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낙동가람 수변 역사누림길 조성사업
대구 달성군의 화원동산과 도동서원 일대가 역사문화자원을 활용한 관광개발사업 추진으로 지역 관광명소로 거듭난다.
대구시의 3대문화권사업 일환으로 추진해 온 '낙동가람 수변 역사누림길 조성사업'이 그동안 행정자치부 중앙투자심사 등을 최종 통과함에 따라 '화원역사재현지구'와 '도동유교역사지구'로 나눠 사업 추진이 본격화됐다.
이 사업은 화원지구 7만7천338㎡, 도동지구 3만2천983㎡ 등 일대 국·공유지에 총 사업비 407억8천600만원(국비 268억8천900만원, 시비 138억9천700만원)을 투입해 체험전시관, 테마공원, 조선오현 역사하우스, 서원스테이 등이 조성될 예정이다.
◆화원역사재현지구
지난해 5월 달성군 화원읍 성산리 화원유원지 일대 21만여㎡가 대구시 2호 관광지로 지정·고시되면서 낙동가람 수변역사 누림길 조성사업 가운데 화원역사재현지구에 대한 관광지 조성사업이 더욱 탄력을 받게 됐다.
화원역사지구 사업은 ▷고분전시관(6천757㎡) ▷고분공원(7천838㎡) ▷상화대공원(1만2천724㎡ ▷봉수대 복원(240㎡) ▷팔각정 리모델링(181㎡) ▷먹거리 공간조성(1만5천341㎡) ▷녹지(2만7천㎡) 등으로 이뤄지게 된다.
이처럼 화원지구는 성산리 고분군과 봉수대 등을 주요 테마로 사업이 이뤄지는 것이 특색이다. 화원읍 성산리 산28번지 일대에 위치한 고분군은 삼국시대 때 조성된 대형 고분군이다. 대구 분지의 서쪽 진천천과 천내천이 합류해 낙동강으로 유입되는 지점 사이에 형성된 해발 50~85m의 구릉 상에 분포하고 있다.
이 구릉은 북에서 흘러오다 대구분지 앞에서 곡류하는 낙동강 동안에 접해 있다. 또 남쪽에는 설화리 고분군과 산성이 배치돼 있다.
5세기 무렵 대구에 크게 5개의 정치 체제가 등장하게 된다. 신천 상류, 대구 중심권, 북구 칠곡권, 달성군 다사 일대, 그리고 화원 성산리에 집단을 형성한 이들은 각자 영역을 관할 통치했다. 화원 성산리 고분의 주인공들은 설화리, 명곡리 지역을 통치하던 지배층이었다.
1999년 경북대박물관이 4개월에 걸쳐 성산리 고분군을 조사한 결과 토기류 428점, 금속류 194점이 출토됐다. 이 중 가장 관심을 끈 것은 은제 새 날개 모양 관장식, 금귀고리, 금동제 허리띠장식, 철제 큰칼 등이었다. 왕관의 출토는 없었지만, 상당히 높은 수준의 장신구들이 발견돼 피장자의 신분이 수장급이었음이 입증됐다.
피장자의 위세와 관련해 또 주목할 만한 발굴이 있었다. 주곽에서 발굴된 순장 유적이다. 가야 고분에서 보듯 순장은 생명을 담보로 지배자의 권위를 나타내는 직접 증거다. 피장자가 이 지역에서 상당한 권력을 행사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달성군은 고분전시관을 설치해 이곳 성산리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을 널리 알리게 된다. 고분전시관은 건축면적 3천285㎡(연면적 6천757㎡)에 지하 2층, 지상 2층 규모로 조성될 예정이다. 또 다른 부대시설로 지상 4층(18.6m) 높이의 상화대 팔각정도 새로 리모델링된다.
또한 옛 대구읍지에 '대구부에서 서쪽으로 30리 떨어진 하북면(河北面)에 마천산 봉수대가 있고 남쪽으로 화원의 성산 봉수에 응하며, 북쪽으로 성주목의 각산봉에 알려주니 거리가 30리'라고 기록돼 있다. 따라서 조선시대 때 상화대 정상에 설치됐던 봉수대도 이번에 복원된다.
◆도동유교역사지구
조선시대 나라 안 각지에 세워진 유교 교육기관인 '한국의 서원'이 한국의 14번째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됐다. 지난해 7월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달성군의 도동서원 등 9개 서원을 세계유산목록에 올리기로 결정했다.
