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반친소] 반려동물 장례식장, 유난 떤다고?…'펫로스' 극복 과정이라구요

가족 같은 동물도 죽으면 폐기물, 업체 맡기거나 쓰레기 봉투 버려야

예삐의 추모함 칸에는 소연씨가 쓴 편지가 가득하다.
예삐의 추모함 칸에는 소연씨가 쓴 편지가 가득하다.

차분한 피아노 선율이 흐르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네모 반듯한 추모함이 가지런히 열을 맞췄다. 나무로 짜인 5단의 추모함은 속이 보이지 않아 정갈해 보이기까지 하다. 작은 추모함 칸마다 강아지, 고양이의 사진과 함께 밥그릇이나 목걸이, 다녀간 가족들이 편지가 보관돼 있다. 이 곳은 경북 칠곡에 위치한 반려동물 장례식장 '스윗드림펫'이다.

"예삐야 언니왔어, 오늘은 네가 좋아하는 간식 사왔다" 추모함에 개 껌을 집어넣는 손길이 분주하다. 대구 북구에 사는 진소연 씨는 지난 9월 이 곳에 반려동물 예삐를 안치했다. 멍하니 서있던 소연 씨가 종이에 무언가를 끄적대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더는 붙일 곳도 없는 벽면에 포스트잇을 우겨 넣는다. 예삐의 추모함은 다녀간 가족들의 그리움으로 가득 찼다. 그 사랑은 넘치다 못해 벽면을 타고 줄줄 흐른다.

집에서 임종을 맞은 예삐가 반려동물 장례식장으로 옮겨지고 있다.
집에서 임종을 맞은 예삐가 반려동물 장례식장으로 옮겨지고 있다.

◆ 합법 반려동물 장례식장 잘 찾아보세요

예삐는 15살이 되면서 간 수치가 급격히 높아졌다. 동물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이가 들면 이곳저곳 고장이 난다. 기름진 음식을 피하라던 의사도 결국엔 "좋아하는 것 가리지 말고 맘껏 먹여라"라는 처방을 내렸다. 시한부 선고 같은 말에 소연 씨는 펑펑 울었다고. "그때부터 마음을 다잡은 것 같아요. 진짜 얼마 안 남았구나. 이별이 다가오고 있구나"

가족의 장례를 준비하는 일은 처음이었다. 조부모님의 장례를 경험해 봤으나 그땐 너무 어렸고, 엄마 품에 안겨 졸았던 기억 밖에 없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동물 사체는 두 가지 방법으로 처리한다고 한다. 쓰레기 봉투에 버리거나, 업체를 통해 장례 절차를 치루거나. "가족을 어떻게 쓰레기 봉투에 버리나요?" 라고 물으니 "동물은 죽으면 폐기물 입니다" 라는 무시무시한 답변만 돌아왔다.

농림축산부 허가를 받은 합법 동물 장례식장 정보가 있는 'e 동물 장례 포털'의 도움을 받았다. 소연 씨는 접근성이 좋으면서, 화장 절차를 볼 수 있는 곳을 우선적으로 골라냈다. "믿고 맡기기엔 별의별 장례업체들이 다 있더라고요" 유골함을 받아보니 흙과 나뭇가지로 가득 차 있었다는 기막힌 사연부터 반려동물 사체를 볼모로 비싼 장례 절차를 협박 당했다는 분통 터지는 사연까지. 반려동물을 잃은 슬픔을 악용한 사례는 더러 발생한다.

허례허식 같은 의식도 피하고 싶었다. 업체마다 염습, 추모, 화장, 분골 절차를 묶어 놓은 화장 패키지가 있는데 어떤 옵션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삼베, 면 소재로 제작된 수의를 입힐 것인지 고운 한복을 입힐 것인지. 나무관도 수제 오동나무 관은 일반 관의 가격의 수십 배에 달한다. 심지어 유골을 담아 평생 곁에 두고 보관할 수 있는 돌로 만들어 준다는 곳도 있다. "예삐를 사랑하는 마음이야 금관이라도 짜서 보내주고 싶죠. 하지만 죽어서 그게 무슨 소용이겠어요"

화장하기 전 반려동물을 추모하는 절차. 예삐의 사진이 태블릿 pc에 띄워져 있다.
화장하기 전 반려동물을 추모하는 절차. 예삐의 사진이 태블릿 pc에 띄워져 있다.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시간. 죽은 예삐의 모습은 마치 잠을 자고 있는 것 같다.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시간. 죽은 예삐의 모습은 마치 잠을 자고 있는 것 같다.

◆오지 않을 것 같던 이별 오고야 말았죠

병원이 아닌 집에서 임종을 맞이하고 싶었던 소연 씨는 장례업체를 통해 미리 사후 조치 방법을 숙지해 뒀다. 사후경직이 오기 전 혀를 말아 입안으로 넣어주고 눈꺼풀도 아래로 내려 눈을 감겼다. 체액이나 대소변이 나올 수도 있다고 하여 배변패드를 엉덩이 밑에 깔아 두고 항문 아래쪽을 살짝 짜 주었다. 그러자 힘이 풀리며 항문 근처로 대변이 흘러나왔다.

예삐가 화장하는 기계로 들어가고 있다. 동물장례지도사 분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조심함이 보인다.
예삐가 화장하는 기계로 들어가고 있다. 동물장례지도사 분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조심함이 보인다.

