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립습니다] 박호용 씨 스승님 故 육종수 교수

故 육종수 교수의 생전모습. 독자제공.
故 육종수 교수의 생전모습. 독자제공.

육종수 교수님은 내가 대구대 법과대학 3학년이던 2004년에 '헌법과 통치구조론' 수업을 가르치셨다. 당시 교수님은 명예교수로 학교에 계셨다.

강의 첫날 교수님은 "나는 중간 기말고사 때 '헌법전문'만 적어도 기본점수는 주는 교수다. 그래서 학생 중 일부가 그것을 악용한다. 하지만 헌법전문이 기본인 것은 사실"이라고 말씀하셨다. 16년이 지난 아직도 이 말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육 교수님의 수업을 들은 학생이라면 '헌법전문' 하면 육종수 교수님, 육종수 교수님 하면 '헌법전문'이 생각날 것이다. 그 정도로 우리들의 가슴에 헌법전문의 중요성을 각인 시켜 주신 교수님이다.

그런 교수님을 10여 년이 지난 2018년 가을쯤부터 천주성삼병원에서 여러 차례 마주쳤다. 교수님께서도 연세가 드셔서 진료를 받으시러 가시는 중이었다. 가벼운 인사만 나누었다. 병환이 무엇인지 묻고 싶었지만,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여쭙지 못하였다. 교수님께서 우리 동네 근처에 있는 욱수성당에 다니신다는 것을 알았다. 욱수성당 다음카페에 들어갔다가 교수님께서 노인의 날 행사에 참여하시려고 버스에 타신 모습을 찍은 사진이 있었다. 회색 모자를 쓰시고 약간 짙은 안경을 쓰신 상태였지만 교수님의 이목구비는 알아볼 수 있었다. 나는 참고로 욱수성당 근처에 매호성당 신자로 가끔 욱수성당 다음카페에 들어가 본다. 그 후에도 몇 번 천주성삼병원에 가다가 교수님을 마주쳤고 간단한 인사만 나누었다.

올해 지난 6월 말에서 7월 초쯤 천주성삼병원 쪽에서 걸어 오시는 교수님을 뵜었다. 당시 함께 계시던 사모님께 처음으로 인사를 드린 뒤 나는 진료를 받으러 갔다. 그때가 교수님과 마지막 만남이었다.

젊은 시절 육종수 교수의 모습. 독자제공.
젊은 시절 육종수 교수의 모습. 독자제공.

올해 추석 연휴를 앞둔 주말에 욱수성당 다음카페에 들어가 보았다. 욱수성당 카페는 욱수성당 위령회 카페와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위령회 카페에 '육프란치스코 형제님 장례미사'라는 제목의 사진들이 올라와 있었다. 나는 혹시나 해서 클릭을 해보니 교수님의 장례미사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교수님의 장례미사에도 참석하지 못해 죄송스러웠다.

나는 곧 신문사의 인터넷 사이트를 검색해 보았다. 그런데 어느 곳에도 부음 기사가 나오지 않았다. 코로나 19 재확산 때문이었다. 혹시나 해서 '대구대학교 법과대학 총동창회' 밴드에 들어가 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결국 교수님의 부고는 내가 올렸다.

나는 욱수성당에 전화를 걸어 내 번호를 남겼다. 정오를 지난 시점에 사모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그제야 나는 사모님께 위로를 드리고 교수님께서 3년 동안 지병으로 투병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갑자기 병세가 나빠져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사모님께서는 같은 성당 사람들과 지인 몇 분에게만 부고를 알리셨다고 하셨다.

8월 23일 홀연히 떠나신 육종수 프란치스코 교수님 당신께서는 남북통일의 염원을 담아 2002년 "대구법학" 제5호에 "통일헌법 이념의 정립방안"을 발표하셨습니다. 교수님 저 세상에서도 기도해 주세요. 당신의 염원인 통일이 이루어지기를, 사모님께서 빨리 이별의 슬픔에서 벗어나시기를, 그리고 어서 빨리 이 코로나 19 시국이 끝나 제자들의 늦은 효도를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해 주세요

마지막으로 교수님이 중시하시는 헌법전문을 영전에 올립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 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당신의 제자인 매호성당 박호용(GS홈쇼핑 매장마케팅팀 재택근무 매니저) 토마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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