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 god같은 광고를 만들어라

속도를 올릴수록 보행자는 보이지 않는다. 사진: (주)빅아이디어연구소
속도를 올릴수록 보행자는 보이지 않는다. 사진: (주)빅아이디어연구소

"god는 밥 같아요"

지오디의 성공 비결을 묻는 말에 박진영 PD가 대답했다. 잘 못 들으면 욕처럼 들린다. 밥 같다니. 90년대 후반 지오디는 H.O.T와 젝스키스를 잇는 대형 신인이었다. 사람들은 의아했다. 그들은 H.O.T, 젝키와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god는 H.O.T처럼 멋지지 않았다. 젝키처럼 화려하지 않았다. 그런데 인기는 왜 그리 폭발적이었을까. 생각해보니 그들은 정말 밥같았다.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음식 같았다. 더 나아가 그것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음식이 되어버렸다. 박진영은 god를 만든 PD답게 적절한 비유를 한 것이다.

평범한 것의 힘은 이토록 강력하다. 나는 늘 이 평범함의 힘을 광고에 적용시키려 한다. 사람들에게 광고를 믿게 만드는 것이 나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일상생활에서 광고 메시지를 가져오는 편이다. 대구시 교통정책과에서 연락이 왔다. 안전속도 5030 캠페인에 대한 얘기였다.

"넓은 시내 도로는 50km, 좁은 동네 도로는 30km로 속도를 줄이자는 정책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시민들에게 인식시킬지 고민입니다"

모든 것이 빨라지는 세상에 10km를 줄이자니 고민이 될 만도 했다. 하지만 문제를 찬찬히 들여다보니 상황은 달라졌다. 우리나라의 인구 10만 명당 보행 중 사망자수가 3.5명으로 OECD 회원국 중 최하위 수준이다. 그 중 92%가 도시부에서 발생한다. 즉, 10km만 줄여도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63.6% 감소되는 것이다. 어떻게 알릴지 고민이지만 시민들 역시 이 사실을 알면 적극 동참하리라 생각했다.

죽은 사람을 인터뷰 하고 싶었다.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 말이다. 10km만 서행했더라도 살 수 있었다고. 그런 가족을 둔 사람을 만나보고 싶었다. 교통사고를 당한 이들이 얼마나 큰 그늘을 가슴에 품고 사는지 알리고 싶었다. 하지만 이 광고 매체는 이미 빌딩 위 전광판 광고로 정해져 있었다. 한마디로 1~2초 사이에 호기심을 자극시키지 못하면 외면 받는 곳이 타겟이었다.

평범하면서도 자극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했다. 그때 불현 듯 안경점에 갔던 기억이 머리를 스쳤다. 안경점에 가면 시력을 맞추기 위해 특수 안경을 준다. 도수가 다양한 안경알을 넣어가며 시력을 체크하는 용도이다. 그때 보여주는 것이 바로 도로이다. 본인의 시력과 맞는 알을 넣어줄수록 도로가 선명하게 보인다. 게다가 도로의 제한 속도 판도 동그란 모양으로 안경알과 닮았다. 아이디어는 바로 여기 숨어 있던 것이었다. 누군가 오른쪽 눈에 70km의 안경알을 넣어준다. 그럼 왼쪽 안경알에 사람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의 오른쪽 눈에 60km의 안경알을 넣어준다. 그럼 왼쪽 안경알에 사람이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속도를 내릴수록 한 사람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번에는 오른쪽 눈에 50km의 안경알을 넣어준다. 그럼 왼쪽 안경알에 책가방을 맨 아이가 나타난다. 속도를 줄이니 한 아이의 생명이 너무 잘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이 아이디어를 정박시킬 메시지가 필요했다.

'10km만 줄여도 한 생명이 보입니다'나는 특별한 얘기를 하고 싶어서 특별하지 않은 상황을 가져왔다. 안경을 낀 사람은 알 것이다. 안경점에 가면 특수 안경으로 시력을 맞춘다는 것을. 이것은 지극히 일상적인 경험이다. 초현실적인 경험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서 한 경험이다. 운전 역시 현실이다. 우리는 현실에서 운전대를 잡는다. 그러니 지극히 현실 속의 한 경험이 필요했다. 생명이 보인다는 것을 표현하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보인다'는 워딩에 집착했다.

내가 운전대를 잡아봤다. 내 눈앞에 생명들이 가득했다. 장바구니를 들고 가는 아주머니, 폐지를 담은 리어카를 힘들게 끌고 가는 할머니,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초등학생 등등이 보였다. 속도를 올려 보았다. 그들이 사라졌다. 오로지 앞차의 트렁크만 보였다. 생명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겁이 났다. 페달에서 오른발을 서서히 땠다. 그러니 아까 전에 보인 사람들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속도를 줄이니 생명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 아이디어를 안경점에서 시력 맞추는 것에 나는 접목해야 했다. 특별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일상의 경험을 가져 온 것이다.

광고인은 종종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 생명을 다루는 광고를 할 때 광고인은 의사가 되어야 한다. 가끔은 변호사가 되고 가끔은 어부, 경찰관, 쉐프가 되기도 한다. 이 광고로 63.6%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면 그것보다 보람 있는 일이 있을까?

당신은 오늘도 고민할 것이다. 우리 브랜드를 어떻게 알릴까? 우리 메시지를 어떻게 팔 수 있을까? 시장에서 우리 얘기가 통할까? 거창한 얘기를 하지 말자. 당신의 소비자는 지극히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그런 타겟에게 초현실적인 얘기는 오히려 인식되지 않는다. 우리가 살면서 경험했던 것들, 우리 삶속에 일어나는 이야기를 가져와라. 그리고 당신의 브랜드와 접목시켜라.

㈜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
㈜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 '광고인의 생각 훔치기' 저자

㈜빅아이디어연구소 김종섭 소장

'광고인의 생각 훔치기' 저자. 광고를 보는 건 3초이지만 광고인은 3초를 위해 3개월을 준비한다. 광고판 뒤에 숨은 이야기들을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김종섭의 광고 이야기'를 연재한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