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늦은 후회의 대가

박상전 정치부 차장
박상전 정치부 차장

인간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대표적인 수단은 '당근'과 '채찍'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어떤 때 당근을 쓰고 채찍은 언제 써야 하는 지다.

최근 한 심리보고서는 당근과 채찍의 사용 시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목적이 시간상으로 멀리 있을 때는 당근을, 가까운 시제에 놓인 목적을 위해서는 채찍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린 아들과의 약속을 예로 들자. 10년 뒤 아들이 좋은 대학 가기를 희망한다면 '만약 명문대학에 입학할 경우 스포츠카를 한 대 사줄게'라고 이야기해야 한다. 먼 미래를 위한 동기 부여는 그에 상응하는 달콤한 보상이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당장 밥상머리에서 반찬 투정을 중단시키고 싶다면 혼을 내야 한다. 밥투정은 나쁜 것이고 반복되면 강한 제재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각인시켜야 한다. 먼 미래의 일은 '보상'을, 가까운 시점의 변화 유도는 '제약'을 둬야 효과적으로 타인의 행동을 유도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 같은 논리는 사람들의 심리로 돈을 버는 보험업계가 즉각 도입했다. 각종 보험 상품의 광고에 적용한 것이다. '먼 미래에는 보상이 따라야 한다'는 조항은 종신보험, 연금 상품 등에 활용했다. 10년 이상 후에 수급할 수 있는 상품의 광고에는 모두 '가입 후 큰 결실을 보게 된다'는 식의 스토리가 있다.

빠른 시일 내에 가입을 유도하는 상품은 암·상해보험이 대표적이다. 이들 광고에는 '당장 상해보험을 들지 않으면 큰일 난다'는 식의 위기감 고취가 반드시 저변에 깔려 있다. 4·15 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이 대패했다. 결과적이지만 '당근과 채찍'의 논리와는 반대로 선거운동을 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우선 통일이나 대북 문제 같은 먼 미래의 사안에는 달콤한 미래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

오히려 반대와 비난으로 일관하며 '당근'을 제시해야 할 때 '채찍'을 들었다. 대북 문제와 관련해 통합당이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면서 '통일 문제에 있어서만은 우리와 함께하면 여권이 제시한 그림보다 훨씬 더 큰 열매를 거둘 수 있다'고 달콤하게 접근했으면 결과가 어땠을지 궁금하다.

'채찍' 전략이 주효했던 선거 직전일인 14일에는, 유권자에게 각인시켜야 할 위기감 조성을 엉뚱하게 했다. 황교안 대표는 이날 '세월호 막말 논란'을 벌인 차명진 후보를 '더 이상 우리당 후보로 보지 않는다'며 내부 징계를 거듭 강조했다. 투표일 직전 유권자를 상대로 들어야 할 '채찍'을 내부에 휘두르며 상대 진영의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촌극이 벌어진 것이다.

황 대표는 15일 개표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선거 패배를 시인하고 대표직에서 자진 사퇴했다. 사퇴의 변을 통해 그는 "우리 당이 국민께 믿음을 드리지 못했다. 국민을 만족스럽게 하지 못했다"며 그제야 선거 전략이 잘못됐음을 시인했다.

황 대표가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으나 선거 결과는 결코 바뀌지 않는다.

앞으로 여권은 무려 180석의 의석을 무기로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국정 운영에 커다란 날개를 달게 됐다.

반대로 통합당이 그토록 주장해 왔던 '견제와 균형' 논리와 '정권 심판론'은 소리 없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정계 개편 바람 속에서 당을 해체해야 할 상황과도 직면할 수 있다.

후회와 깨달음이 조금 늦은 대가로는, 통합당 입장에선 너무 큰 타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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