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 입장하겠습니다!"
무대감독이 하우스 오픈을 알리자 공연 준비를 하던 배우, 스텝들이 무대 바깥으로 흩어진다. 하우스 어셔(Usher)가 입장을 알리자 로비에서 기다리던 수백 명의 관객들이 객석을 하나 둘 메우기 시작한다. 기술감독은 객석 중앙에 앉아 있는 청년을 향해 주먹을 불끈 쥐며 자신감을 내비친다.
"오케스트라 Ready…… Go!"
뮤지컬 '기적소리' 주제곡인 '금빛 찬란한 시절'의 변주곡이 연주되는 가운데 청년은 마치 긴 여행을 앞둔 시간여행자처럼 눈을 지그시 감는다.
6개월 전, 뉴욕에서 막 귀국한 그는 이 작품의 작곡가로 발탁되었다. 오랜 시간 기다려온 데뷔 무대인만큼 잘 해야 한다는 부담이 컸기에 인적이 없는 산속에 들어가 창작에 온 열정을 다했고, 마침내 전곡을 완성하고 하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안도감도 잠시, 뮤지컬 전체를 이끌던 총감독이 갑작스럽게 하차하게 되고 급히 사람을 물색하던 제작자는 총감독 자리를 새로운 사람에게 제안했다. 뜻밖에도 바로 그 청년이었다.
뮤지컬 한편을 제작하는 길고 긴 시간 동안 수 십 명의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함께 꿈을 꾼다. 지휘봉을 잡는다는 건 저마다의 꿈을 펼치도록 잘 조율할 책임이 따르고 그 엄청난 중압감을 견뎌야 한다는 것이다. 어릴 때 처음 만들었던 뮤지컬이 엎어졌을 때, 함께 꿈꿔왔던 동료들이 눈물을 머금고 뿔뿔이 흩어졌던 순간이 떠올랐다. 청년에게 리더의 자리는 그렇게 죄책감과 무능력함이란 감정으로 남아있었다. 부담과 두려움으로 주저하던 그때, 청년에게 친구 두 명이 다가와 어깨를 툭 치며 장난스럽게 말을 건넨다.
"Musical 은 꿈꾸는 사람들 모두가 함께 만드는 법EG~."
수많은 동료들이 청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흔들림 없는 눈빛을 보며 뭔가 알 수 없는 확신이 차오름을 느낀 청년은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두려움 때문에 마다하지 않겠노라 결심하며 자신 앞에 놓인 지휘봉을 다시 잡게 되었다.
변주곡이 끝날 무렵 감았던 눈을 서서히 뜬다. 무대감독의 신호에 맞춰 막이 오른다. 조명감독이 콘솔의 버튼을 누르자 근사한 오케스트라가 모습을 드러낸다. 영상감독은 하얀 스크린에 기차 영상을 띄우고 음향 감독은 저 멀리서 가까운 곳으로 경적소리가 울려 퍼지도록 영상에 맞춰 섬세하게 노즐을 돌린다. 어느새 꿈에 그리던 무대가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수개월 함께 걸어온 스무 명의 배우들이 무대 위로 달려 나와 역동적인 안무와 함께 정성 들여 만든 곡을 목이 터져라 부르고, 그의 뒤에는 스텝들이 함께 호흡을 맞춘다.
자신을 믿어주던 모든 이들과 함께 도전을 택한 그 순간, 함께한 노력들이 시간의 예술로 바뀌는 그 순간, 이미 정해진 것처럼 무겁게 짓누르던 책임감이 환희로 바뀌고 있음을 깨닫는다.
뮤지컬은 모두가 함께 만드는 기적소리임을. 그 사실을 되새기며 청년은 활짝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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