강아지 나이 변환기에 16년 이라는 숫자를 넣어봤더니 사람 나이로 74세가 나왔다. 적지는 않지만 죽을 만큼 충분히 늙은 나이도 아니다. 100세가 나와도 받아들이기 쉬울 리 없다. 동물의 생애는 인간보다 훨씬 속도가 빠르다.

미리 예약해둔 장례식장에 전화하니 바로 오면 된다는 답변을 받았다. 바로 장례를 해 줄 수 없는 상황이라면 아이스팩을 수건으로 잘 감싸 물기가 닿지 않게 근처에 두어야 한다. 보통 48시간 정도는 괜찮다고 하지만 여름에는 사체가 쉽게 부패해 악취나 구더기가 생기는 위생상 문제가 발생한다.

장례 지도사에게 예삐를 인계한지 몇 분이 흘렀을까. 예삐는 하얀 한지에 쌓여 돌아왔다. "마지막 인사를 나눌 때 제일 많이 울었던 것 같아요. 털을 수백 번 쓰다듬으며 이별의 시간을 가졌어요" 7kg이었던 예삐는 작은 유골함에 한 줌의 재로 담겨왔다.

유골은 납골당에 안치했다. 처음엔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다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게 제일 좋지 않겠냐며 수목장이나 묻어주는 것을 제안하셨다. 하지만 이번 만큼은 욕심을 내고 싶었다는 소연 씨. "보고 싶을 때 찾아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싶었어요. 물론 시간이 지나면 자연으로 돌려보내줄거에요. 하지만 당분간은 곁에 두고 싶어요. 예삐도 기다려주리라 믿어요"

반려동물 추모함의 모습. 추모함에는 유골함과 함께 사진과 편지가 수북이 쌓여 있다.
반려동물 추모함의 모습. 추모함에는 유골함과 함께 사진과 편지가 수북이 쌓여 있다.
예삐의 추모함른 시간이 지날수록 가족들의 그리움이 쌓여간다.
예삐의 추모함른 시간이 지날수록 가족들의 그리움이 쌓여간다.

◆ 유난 떤다고? 펫로스 극복하는 과정일 뿐!

"예삐가 떠난 지 보름쯤 지났을 때였나? 지인이 술 한잔하자며 전화가 왔어요. 예삐 49재 중이니 다음 달에 보자고 했더니 49재까지 하냐며 혀를 차더라고요" 반려동물의 상실을 자식의 죽음에 비견하는 이들도 있지만 개새끼 하나 죽은 것 때문에 뭘 그러느냐는 비아냥은 도처에 있다. 떠난 반려동물에게 장례를 치러준다고 하면 "유난 떤다" "개한테 무슨 장례야"라며 따가운 시선이 돌아온다.

아직 우리 사회는 반려동물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이해가 성숙하지 않아 반려동물이 떠나도 슬픔을 제대로 표출하지 못한다. 그러나 보호자들은 가족 같던 반려동물이 세상을 떠나면 잘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은 물론이고, 홀로 남은 것에 대한 상실감을 느끼는 '펫로스 증후군(Pet loss syndrome)'에 시달리게 된다.

남의 시선을 피해 슬픔을 삭히다가는 우울감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다. 펫로스 증후군 극복을 위해서는 반려동물이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슬픔을 충분히 느끼는 것이 중요한데, 좋은 방법으로 '장례 의식'이 손꼽힌다. 장례식은 떠난 사람에 대한 것이지만 동시에 남아있는 사람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장례는 '유난 떠는 일'이 아닌 이별을 위로하기 위한 '당연한 일'이다.

소연 씨 가족은 49일을 오롯이 예삐와 이별하는 시간으로 보냈다. 사람 49재처럼 절차에 맞게 의식을 치른 것은 아니다. "예삐가 떠나고 7일마다 엄마가 아침 기도를 해주셨어요" 가족들도 희생이 필요한 먹거리는 자제하고 이왕이면 좋은 일이나 좋은 말만 하려 노력했다. 그리고 기도를 올릴 때마다 조금씩 모아둔 돈을 49일이 되는 날 유기견 보호 센터에 기증했다. "합법적인 곳에서 화장하고 증명서를 받고, 동물등록 말소까지 해서 예삐를 보내고나니 반려동물 예삐의 존재를 법적으로 인정 받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예삐와 가족들의 모습. 예삐는 막내동생으로 살다, 집안의 최고령자로 세상을 떠났다.
예삐와 가족들의 모습. 예삐는 막내동생으로 살다, 집안의 최고령자로 세상을 떠났다.

◆ 쓰레기 봉투와 장례식장, 간극 줄일 필요

대한민국의 법은 동물 사체를 폐기물로 분류한다. 장례를 치뤄준 동물은 예외적으로 '폐기물'에서 제외될 뿐이다. 우리의 법이 동물 사체를 폐기물로 분류하는 이상 누구도 쓰레기 봉투에 반려동물을 담아 버리는 행위를 비난할 수 없다. '그래도 가족인데'라는 말은 법에서 허용한 타인의 선택에 붙이는 사족일 뿐이다.

그럼에도 소연 씨는 반려동물 장례 문화가 나날이 발전하길 기원한다. 최고급 오동나무관으로 그를 추모하는 일이 절대적으로 옳지 않을지라도, 살아있는 생명을 어떻게 다루는지 만큼이나 죽음을 다루는 태도도 한 사회가 중요하게 생각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반려동물을 올바르게 떠나보내는 것이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어요. 이 기회를 통해 우리 사회가 반려동물의 생,로, 병뿐만 아닌 사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 볼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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