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국회의 국정감사는 흔히 '야당의 시간'이라고 한다. 그러나 21대 국회의 첫 국정감사에서 야당은 별다른 성과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야당의 투쟁성이 떨어지고 지엽적인 문제에 얽매여 제 역할을 못했다고 비판하고, 다른 쪽에서는 여당의 방탄국회 운영으로 사실상 국정감사가 공전되었다고 한다.
175석의 절대다수 의석의 여당에 비해 야당의 의석이 매우 적고 상임위원장 모두를 여당이 독식한 구조에서 야당의 투쟁이 한계가 있음은 부인할 수 없지만 그것이 야당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야당은 국정감사를 통해 정부 여당의 책임을 부각시키고 창의적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여 야당의 집권 가능성을 높여야 했다. 이런 점에서 국민의힘은 총체적으로 실패했다. 그러니 서해상에서 실종 공무원 사살 및 시신 소각 사건과 라임 및 옵티머스 펀드 사기 사건에 청와대 행정관 관련 의혹 등 여당의 악재가 쏟아져도 국민의힘 지지도는 오르지 않는다. 무엇이 이처럼 야당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는가.
김종인 비대위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전향적 태도와 당명 변경, 경제민주화 등 변화를 시도했지만 그뿐이었다. 이름을 바꾸고 정강정책을 수정해도 국민들은 그 밥에 그 나물로 본다. 문재인 정부의 임기가 불과 1년 반 남았음에도 국민의힘이 대안으로 부상하지 못하는 것은 야당의 실패를 넘어 이 나라 보수주의자들의 본질적 문제 때문이라고 보아야 한다.
미국에서는 연방 대법관 후보 에미 코니 배럿(Amy Coney Barret)의 인사청문회가 시작되었다. 배럿은 대부분의 대법관이 졸업한 명문 하버드나 예일대학 출신이 아니라 지방 대학인 인디애나주 노틀댐대학 출신이다. 명문대 진학이 충분할 정도로 뛰어난 능력이 있었던 배럿 스스로 노틀댐을 선택했다고 한다. 그녀는 법 해석 시 그 법이 제정될 당시의 역사적 배경과 상황, 입법 의도 등을 문구를 통해 충실히 해석하는 원전주의에 충실한 문언주의자(textualist)이다.
그런 배럿이 연방대법관 후보로 지명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즉흥적 판단이 아니었다. 1987년 레이건 대통령이 지명한 로버트 보크 대법관 후보가 인준에 실패했고, 1990년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지명한 데이빗 수터 대법관은 진보 성향으로 바뀌었다. 연방대법원이 다수의 진보파에 의해 구성되자 위기를 느낀 미국 보수 지식인들은 로펌, 학계, 기업, 연구소 등에 흩어진 법조인 중 최고의 자질과 능력을 지닌 젊은 보수주의 법학도를 찾는 네트워크를 구성했고, 이에 발탁된 사람이 배럿이었다. 보수주의자들은 그녀의 논문과 판결을 면밀히 분석하여 보수주의를 대표할 법조인으로 낙점했고 로스쿨 졸업 후 꾸준히 각종 요직에 추천하여 경력을 쌓도록 기회를 부여했다. 그렇게 성장한 48세의 배럿이 상원 법사위의 인준 청문회에 선 것이다.
연방대법관 한 사람을 지명하기 위해 30년을 꾸준히 키워 온 미국 보수파 법조계의 노력에 비하면 우리나라 보수주의자들의 사람 키우는 노력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보수 정당의 정치 신인 발굴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영입된 사람들이 정말 보수주의를 대표할 최고의 자질과 능력을 보유한 보수주의자인지 검증조차 없었다. 정계에서는 경쟁 상대로 인식하여 능력 있는 보수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것을 오히려 견제하고 막는 데 급급했다. 지금 보수우파가 진보좌파 집권 세력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능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이 나라의 미래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워진 것은 보수주의자들의 인재 발굴 및 양성 체계의 부재와 무관하지 않다.
지금 이 나라는 70년에 걸친 노력이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해 있다. 보수주의자들은 위기를 극복할 사람을 키우지 않으면서 비판과 한탄만 하고 있다. 아이 하나를 잘 키우려면 마을 전체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속담이 있다. 미래를 짊어질 최고의 자질과 능력을 지닌 보수 정치인들을 키우지 못한 이 땅의 보수주의자들은 역사 앞에 그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유능하고 품격 높은 보수 정치인을 양성할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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