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말보다 수어를 먼저 했어요. 저는 음성언어와 수어를 둘 다 할 수 있는 능력자이기도 합니다."
지난 1일 대구 중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윤민혁(28) 씨는 자신을 농인(聾人·청각장애인)과 청인(聽人·청각장애가 없는 사람)을 이어주는 '소개자'로 표현했다.
윤 씨는 청각장애를 가진 부모에게서 태어난 청인 자녀를 일컫는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다.
그가 수어통역사가 된 건 자연스러운 일상의 결과였다. 어릴 때부터 그는 청각장애인 부모의 입과 귀가 돼야 했다. 집 계약서를 읽고 설명해야 했고 아버지의 일터에 가서 사장에게 체불된 임금을 달라는 목소리를 내야 했다. 감정도 최대한 살려야 했다. 아버지가 화를 내면 똑같이 화를 내야 했다. 마음의 소리를 전해야 했다.
청각장애인 부모에게서 난 비장애인이라는 색안경은 진했다. 친구들의 놀림거리가 되기 일쑤였다. 벙어리라고 놀림받는 데 진절머리가 났다. 부모를 원망했지만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윤 씨는 "수어를 친구들에게 가르쳐주면 관심을 끌 수 있지 않을까 해서 하나씩 가르쳐줬는데 난생 처음 보는 손동작에 친구들의 눈이 빛나는 걸 봤다"고 했다. 이후 수어는 윤 씨의 무기가 됐다.
'코다'라는 말은 사회적 개념어다. 윤 씨가 '코다'라는 말을 처음 들은 것도 20살이 되던 때였다. 대구대에 입학해 만난 수어통역사 선생님으로부터 '대다수 코다는 수어통역사로 일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같은 코다를 만나면서 자신이 사용하던 수어가 일부 잘못됐다는 걸 알았다. 올바른 수어를 알리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다.
이렇게 서로를 모르던 이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대구농인협회는 이달 22일 '우리는 코다입니다'라는 책의 북콘서트를 여는데, 이 자리에 대구경북에 살고 있는 코다가 모여 청각장애인 인식 개선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윤 씨는 '수어도 하나의 언어라는 걸 알게 되면 청각장애인에 대한 인식도 바뀔 것'이라는 바람과 기대를 가지고 있다.
윤 씨는 "2016년 정부는 '한국수화언어법'을 제정하며 한국수어를 공식 언어로 인정했지만 수어는 의사소통의 보조도구일 뿐이라는 인식이 강하다"며 "청각장애인의 삶과 수어를 널리 알리는 게 삶의 목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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