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남침 전 김일성은 은밀히 소련을 방문해 스탈린에게 소련군의 파병을 요청했다. 그러나 스탈린은 남침을 찬성하면서도 파병은 거부했다. 미국과의 전쟁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 대신 마오쩌둥(毛澤東)에게 부탁하라고 했다. "당신 얼굴이 쥐어 터져도 나는 손가락 하나 꿈쩍하지 않을 것이다. 마오쩌둥에게 도와달라고 하라."
이에 따라 김일성은 1950년 4월 마오를 만나 "1개 병단을 빌려 달라. 이들에게 인민군 복장을 입혀 남침 부대의 주력으로 삼고 싶다고 했다"고 했다. 마오는 이를 들어주기로 하고 그해 10월 2일부터 8일까지 세 차례 정치국 회의를 소집해 의견을 들었다.
이에 앞서 10월 1일 마오는 스탈린으로부터 "5, 6개 사단을 보내 김일성을 지원하고, 병력의 명칭을 '자원병'으로 해 중공이 전쟁에 개입하지 않은 것처럼 꾸미라"는 주문을 받았다. 마오는 이미 준비하고 있었다. 일부 병력을 북·중 국경으로 이동해 둔 상태였다. 그리고 스탈린의 전문이 오자 곧바로 "언제든 한반도로 진군할 수 있도록 대기하라"고 명령했다. 첫 번째 정치국 회의에서 마오는 "개입은 불가피하니 파병 일정과 사령관을 정하자"며 파병을 기정사실화했으나 반대가 심했다. 역시 미국과의 전쟁 우려 때문이었다. 격론 끝에 사령관으로 임명된 펑더화의(彭德懷)의 찬성으로 파병이 결정됐고, 마오는 같은 달 15일까지 전쟁 준비를 완료하라고 지시했다.
이렇게 마오가 한국전쟁 개입을 강행한 이유로 여러 가지가 지적된다. 그중 하나로 프랑크 디쾨더 홍콩대 교수는 스탈린과의 경쟁의식을 꼽는다. 소련이 북한 정부 수립을 주도하면서 한반도 내에서 중공의 지분이 없는 취약한 입지를 한국전쟁 개입으로 만회하고 장기적으로는 아시아에서 공산주의 패권국으로 선다는 계산이었다는 것이다.('해방의 비극')
6·25전쟁이 "제국주의 침략 확대를 억제한 것"이란 중국 시진핑(習近平)의 말은 뻔뻔스러운 거짓말이다. 6·25전쟁은 스탈린·마오쩌둥·김일성이 합작한 침략전쟁이었다. 이 난(欄)에서 든 사실을 비롯한 여러 역사적 사실이 분명히 말해주는 바다.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세 폐지해라"…이재명 블로그에 항의 댓글 1만여개 달려
하늘길 열고 미래신산업 엔진 장착 '대구혁신 100'…2년간 9조2천억원 투자 유치
탁현민 "나의 대통령 물어뜯으면…언제든 기꺼이 물겠다"
김건희 여사, '디올백' 소유권 포기…국가 귀속 의견서 제출
文 “민주당, 재집권 준비해야…준비 안 된 대통령 집권해 혼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