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활약하는 축구선수 손흥민이 인터뷰 중 기침을 했다. 순간 팀을 승리로 이끈 결정적인 골보다 더 많은 관심이 그의 기침에 쏟아졌다. 곧 전염병을 연상시키는 악의적인 댓글이 이어졌다. 급기야 그의 골을 축하해주던 동료들에게 마스크를 씌운 합성 사진까지 등장했다. 이런 서양의 '인종차별' 정서에 맞서 아시아인들은 "나는 바이러스가 아니다"고 항변하기에 이르렀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바이러스가 인구 14억의 거대한 중국 사회를 멈춰 세웠다. 바로 신종코로나바이러스 이야기다. 이미 주변국인 한국, 일본, 동남아시아를 넘어 전세계로 확장하고 있는 추세다. 세계보건기구 (WHO)는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세계가 두려움에 떨고 있다. 두려움은 무지에서 나온다. 하지만 우리 인류와 병원체 간의 진화적 경쟁 관계를 이해하고 있다면 이런 막연한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약 1만년전 수렵 및 채집으로 소규모 군집생활 하던 인류에게 농업은 유목생활을 끝내고 안정적인 식량생산을 통해 정착생활을 할 수 있는 혁명과 같은 일이었다. 그 결과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었고 집단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세균이나 바이러스에게도 개체 수를 늘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그들에게 더 큰 행운은 세계 교역로의 발달 이었다. 유럽, 아시아, 북아프리카까지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로마제국 시기, 세계는 거대한 세균과 바이러스의 번식장이 되었다. '안토니우스'병이라고 불리던 천연두가 그 길을 타고 로마에 입성하여 수백만명의 로마인이 목숨을 잃었다. '유스티니아누스 병'이라는 쥐벼룩이 옮기는 흑사병도 모피에 숨어 중앙아시아 육상 교역로를 타고 로마에 입성했고, 유럽인구의 30-50%가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천연두와 흑사병은 예방접종과 치료법의 개발로 현재는 정복된 질환이다.
인류가 집단생활을 하기 전에는 없었던 이 질병들은 어디서 생겨난 것일까? 대부분의 전염병들은 원래 집단생활을 하던 동물에서 질환을 일으켰다. 이후 인류가 이 동물들을 가축화 함으로써 옮겨져 인간의 질병으로 진화한 것이다. 홍역, 결핵, 천연두는 소에서, 인플루엔자, 백일해는 돼지, 오리, 개에서 옮겨 졌다.
최근에는 야생동물에서 유입되는 전염병이 늘고 있다. 2003년 박쥐에서 사향고양이로 전파되어 사람에게 넘어온 사스 코로나바이러스나 2015년 박쥐에서 낙타로 전파되어 사람에게 넘어온 메르스 코로나바이러스가 대표적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 역시 신약, 능동적인면역체계, 저항력이 높은 세대의 자연선택 등으로 극복되고 있다.
현재 신종코로나바이러스의 전파속도는 무서울 정도다. 하지만 바이러스 보다 더 빨리 퍼지고 있는 괴담은 우리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 '헛소문'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 페스트가 유행하던 시기 이교도와 유대인, 나병 환자들이 전염병의 주범으로 내몰려 화형에 처해진 걸 잊어서는 안된다.
가뜩이나 전염병을 틈타 전세계의 '황색위험'이라는 인종 차별기류가 정당화되고 있는 이 때에 우리 스스로가 그런 괴담을 부추길 이유는 없다. 전염병은 두렵지만 인류와 전염병의 역사를 알고 나면 극복 못할 대상은 아니다.
이장훈 경북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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