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방자치 시대의 골자는 행정 중심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즉,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동네에 필요한 업무를 추진하는 자치조직이 이끌어가는 것이다. 자율방재단, 자율방범대, 통장협의회, 재향군인회 등 동별로 있는 10여개 조직단체가 그러한 역할을 한다.
이들이 주민자치의 실핏줄에 해당한다면, 주민자치위원회는 대동맥이다. 주민들로부터 수렴한 현안을 행정기관에 건의하는 주민들의 대변인인 셈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지방자치법 전부 개정안의 핵심이 주민자치회'인 이유이기도 하다.
올해 50주년을 맞는 침산3동 주민자치위원회는 주민 전체의 화합과 단결에 앞장선다는 점에서 수범사례로 회자된다. 그 운영의 밑바탕에는 '소통'과 '행동'이 자리잡고 있다.
◆주민 스스로 만들어 가는 동네
통상 주민자치위원회라면 동사무소의 하수인이라는 선입견이 강하다. 하지만 침산3동은 주민과 행정기관이 공생하고 있다. 동네의 일을 결정하려면 주민과 행정기관 간 상호협력이 필수다.
조석희 침산3동장은 "눈이나 비가 올 때면 위원회 회원들이 직원들보다 먼저 나와 마을 피해가 없는지 살핀다. 얼마 전 폭우 때도 주민자치위원장이 신천에 물이 많이 넘쳤다고 알려줬다. 동네의 취약지대를 속속들이 잘 알고 있으며 순찰하고 알려준다"고 말했다.
주민자치위원회 회원들은 마을의 구석진 곳까지 직접 찾아다니며 방범 순찰과 거주환경 개선을 위해 힘쓰고 있다. 침산3동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노후 개별 주택들도 빠뜨리지 않고 살핀다. 특히 침산(구 오봉산)과 인접한 주택과 건물 20여 세대는 산과 맞닿아 있다시피 해 각별한 주의를 기울인다.


주민자치센터 프로그램 운영은 주민자치위원회의 주요 업무 중 하나다. 침산3동 주민자치위원회는 14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등록된 회원 수만 약 450명이다.
프로그램 운영과 계획 수립은 회원들과의 꾸준한 대화를 바탕으로 한다. 맞벌이, 직장인을 위한 배려도 잊지 않는다. 인기 프로그램 중 하나인 '요가'는 야간반을 추가로 개설했다. 매주 화, 목 오후 7시 30분부터 시작해 직장인도 퇴근 후에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힘든 '챠밍댄스' 프로그램도 젊은 주민들과 대화를 하다 힌트를 얻었다.
청장년이 조화를 이루는 프로그램 배치는 필수다. 지난해부터는 회원 등의 건의에 따라 '다도(茶道) 고급반'을 신설했다. 대중화된 일반 다도교실과 차별화시켜, 정통 격식을 그대로 갖춘 전문화 과정이다.
◆주민들이 불편해하는 곳 찾아 개선
침산3동 주민자치원회가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은 2만 명이 넘는 주민들의 안전 확보와 쾌적한 주거환경 조성이다.
우선 안전 확보를 위해 협력단체인 자율방범대와 함께 우범지대 개선에 총력을 기울였다. 총 47명의 자율방범대원들이 매주 월~금요일 오후 9~11시까지 2시간 가량 동네 순찰을 돌며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곳을 돌아본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침산3동 자율방범대는 2017년도 전반기, 2018년도 후반기 대구시 최우수 방범단체로 선정되기도 했다.
쾌적한 주거환경을 조성하고자 침산3동 주민자치위원회가 역점을 둔 사업 중 하나는 침산변전소 녹지공간 조성사업이었다. 침산변전소가 들어서면서 변전소 옆 공간을 공원으로 만들어 주민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했지만,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우범지대처럼 쓰레기가 뒹구는 곳으로 전락했었기 때문이다.
공원 관리 주체는 북구청이었지만 관리 범위가 청소 정도에 지나지 않아 시설 정비 등에 어려움을 겪었고, 공원이 사실상 방치되고 있었던 것.
결국 주민자치위원회가 나서서 한전 등 관계자들을 설득했고, 지난해 9월 한전과 북구청 간 이용협약을 체결해 땅 매입 등을 제외한 모든 시설 정비·관리를 북구청이 맡도록 조정하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올 5월 예산 9천만원을 들여 본격 녹지대 정비에 착수했다. 운동기구를 한쪽으로 치우고, 주민들이 쉴 수 있는 벤치도 조성했다.
양 기관이 협약을 체결하기까지 조정 과정에서 주민자치위원회의 활약이 컸다. 동네 사정을 하나에서 열까지 가장 잘 알고 있어 가능했던 것이었다.
무림제지 삼거리 회전교차로 조성사업에도 동네 사정에 정통한 토박이들의 목소리가 대거 반영됐다. 2018년 배광식 북구청장이 이곳을 방문했을 당시, 이들은 무림제지~백사벌네거리 구간에 유턴구역이 없어 주민 불편이 크다는 점을 지적하며 회전교차로 설치를 강력하게 건의했다.
북구청은 이에 화답해, 2억8천만원을 들여 지난해 9월 회전교차로를 완공했다. 회전교차로가 생기자 교통사고가 눈에 띄게 줄었을 뿐 아니라 다른 효과들도 따라왔다. 인도 확장으로 횡단보도 거리가 줄면서 보행자 안전이 확보됐고 교통섬에 소나무, 꽃잔디를 심어 주변 경관도 크게 개선됐다. 주민들의 민원을 흘려 듣지 않고 적극적으로 구청에 건의한 결과였다.
◆코로나19 극복도 주민 자치의 힘으로
주민 안전과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주민자치위원회의 활약은 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빛났다. 지난 3월 회원들은 뜻을 모아 마을 방역작전에 나섰다. 당시는 코로나19 확산세로 온 대구시민이 몸살을 앓던 절체절명의 시기였다.
이들은 주민자치위원회 회비로 방역복, 소독약, 분무기 등을 구입했다. 북구청은 마스크를 지원했다. 방역복을 제대로 갖춰 입고 침산3동 구석구석을 살피며 방역작전에 나섰다. 학교 주변, 버스정류장, 다중이용시설, 주거취약계층을 비롯해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갔다. 조를 나눠 3월 한 달 동안 매주 토, 일요일 집중 방역을 실시했다.

처음 겪어보는 혼란에 모두가 위축됐던 시기였기에 방역작전은 녹록지 않았다. 매번 방역작전에 참가했던 황효진(60) 씨는 "처음에는 방역하러 나가면 찾아오는 것 자체를 싫어하거나, 피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주민자치위원회 회원들의 진심은 닫혀있던 마음조차 누그러뜨렸다. 황 씨는 "한두 번에 그치지 않고, 꾸준히 방역을 하러 나오니 처음에는 외면했던 주민들이 고맙다며 커피를 끓여다 주더라. 굉장한 자부심을 느꼈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 자치분권제도과 한치흠과장은 "지방자치법 전부 개정을 준비하는 정부 입장에서 대구 북구 침산3동 주민자치회는 상당한 모범사례"라고 칭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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