에게 공대어를 쓴다면 말에서 부부가 평등하다. 대부분 가정에서 아내만 공대어를 쓰고, 남편은 경어나 반말을 쓴다. 부부는 서로 경어나 반말을 쓰는 것이 옳다. 공대어는 아랫사람이 웃어른에게 쓰는 높임말이다.

매일신문 기자가 국회의원 댁에 전화를 건다. "안녕하십니까? 매일신문 ○○○ 기자입니다. 의원님 계십니까?" 영부인(令夫人)이 전화를 받는다. "의원님은 부산에 국정감사 가셨다가 어제 밤늦게 돌아오셔서 아직 주무시고 계십니다." 영부인이 전화를 잘못 받는다. 자기 남편을 '의원님'이라고 높이는 등 온통 자기 남편에게 존대어(尊待語=恭待語)를 썼다.

영부인(令夫人)이란 호칭은 대통령 부인에게만 쓰는 말인 줄 아는데, 그렇지 않다. 부인도 '남의 아내를 높이는 말'인데, 접두어(接頭語) 영(令)을 덧붙이면 더 아름다운 높임말이 된다. 남의 딸을 높여서 영애(令愛)라고 하고, 아들을 높여서 영식(令息)이라고 할 때의 '영'과 '영부인'의 '영'은 같은 뜻이다. 영(令)은 '법령·명령'이란 뜻이 아니고, '아름답다', '착하다'의 뜻이다.

요즈음 방송을 들어보면 아들·딸이 어머니·아버지를 '사랑한다'고 한다. 우리말에 '치대접 내리사랑'이란 말이 있다. 사랑한다는 말은 아랫사람을 사랑한다고 하지, 웃어른을 사랑한다고 하면 안 된다. 부모와 자식은 위계(位階)가 다르다.

아들이 어머니를 쳐다보고 '사랑합니다'라고 하면 버르장머리 없는 정도가 아니고 패륜(悖倫)이다. 한자어에도 애친경장(愛親敬長)이란 말이 있는데, 여기서 '애친'(愛親)은 '부모를 소중히 여긴다'는 뜻이다. 아들은 어머니를 '존경한다'고 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상한선(上限線)은 아내 또는 애인까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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