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커피 한잔도 재밌어야 마시는 '펀슈머' 잡아라

가격 대비 성능·심리적 만족도 넘어 재미 찾는 시대
유통업계, 펀슈머 겨냥한 이색 컬래버레이션 제품 속속 출시
재밌기만 하면 된다?…기능성과 편익은 기본

대선 슬리퍼.
대선 슬리퍼.
참이슬 백팩.

"소비는 내가 즐거우려고 하는 것 아닌가요?"

취업준비생 A(24) 씨는 간식거리 하나를 고를 때도 뻔한 포장의 제품보다는 커피 테이크아웃 용기에 담긴 떡볶이 같은 재미있는 제품에 눈길이 간다고 했다. A씨는 "취업 스트레스를 거창하게 풀기보다는 작은 소비 생활에서 찾으려는 것 같다"며 "그렇게 보면 나도 '가잼비'를 찾는 소비자로 볼 수 있다"고 웃었다.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자)로 불리는 20·30대 소비자를 중심으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와 가심비(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도)를 넘어 '가잼비'가 새로운 소비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가잼비란 가격 대비 재미의 비중을 뜻하는 신조어다. 상품에 담긴 재미를 찾는다는 의미의 '펀슈머(Fun+Consumer)'로 불리는 이들을 잡기 위한 유통업계의 가잼비 제품 경쟁도 한층 치열해지고 있다.

몰래 먹는 떡볶이.
참이슬 백팩.

◆'참이슬 백팩'·'불닭 틴트' 등 이색 컬래버레이션 활발

직장인 B(29) 씨는 "술을 좋아하는 편인데 최근 슬리퍼에 소주병이 새겨진 것이 있길래 재미있어 구입했다"며 "요즘에는 워낙 제품 선택지가 많으니 조금이라도 새롭고 재밌는 것을 구입하게 된다"고 했다.

B씨가 구입한 제품은 부산 소주업체 대선주조가 신발 브랜드 ㈜지패션코리아의 콜카(KOLCA)와 협업해 만든 슬리퍼다. 슬리퍼에 대선 로고와 하늘색 문양을 새겨넣은 가잼비 제품이다.

가잼비가 새로운 소비 키워드로 떠오르면서 식품업체 간 컬래버레이션은 기본이고, 유통업계에서는 식품업체와 패션업체가 결합한 '푸드패션', 식품업체와 화장품업체가 결합한 '푸드메틱(Food+Cosmetic)' 제품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떡볶이 무한리필 프랜차이즈 두끼는 지난 1일부터 전국 매장에서 삼양식품의 불닭 소스를 접목한 불닭떡볶이를 판매하고 있다. 지난달 두끼 측이 진행한 삼양식품과의 컬래버레이션 이벤트에는 1천800명이 응모해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불닭 립소스 틴트 등 불타는 에디션.
몰래 먹는 떡볶이.

BGF리테일이 운영하는 편의점 브랜드 CU는 지난해 11월 커피 브랜드 탐앤탐스와 함께 테이크아웃 용기에 떡볶이를 담은 '몰래 먹는 떡볶이'를 출시했다. '회사에서 부장님 몰래 먹는 떡볶이'라는 가잼비 콘셉트의 성공으로 1주일 만에 2만 개가 완판됐다.

유명 인물을 활용한 가잼비 제품도 눈에 띈다. GS리테일이 운영하는 GS25는 지난해 SNS에서 '상상도 못한 정체'라는 사진으로 유명한 개그우먼 신봉선과 손잡고 '상상도 못한 캔디'라는 화이트데이 선물세트를 내놨다. 이 제품은 화이트데이가 곧 연인끼리만 선물을 주고받는 날이라는 공식이 사라진 요즘, 직장 동료와 친구들끼리 이색 상품을 나누는 트렌드를 적절히 공략한 가잼비 제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에 더해 가잼비 제품은 패션업계와 화장품업계까지 영역을 확장하는 추세다.