달성군이 추진중인 도동서원을 중심으로 한 '도동유교역사지구' 사업으로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 56번지 일대에 조선오현 역사하우스(99㎡), 서원카페(64㎡), 서원문화원 2개동(129㎡), 서원스테이 4개동(229㎡)과 수변탐방길, 산림탐방로 등을 조성하게 된다.
도동서원은 영남을 대표하는 수원(首院)중 하나로서 1568년(선조 원년) 현풍현 동쪽 비슬산 기슭에 건립한 쌍계서원이 시초다. 1573년(선조 6년) 사액을 받았고, 이후 임진왜란 당시 화재로 소실됐다.
임란 이후 향촌사회의 피폐와 물력의 부족으로 10여년간 중건되지 못하다가 1604년 현풍현 서쪽 15리 오설면 도동의 김굉필 무덤 아래로 옮겨 중건됐다. 이때 서원명을 '보로(甫老)'로 개명됐다가 이후 감사의 계청으로 다시 도동으로 사액됐고, 1610년(광해군 2년)에 봉안했다.
낙동강 바로 옆에 자리한 도동서원은 우리나라 서원 건축의 백미, 성리학적 서원 건축 미학의 정수로 꼽힌다. 대니산 서북쪽 끝자락에서 낙동강을 내려다보면서 경사지를 이용해 서원의 건축 배치를 탁월하게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도동서원은 조선 시대 성리학을 이끈 다섯 명의 대가를 일컫는 '조선오현(朝鮮五賢)' 중 으뜸으로 꼽히는 한훤당 김굉필 선생을 모신 곳이다. 퇴계 이황은 김굉필을 두고 '공자의 도가 동쪽으로 왔다'며 극찬했다. 김굉필을 기리는 서원에 '도동'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다.
전형적인 배산임수, 산을 등지고 물을 바라보는 곳에 자리잡은 도동서원에 들어서면 앞을 지키고 선 은행나무가 400여 년 세월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건물중 강당의 현판은 선조 때 걸었는데 배대유와 이관징의 글씨이고, 서원 내 신도비는 1625년(인조 3년) 김대진이 후손과 사림, 경상감사 이민구의 협력으로 세웠다. 그 글은 장현광이 짓고 사헌부 감찰 배홍우가 썼다.
수문장 같은 은행나무를 지나 출입문인 수월루로 들어서면 보물처럼 숨겨진 공간이 마법처럼 펼쳐진다. 고개를 숙여야만 들어설 수 있는 환주문은 학문과 선현 앞에서 예를 갖추고 삼가라는 뜻을 말없이 펼쳐 보인다.
배움을 전수하는 도량인 중정당에는 굵은 민흘림기둥 여섯 개가 있고, 위쪽에는 상지(上紙)라 불리는 흰 종이띠가 둘러져 있다. 흰 띠는 조선오현 중 으뜸을 뜻하는 수현을 모신 서원임을 나타낸다. 으뜸은 하나이니 상지를 두른 서원도 전국 서원 가운데 도동서원이 유일하다.
마루 아래 기단에는 선비들의 학문 성취와 출세를 기원하는 용머리가 4개 돌출돼 있다. 특히 돋보이는 것은 기단을 쌓은 돌들의 독특한 모양이다. 4각, 6각 심지어 12각의 돌을 맞춰 기단을 쌓았는데, 전국의 제자들이 스승을 추모하기 위해 돌을 보내 쌓았다. 이른바 '다듬돌 허튼층 쌓기' 기법이다. 색깔도 다르고, 모양도 다른 돌들이 한데 어우러져 조각보처럼 조화를 이룬 모습에 쉽사리 눈이 떨어지지 않는다.
건물 주위를 둘러싼 낮은 흙담이 단아함을 뽐낸다. 암키와와 수막새, 그리고 흙을 이용해 담을 쌓았는데 음과 양의 조화를 구현한 것이다.
김굉필을 제향한 서원은 전국 15개소 가운데 경상도에만 5개의 서원이 있었다. 하지만 1871년(고종 8년)의 대원군 훼철 당시 도동서원만 남게 되면서 김굉필을 제향하는 대표적인 서원이 됐다. 1963년 강당, 사당, 담장은 보물 제350호로, 2007년 10월에는 서원 전역이 사적 제488호로 지정됐다.
공동기획:달성문화재단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김정숙 소환 왜 안 했나" 묻자... 경찰의 답은
"악수도 안 하겠다"던 정청래, 국힘 전대에 '축하난' 눈길
李대통령 지지율 2주 만에 8%p 하락…'특별사면' 부정평가 54%
국회 법사위원장 6선 추미애 선출…"사법개혁 완수"
한문희 코레일 사장, 청도 열차사고 책임지고 사의 표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