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울음소리를 듣기 어려워지는 저출산 시대, 생과 사의 경계에 위태롭게 선 수많은 고위험 임산부와 아기를 구하기 위해 날마다 분투하는 의사가 있다. 이 책을 쓴 성균관의대 삼성서울병원 산부인과 오수영 교수가 바로 그 의사다. 저자는 스무 해가 넘도록 산부인과 의사로 일하며 만나온 수많은 고위험 임산부와 손끝으로 받아낸 아기들을 마음에 품고, 기억을 기록했다. 이 책에는 '생명의 탄생'을 함께하는 산부인과에서 고위험 임산부를 진료하면서 느낀 순간순간이 담겨 있다. 길 한복판에서 애걸복걸하며 택시를 타고 달려가 응급수술을 했던 날, 생후 채 몇 시간을 살 수 없을지라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 아이를 낳고 싶다는 임산부의 수술을 집도한 날, 여섯 번의 유산 끝에 아기를 품에 안고 울었던 산모의 배를 봉합한 날 등등 저자가 거쳐온 이 모든 날의 이야기에는 의료진의 가쁜 숨과 더없이 애틋한 부모의 마음, 갓난아기의 어여쁜 첫울음이 깊게 배어 있다.
◆ 가장 사랑하는 사람, 가장 먼저 만난 사람
임신과 출산을 직접 겪지 않았다면, '산부인과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라는 말이 그저 막연하고 경이롭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놀랍고 가슴 뛰는 산부인과의 이야기를, 책을 읽는 모든 사람의 이야기로 바꾸어 놓는다. 탯줄이 목에 네 번이나 감긴 채 기적처럼 태어난 아기의 이야기를 보면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 들고, 거의 매일 힘겨운 투석을 하며 태아와 자신을 지켜낸 임산부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저절로 응원의 말이 나온다.
'대량 출혈이 발생한 임산부를 수술하면서 걱정과 근심이 가득했는데 눈을 떠 보니 꿈이었다'는 대목에서는 의사의 마음에 공감하게 된다. 곳곳에 수술 장면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한 생생함과 소중한 생명의 의미를 되짚어 보게 하는 진정성 있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책을 읽다 보면 생명의 가치와, 이를 지키기 위한 부모와 의료진의 간절한 소망과 노력이 독자의 마음에 닿는다.
◆작은 확률 뚫고 찾아와줘 고마워
임신과 출산의 과정은 흔히 기대하는 것만큼 순조롭지 않다. 임신 초기에 질 출혈이 있는 경우만도 4분의 1에 이르고, 산부인과 교과서에 따르면 생리적 유산까지 합할 경우 모든 임신의 반은 유산으로 끝난다. 조산의 빈도는 약 8~10%, 임신중독증의 빈도는 약 6~8%, 임신성당뇨의 빈도는 약 5~10%로 알려져 있다. 이는 임신이 '생리적인 과정인 동시에 병적인 과정'이라서다. 그러니 임신의 합병증이 생기더라도 불필요한 죄책감을 갖거나 '정상'에 연연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자고 저자는 말한다. 그뿐만 아니라 태어나는 아기들을 기준으로 100명 중 2, 3명은 주된 기형이 발생하며, 태아의 이상(異常)은 많은 경우 출생 뒤 수술적 치료가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상황들이 임산부와 보호자에게 힘들 수 있지만, 누구의 잘못도 실패도 아니며 궁극적으로 더 큰 행복으로 돌아올 수 있음을 당부한다.
이를 위해 책 속에 임신과 출산에 관한 의학 상식을 갖출 수 있도록 부록을 더했다. 데이터만이 아니라 여러 사례를 더함으로써 마치 진료실에 앉아 저자의 손짓 발짓까지 더해진 설명을 생생하게 듣는 듯하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도록, 그동안 믿고 따라와준 수많은 임산부에게 감사를 전하는 저자의 마음도 담겨 있다. 328쪽, 1만6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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