최근 하이트진로는 의류 브랜드 무신사와 협업해 참이슬 오리지널 팩소주 모양을 가방에 접목한 '참이슬 백팩'을 제작해 400개 한정 판매했고, 5분 만에 품절됐다.

라떼는 말이야 과자.
불닭 립소스 틴트 등 불타는 에디션.

SPC그룹의 멤버십 서비스 해피포인트는 캐주얼 의류 브랜드 커버낫(COVERNAT)과 협업해 배스킨라빈스, 파리바게뜨, 던킨도너츠의 인기 메뉴 이미지를 활용한 맨투맨 3종 한정판을 출시하기도 했다.

화장품 업체 토니모리는 삼양식품 붉닭볶음면과 컬래버레이션해 핫 커버닭 쿠션, 불닭 립소스 틴트 등을 출시하며 '빨간 피부도 걱정 없다'는 스토리를 입혀 이목을 끌었다.

빙그레와 CJ올리브네트웍스는 바나나맛 우유 특유의 둥근 용기에 바디워시, 바디로션, 핸드크림을 담은 화장품을 출시해 큰 인기를 끌었다. 이후 딸기맛·커피맛·메론맛우유 화장품 등 파생 상품도 연이어 출시됐다. 해당 화장품들은 우유 용기 모양뿐만 아니라 우유의 맛과 향, 질감까지를 재현해 완전한 푸드매틱으로 불리며 히트했다.

대구 한 제조업체 관계자는 "최근 가격 대비 재미를 추구하는 트렌드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확산되며 관련 제품도 쏟아지고 있다"며 "본사 또한 트렌드에 발맞춰 올해 사업계획에 가잼비 제품 기획안을 넣고 큰 방향성을 잡은 상태"라고 말했다.

민생 쓴·단 커피.
라떼는 말이야 과자.

◆재미만 있으면 된다?…사회풍자 요소까지 가잼비에 담아

가잼비 제품이 봇물처럼 쏟아지면서 일각에서는 식상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따라서 최근 유통업계는 단순히 제품에 재미만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인의 고충과 세대 간 갈등 등을 담은 사회풍자적인 가잼비 제품을 연이어 출시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CU가 출시한 '라떼는 말이야' 과자는 최근 화제가 된 유행어 '라떼는 말이야'('나 때는 말이야'라는 문장을 'Latte is Horse'로 변형한 언어유희)를 제품명으로 쓰고 그림왕양치기(양경수) 작가의 만화를 겉면에 담았다. 만화에는 부장이 '나 때는 어땠는 줄 아나'라고 문자 부하 직원이 '네, 매일 들어서 잘 압니다'라고 답하는 등 꼰대 문화를 재밌게 표현해 화제를 모았다.

쌍화 스무디, 쌍화 밀크티, 쌍화 티.
민생 쓴·단 커피.

이마트24는 '민생 쓴-커피'와 '민생 단-커피' 등 2종을 출시하며 업무에 지쳐 어깨가 푹 처진 회사원, 파이팅을 외치는 회사원 캐릭터를 그려 넣어 회사원 소비자의 공감대를 끌어내려고 했다. 캐릭터 옆에는 '진한 민생 쓴 커피 한 모금 마시면서 위로받아 보세요, 수고 많았습니다!'라고 적었다.

신세계푸드 스무디킹은 광동제약과 손잡고 쌍화스무디, 상화티, 쌍화밀크티 등 쌍화를 활용한 음료 3종을 내놨다. 쌍화차와 밀크티 등은 중장년층과 젊은층 수요가 극히 갈리는 제품으로, 이를 결합해 고객층 확대를 노렸다.

노진철 경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왕이면 재밌게 하자'는 젊은 세대는 커피 하나를 선택할 때도 재미 위주로 선택하는 성향이 있다"며 "노동사회가 아닌 소비사회에서 이른바 가잼비를 추구하는 경향은 유통업계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쌍화 스무디, 쌍화 밀크티, 쌍화 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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