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석대의 비행을 담임선생에게 고발하지만 무사안일이 타성이 된 담임은 오히려 석대가 학급 운영을 잘하고 있는데 서울에서 온 '나'가 시기심이 나서 그런 것이라고 하며 도리어 '나'를 탓한다. 그래서 '나'는 결국 저항을 포기하고 엄석대에게 굴복하게 된다. 그러한 대가로 엄석대가 베푸는 혜택을 누리게 된다."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내용이다. 이 소설은 소도시 한 초등학교에서 일어난 사건을 통해 '엄석대'라는 절대 권력의 형성과 붕괴의 모습을 그렸다. 회유와 협박, 거짓말로 끝까지 권력을 유지하려는 엄석대를 보면 권력의 중독성은 무서울 정도다. 사실 권력의 속성상 독점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 역사 속에서 권력의 주체는 늘 바뀌었지만 나만이 꼭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권력욕은 바뀌지 않았다는 점만 봐도 그렇다.
혁명 이전에 혁명을 말하고, 개혁 이전에 개혁을 부르짖지만 한나 아렌트가 말한 것처럼 가장 급진적인 혁명가일수록 혁명이 성공한 바로 다음날부터 보수파가 된다. 혁명 이후 마오쩌둥이 황제 내궁에 자신의 거처를 잡은 것과 레닌이 차르의 궁전인 크렘린에 입주한 것, 인민공화국을 건설한 나폴레옹이 결국 황제 자리에 오른 것을 보면 혁명이나 개혁의 이름들은 권력을 얻기 위한 정치적 레토릭(rhetoric)에 불과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조선왕조 개국 공신세력인 훈구파의 권력독점과 세습을 비판한 사림(士林)들은 그들이 정권을 잡은 후에는 보수화되었다. 심지어 패거리 정치로 분열하여 반대파를 소인으로 치부했고 훈구파들이 그들에게 자행했던 그 이상의 정치보복을 서로에게 가했다. 그 후 극단적 패거리 정치는 안동 김씨 한 가문이 나라를 좌지우지하게 만들었으며 시아버지와 며느리 사이인 흥선군과 민비는 외세를 끌어들여서라도 권력을 잡겠다는 패륜적 역사를 만들어냈다. 조선의 패망은 너무나 당연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왕을 가질 필요도, 가질 수도 없다. 1948년 8월 15일, 국민이 주인이고 세습에 의한 군주제를 부정하는 민주공화국은 탄생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역사는 숨 가팠으며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동족상잔, 개발독재, 민주항쟁과 이념대결 그리고 위헌정당해산심판과 대통령탄핵심판까지 경험하였다. 한강의 기적과 10대 무역강국, 국민소득 3만불 시대를 연 대한민국이 선진국 반열 가까이 성장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념과 파벌의 잔재는 국민을 양쪽으로 분열시켰고 일부 정치세력들은 '진영논리'라는 무소불위의 사상검증으로 극단의 갈등을 부추겨 양극화의 팬덤은 두터워지고 있다. 그 결과 정치권은 사회 갈등의 조절과 통합의 역량을 상실하였고, 공정성과 투명성이 왜곡된 것들에 대한 언론이나 시민사회의 비판은 진영논리와 확증편향 앞에서 무기력해져 이념이 만든 선악의 프레임은 견고해졌다.
헌법 제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영어로 'Republic of Korea'이다. '민주'와 '공화'는 우리나라의 국시(國是)로 볼 수 있는데 '국민에 의한' 정치적 이념인 '민주'가 자리 잡아 가고 있는데 반해, '국민을 위한' 정치적 이념인 '공화'는 다소 더디게 가고 있지 않나 하는 아쉬움이 든다. 이제는 정치적 과정에 있어 평등을 뜻하는 '민주'를 넘어 정치적 결과에 있어 평등을 뜻하는 '공화'를 제대로 실천해야 하는 정치적인 시간들이 왔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공화'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국어사전은 두 사람 이상이 공동 화합하여 정무(政務)를 시행하는 일로 정의하고 있으며 최장집 교수는 공화주의를 공공선에 대한 헌신, 공적 결정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와 모든 시민이 공동체로부터 배제되지 않고 권리와 혜택을 누리는 시민권의 원리, 시민적 덕에 대한 강조를 핵심 내용으로 보았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공화주의의 선결조건은 '공공선'의 확립이다. 그러나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싸우는 현실정치에서 '공공선'의 합의와 실천은 말처럼 쉽지 않으며 공화의 미덕인 공동의 화합보다는 힘의 논리에 의한 승자독식주의의 유혹에 빠져들기 쉽다. 사실 시기별로 '공공선'의 개념은 불명확하게나마 존재했었다. 1940~50년대는 조국의 독립과 통일이었고, 1960~70년대는 경제성장, 1980~90년대는 민주화였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성장이냐 분배냐, 보수냐 진보냐의 이분법적 논쟁은 이념이나 진영논리를 벗어나 '공공선'에 대해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을 협소하게 만들었다. 따지고 보면, 보수나 진보를 표방한 유력정당들의 공약은 중위투표자(median voter)의 선호를 무시할 수 없기에 큰 차이는 없었다.

바야흐로 통합이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시대가 왔다. 국민 통합의 사상적 기반인 공화주의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법치주의 안에서 국민적 동의와 이익의 공유에 결속된 공동체가 주류가 되어야 한다. 늘 '공공선'에 관심을 기울이고 참정권을 꾸준히 발휘하는 '깨어있는 국민'만이 진정한 민주와 공화의 가치를 지킬 수 있다고 본다. 이제 사상의 시대는 끝났다. 사회 구석구석에서 암세포처럼 자란 기득권화된 카르텔을 혁파하고 공정한 사회 시스템을 확립하여 궁극적으로 국가 공동의 이익을 국민들에게 나눠줘야 하는 실천적 과제만이 남았다. 이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과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정치세력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따라서 실제로 '성장'시킬 능력이 없는 보수와 실제로 '분배'할 생각이 없는 진보라는 이념으로 정치생명을 연장하는 세력들에게는 더 이상 우리 사회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고 본다.
결국 공정에 기반을 둔 공공선을 구축하고 국민의 이익에 기반을 둔 공화주의를 실천하는 세력만이 정권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요즘 똑똑하지 않는 국민은 없다. 그렇기에 정치의 역할은 국민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갈등을 조정하고 통합과 상생의 메커니즘을 찾고 만들어 내는 것이다. 민심이라는 큰 바람을 읽고 민생이라는 큰 파도를 볼 수 알아야 정치인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이다. 또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국민이 주인이고 정치인은 언제든지 교체될 수 있는 대리인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고려 왕건을 승리로 이끈 주역의 13번괘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큰 강을 건너는 것이 이롭다."
이제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인 보수와 진보라는 큰 강을 건너자!
두려워하지 말고, 망설이지도 말고, 낡은 이념의 강을 함께 넘고, 흑백논리의 진영을 벗어나 함께 상생할 수 있는 공화의 시대로 건너가자.
자유기고가 이상철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매일문예광장] (詩)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