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호환

김성민 시인· 도서출판 브로콜리숲 대표

김성민 시인·도서출판 브로콜리숲 대표
김성민 시인·도서출판 브로콜리숲 대표

'옛날 어린이들은 호환 마마 전쟁 등이 가장 무서운 재앙이었으나 현대의 어린이들은 무분별한 불법 비디오들을 시청함에 따라 비행 청소년이 되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출발! 비디오 여행' 기억나시는지. 비디오테이프로 영화를 보던 때, 영화 시작 전 나오던 문구다(쉽게 말하면 애들은 가라는 말). 텔레비전은 물론 브라운관이었다. 커다란 덩치를 자랑하던, 집안의 중심이었던, 온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던 텔레비전이었다. 이 문구는 이렇게 끝난다. '한 편의 비디오, 사람의 미래를 바꾸어 놓을 수도 있습니다.' 의미심장한 말이 아닐 수 없었다. 첫 문장에 등장하는 '호환'은 호랑이한테 물려가는 사고를 말하는 것일 텐데 옛날이야기 속에 나오는 어리숙하고 친숙한 호랑이가 그 당시에는 큰 근심거리였다고 한다. 상상해보라, 집채만 한 호랑이를 산속에서 불현듯 만나는 장면을. 초가집 마당에 호랑이가 어슬렁거리는 장면을 말이다. 문종이로 얼기설기 풀 붙여놓은 문을 닫아건 집안에서 내다보는 거대한 호랑이를 말이다.

그 호랑이가 2020년 코로나 시대에 나타났다. 그것도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내려왔다.
'범 내려온다 범이 내려온다 장림 깊은 골로 대한 짐승이 내려온다 몸은 얼숭덜숭 꼬리는 잔뜩 한 발이 넘고 누에머리 흔들며 전동 같은 앞다리 동아 같은 뒷발로 양 귀 찢어지고 쇠 낫 같은 발톱으로 잔디 뿌리 왕모래를 촤르르르르 흩치며 주홍 입 쩍 벌리고 워리렁 허는 소리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툭 꺼지난 듯 자래 정신없이 목을 움추리고 가만이 엎졌것다 범 내려온다 범이 내려온다……' 이렇게 범이 나타났다. 이 노래 영상은 이날치 밴드의 판소리와 엠비규어댄스의 힙합댄스를 접목한 것으로 지난 7월 한국관광공사 홍보 영상으로 유튜브에 공개된 이후 3개월 만에 2억8천 회 뷰를 기록했다고 한다. 판소리가 지금 시대에는 오히려 힙한 음악 장르가 될 수 있다. 판소리의 재해석, 다른 장르와의 협업이 대중에 먹혀들어간 것이다. 듣기로 이 작품이 탄생한 데는 코로나의 영향도 있었다고 한다. 작품 활동이 제한적이다 보니 이런 거 한번 해볼까 하는(놀아 볼까 하는) 아이디어가 그 시작이었다는 말을 들었다. 한 정당 최고위원회에서까지 언급, 대한민국 이미지 제고에 큰 역할을 해주었다며 크게 칭찬했다고 한다. 역시 사람은 잘 놀아야 하는데 잘 놀기 어려운 시대다. 잠시 쉬기도 어려운데 놀기까지 하다니 언감생심인가도 싶다.

케이 팝, 케이 방역에 이은 '케이 흥'의 신바람이 분다.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는 일들이 많아서 기쁘다. 이 현상에 대해 경제성과 국가 이미지, 국익 등의 잣대로 접근하는 말과 해석들이 넘쳐난다. '국악을 부흥시켜야 한다. 정책적인 지원이 있어야 한다' 같은 말들이 그것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처럼 신바람 나는 일이 생길 때마다 한마디 거드는 것으로 끝내지 않을 방법은 없을까? 나는 무엇을 하면 좋을까? 이러다 그냥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가 결론이 되면 어쩌나. '국악진흥위원회'라는 곳도 있고 '국악방송'도 있다. 어릴 때 가끔 봤던 TV프로그램 '우리가락 좋을시고(내 기억이 맞는다면)'는 나름 재밌었다. 아, 오후 5시에 하는 'FM풍류마을'이라는 라디오 국악프로그램도 있다. 그러고 보니 이 방송은 나도 자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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