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가 읽은 책] 그때에도 희망을 가졌네(신중현 엮음/ 학이사/ 2020)

5월을 반기는 이유

할미꽃
할미꽃

3개월여 경주의 정신건강팀 재난심리대응 활동을 떠올려보았다. 24명이 모인 자원봉사자들은 카카오채널 모바일 상담을 시작했다. 800여 청년연합회원들은 현장으로 코로나19대응지침 전단지를 실어 날랐고, 가족들과 실천할 수 있는 마음방역 카드뉴스를 부지런히 친우들과 나누었다. 직접 만나는 일이 어려운 감염병 대응에서는 심리적 재난상황이 길어지는 것이 더 두렵다. 사소한 일에도 심리재난 상황에서는 보건소와 정신관련 시설, 민간상담자 등 비상대기조의 필요성이 더 많아진다.

경주에 코로나19 첫 환자가 생겼다. 선별진료소가 설치되고 24시간 전화 민원응대팀으로 교대근무에 나선 지 이틀만이다. 두 번째 환자는 사후에 확진되었다. 코로나19 동선 공개에 따른 시민들의 불안이 실시간으로 전해져왔다. 경북지역 환자라 예약되었던 암 수술이 취소되었다는데 목소리로만 위로를 해야 하는 암담함에 밀려오는 슬픔과도 마주했다.

4월 중순부터 현재까지도 정신과 응급 입원이 줄을 잇고 있다. 코로나19 재난상황은 지난번 지진과는 다르게 직접 만나지 못하는 갈증을 알게 했다. 마음을 말과 글로 전하는 일에 열중하던 사이 우리에게도 5월은 희망이 되고 있기에, '그때에도 희망을 가졌네'를 정말 반갑게 읽고 또 읽었다.

이 책은 아직 끝나지 않은 세계적 재난상황인 코로나19의 생생한 현장 기록이다. 대구 시민의 독서운동에 앞서 온 지역 출판사인 학이사 신중현 대표가 각기 다른 분야에 종사하는 대구시민 51명의 코로나19의 아픔을 엮은 기록서이다.

"코로나19, 그것은 어두운 터널이었지만 그때 기적이 일어났다." (서문에서)
단순히 어려움만을 토해낸 글이 아니다. 각자가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고, 그로 인해 희망을 보았노라고, 누가 더 많이 아파했는가가 아닌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어 특별하다. 엮은이와 글쓴이들은 하나같이 그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어둠을 함께 걷어내 준 모두에게 감사를 전한다.

1부 '대구의 봄을 기다리며'는 코로나에 빼앗긴 봄을 희망으로 맞고자, 멈춘 대구시가 일상으로 돌아가는 선봉에선 스물다섯 편의 이야기이다. 2부 '대구의 희망을 보듬다'는 '새순을 내는 버드나무처럼 꿋꿋하게 이웃을 향해 팔을 벌리는 마음들이 가득한 스물여섯 편이 담겼다.

'코로나에 빼앗긴 봄' 편에서 코로나19 대응기간 동안 꾸준히 식당을 열어 주신 주변 사장님들께 대한 고마움을 다시 느꼈다. '당신들이 이상화고, 유관순이고, 안중근입니다' 시민들의 뜨거운 사랑이 담긴 커피폭탄은 전국 곳곳의 코로나19 현장에도 끊임없이 투척되었다. 더운 차에서 차가운 음료가 필요한 5월까지도.

오랜만에 마당의 쑥인지 돌나물인지 잡초인지를 헤집어주었다. 어라, 옮겨 심은 지 오래건만 낮게 피어 수일 만에 지곤 하던 할미꽃이 발그레 얼굴을 내밀었다. 키도 훌쩍 자라있다. 한 포기뿐이어도 친구들의 사진 속 곱고 풍성한 꽃만큼이나 반갑다. 여전히 밤근무는 이어지고 있지만, 5월의 시작에 할미꽃 한 송이가 선물한 잠깐의 순간에 나는 코로나19를 지나온 긴 겨울을 떠나보냈다.

마음은 무거운데 대구 시민의 그때를 떠올리면 기운이 난다. 6일부터 '생활 속 거리두기'가 시작했다. 보건소가 일상으로 되돌아오기는 아직 멀었다. 학생들이 학교에 가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작은 부분부터 조금씩 그때가 가까워지고 있기를 기대한다.

보건증도 안 되고 약 처방도 안 된다는 대답을 하려면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가 필요하다. 여전히 보건소 정문에는 선별진료소가 운영되고 일상은 닫혀 있지만, 그래도 11일에는 간호학생들의 실습도 시작이다.

서강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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