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취재현장] 우리를 두 번 울리지 마세요

공지영 작가가 중국발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및 사망자 전국분포도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올리면서
공지영 작가가 중국발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및 사망자 전국분포도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올리면서 "투표 잘합시다"라고 말해 논란이 일었다. 공 작가는 지난달 28일 트위터에 대구 확진 환자와 사망자 숫자가 강조된 전국 '코로나19 지역별 현황' 그래픽을 올리고 "투표 잘합시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김근우 사회부 기자
김근우 사회부 기자

"이러다가 대구가 정말 '한국의 우한'이 되는 거 아냐?"

대구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환자가 본격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지난달 19일, 대구시청 브리핑장에서 동료 기자들과 이런 말을 주고받았다.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한 우스갯소리였지만, 이튿날 폭증한 확진자 수를 듣고서는 더 이상 그런 농담조차 하지 않게 됐다. 대구가 정말로 '한국의 우한'이 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금 대구 시민 모두는 일상을 잃었다. 아침이면 수백 명씩 늘어나 있는 코로나19 확진 환자 수가 더는 어색하지 않게 됐다. 텅 비어 버린 번화가도, 고작 마스크 몇 장을 사려고 선 긴 줄도 마찬가지다. 시민들은 마스크를 쓴 채 집 안으로 꽁꽁 숨어 들어간다. 자영업자들은 제로 수준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숨지는 사람보다 사업이 망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라는 씁쓸한 이야기까지 나온다. 그렇게 코로나19라는 괴물과의 싸움에 모두가 지쳐 가는 지금, 시민들은 두 번째 울음까지 애써 삼키고 있다. 중국에서 일어났던 우한 시민들에 대한 차별이 대구경북을 대상으로 고스란히 재연되고 있어서다.

최근 포털 사이트에는 '대구봉쇄'라는 단어가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올랐다. 중국 우한처럼 대구를 물리적으로 봉쇄해 코로나19 전파를 막자는 이야기였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의 무책임한 한마디에서 시작된 대구봉쇄설은 코로나19와의 싸움으로 지친 시민들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 놨다. 어느새 그 혐오와 차별은 일상 속으로 침투했다. 대구에 사는 한 화물차 운전기사는 화물 배차 앱에서 '대구 넘버 안 됨'이라는 말을 보고 맥이 풀렸다. 대구 번호판을 단 차량은 배차를 거부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매출 부진에 온라인 판매로 활로를 찾아 보려던 대구 수성구 한 음식점 점주도 반품 요청과 함께 날아온 '대구에서 오는 거면 그냥 보내지 마세요'라는 말에 눈물만 삼켜야 했다.

코로나19가 만들어낸 TK 혐오를 따라 고질적인 '나쁜 정치 바이러스'도 고개를 들었다. 415 총선 대구 동갑에 출마한 미래통합당 김승동 후보는 '문재인 폐렴이 대구 시민 다 죽인다'는 구호를 내걸고 선거운동을 했다. 소설가 공지영은 자신의 SNS에 지난 2018년 지방선거 결과와 코로나19 확진자 현황이 담긴 지도를 내걸고 '투표의 중요성 후덜덜'이라는 게시물을 썼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권영진 대구시장을 향해 "정부 책임론을 띄우려고 코로나를 열심히 막을 생각이 없는 것 같다"는 이야기까지 했다. 시청에서 쪽잠을 자며 악착같이 버티고 있는 권 시장과 공무원들에 대한 예의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지금 대구 시민들이 누구보다 바라 마지않는 것은 그저 '평범한 일상'으로의 복귀다.

활기찬 거리, 저녁이면 지인들과 편안하게 소주 한잔을 기울일 수 있는 일상. 평범하지만 소중했던 그 하루하루 대신 지금 우리에게는 '지인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자가격리됐다'는 이야기가 일상이 됐다.
그 평범한 일상을 위해 대구는 오늘도 서로를 돕고 있다. 누구보다 힘든 시장 상인들과 자영업자들은 남는 재료로 도시락을 만들어 의료진에게 전달하고, 시민들은 부족한 마스크를 나눠 가며 차분히 일상으로 돌아가길 기원한다.

일부 정치세력과 누리꾼들에게 부탁한다. 함께 눈물 흘려 주는 일까지는 바라지 않겠다. 다만 우리의 눈에 두 번째 눈물마저 흘리게 하지는 말아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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