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제칼럼] 영화 기생충과 포스트 봉준호법

권혁성(특허법인 이룸리온 대표변리사)

권혁성(특허법인 이룸리온 대표변리사)
권혁성(특허법인 이룸리온 대표변리사)

상영·배급 한 회사가 겸업하는 구조
영화산업 독과점 더 심화시킬 우려
창작자·기업간 실질적인 공존이 답
논의와 고민 구호로 그치지 않기를

4개 부문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과 영화 기생충이 화제다.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세간의 관심이 잦아들었으나 시대적 담론인 불평등을 소재로 계급 간 투쟁을 비극적으로 그려낸 영화는 화려한 수상 내역만큼 다양한 화제를 낳고 있다.

필자에게 영화 기생충은 관람 내내 불편함에 지배되어 고생스럽게 감상한 영화로 기억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영화 기생충에 대해 불편함을 토로했다고 한다.

CiltyLab의 공동 창업자이며 편집자인 Richard Florida의 2019년 3월 기고문 'The Power of American Arts and Culture'에 의하면 미국 내 문화예술(Arts and culture)분야의 경제적 파급력은 캐나다 총 GDP의 절반 수준으로 약 8천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된 바 있다. 이는 미국 내 산업별 생산량 대비 시 의료 및 사회복지 분야와 소매업에 이어 산업별 3위에 해당되는 수치이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미국의 문화예술 산업이 수출 기반 산업이라는 것이다. 2016년 미국은 영화, TV 프로그램, 비디오 게임 등의 수출로 문화예술 분야에서 250억달러의 무역 흑자를 기록했다. 이는 불과 10년 전인 2006년보다 10배 이상 증가된 수치이다.

아카데미상 수상으로 축제 분위기일 것 같은 국내 영화계 종사자들이 최근 '포스트 봉준호법'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는 모양이다. 포스트 봉준호법은 영화산업의 불평등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영화인들의 목소리를 담은 법안이라고 한다.

시장 독점 이슈에서 비롯되는 불평등은 영화산업만의 문제는 아니다. 다만 상영과 배급을 한 회사가 겸업하는 현 영화산업 구조는 독과점의 문제가 더욱 심화될 수 있는 구조이다. 흥행 순위 상위 영화는 다수의 관객이 선택한 영화이므로 상영관과 상영 횟수를 늘린 것이라는 논리가 그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주장은 좌석 점유율 집중도의 변화 추이를 분석한 한 연구 결과와 비교할 때 설득력이 떨어진다. 즉 흥행 상위 10% 영화들의 좌석 점유율은 지난 10년간 감소한 반면, 하위 50%는 거의 변동이 없는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결국 상영관과 상영 횟수의 집중은 시장의 선택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영화 외의 다른 문화예술 분야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18년 저작권법 일부 개정안 발의의 단초가 된 출판업계의 매절계약 관행(매절계약 자체가 불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은 출판사와 저자 간 불평등을 초래하는 대표적 사례로 손꼽힌다.

음악 감상의 보편적 수단이 되어 버린 스트리밍 음원시장도 마찬가지이다. 음원 플랫폼을 운영하는 공급 사업자 또는 제작자와 창작자 사이의 수익 배분 구조 관련 불평등 사안이 여전히 기사화되고 있다. 시대 조류와 함께 불법 다운로드를 근절하기 위한 대안으로 제안된 스트리밍 음원시장이 오히려 창작자와 사업자 간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것도 외면할 수 없는 주장이다.

자본력을 갖춘 제작자가 없었다면 아카데미상 수여의 영광도 존재하기 어려웠다는 주장 또한 십분 수긍되는 의견이다. 특히나 거대 자본이 지배하는 미국을 비롯한 해외시장 개척을 위해서라면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자본이 투입될 다양하고 마땅한 창작물이 존재해야 하는 것이 우선이다. 심지어 자본이 창작물을 애초부터 선별 또는 선택해 대중에게 전시하는 구조라면 이는 상당히 경계해야 할 사안이다.

저작권법상 보호기간은 지속적으로 연장되어 왔다. 보호기간 연장이 창작자 보호에 기여했는가에 대한 의문도 여전하다. 보호기간의 연장은 작가 생애의 먼 미래 혹은 사후에나 있을 보상에 불과해 창작자의 창작 기여에 별반 기여하는 바 없고, 창작물로 이윤을 추구하는 거대 기업의 지대 추구에 불과하다는 다소 극단적인 주장도 현존한다.

결국 핵심은 창작자와 기업 간의 현실적이며 실질적인 공존이다. 다른 현실적 이유로 공존을 위한 논의와 고민이 구호로만 그치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기생충은 숙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숙주가 죽으면 자신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 기생충의 마지막 비극도 박 사장을 상대로 한 기택(또는 근세)과의 다툼이 아닌 기택의 가족과 근세 가족의 다툼에서 시작된다. 계층 간 다툼보다 살아남기 위한 동일 계층 간의 다툼이 비극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영화 관람 내내 지배하던 불편함도 이 때문이었던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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