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2 때 일이다. 옆짝 친구는 팝송에 대한 지식이 다른 친구에 비해 월등히 뛰어났다. 한 번씩 팝송을 모르는 친구들 앞에서 거들먹거리는 친구의 모습이 보기 싫었다. 그 지식의 노하우를 가르쳐달라고 사정을 해도 잘 가르쳐 주지 않았다. 일종의 영업 비밀이었다. 주한미국 라디오를 통해 팝송 지식을 습득하고 있다고 주장할 때도 있었지만, 당시 그녀석의 영어성적은 최하위였다. 호시탐탐 그 실체를 파악하는 중, 친구 책가방 속에서 한권의 책을 우연히 발견하였다. 팝송전문잡지인 '월간팝송'이었다. 고등학생 형들이 보는 잡지책을 구독하고 있었다. 중학생 용돈으로는 매달 사기에는 나에게는 버거운 책이었다. 그 후 친구 몰래 헌책방에서 잡지를 구해 공부하듯이, 팝송을 연구하였다. 차츰 팝송 지식이 친구보다 더 월등하여, 나에게 팝송을 물어보는 주위 친구들이 더 많아지기 시작하였다. 정보의 원천이 어디에 있는지 미리 알고 있으므로 그 친구가 하는 팝송이야기는 최소한 나에게는 '하나마나 한 이야기'에 불과했다.
세상을 살다보면, 하나마나 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종종 만나게 된다. 특히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갑(甲)인 경우 그 의도를 잘 파악해야 한다. 대부분 그 특징은 진실을 부정하는 편파적인 사실의 왜곡이거나, 미사여구로 포장된 막연한 희망고문 메시지로 일관되는 경우가 많다. 옛날에 어느 유명 교수가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 청년들에게 영혼 없는 주장을 한 적이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고, 아프면 먼저 병원부터 가야한다. 한마디로 사회적 좌절을 개인이 극복할 도전과 열정이라고 무조건 강요한 것이다. 어그로(aggro) 쩌는 소리다. 대책이 없고 무책임한 선동이라는 뜻이다.
요즘 하나마나 한 이야기를 정파적으로 이용하는 정치권 무리들이 팬덤정치의 주술에 빠져, 별생각 없이 분출하고 있다. 정치권의 메시지가 동네 양아치의 술자리 이야기보다 더 볼품이 없다. 권력의 오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이다. 그러나 소수의 동의를 받는 못하는 다수결의 지배는 '천박한 민주주의'에 불과하다. 민주공화국의 기본원리로 돌아가야 한다.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은 '적'이 아니라, '경쟁자'다. 적은 적대적 분노를 유발하지만, 경쟁자는 토론과 합의를 존중한다. "이게 나라냐?, 나라가 니거냐?"의 이분법적 진영논리가 중요하지 않다. 나라다운 나라가 더 중요하다. 코로나 이후 험난하게 다가올 국운 100년의 나라 운명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정치는 운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신념으로 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뭔지 아니?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란다." 생떽쥐페리의 '어린왕자'에 나오는 영양가 있는 이야기가 갑자기 생각난다. 민심부터 챙겨라. 민심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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