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한국형 슈퍼히어로 ‘경이로운 소문’

‘경이로운 소문’이 대박드라마가 된 이유

OCN 드라마
OCN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의 한 장면. 자료: OCN

OCN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은 최근 9% 시청률을 넘길 정도로 대박드라마가 됐다. 어찌 보면 악귀에 빙의된 악당들을 때려잡는 평이한 슈퍼히어로물과 학원물의 퓨전처럼 보이는 '경이로운 소문'. 이처럼 경이로운 대박의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OCN 드라마의 기록을 갈아치운 '경이로운 소문'

첫 회 시청률 2.7%(닐슨코리아)로 시작했을 때부터 어딘가 심상찮았다. OCN 토일드라마 '경이로운 소문'은 이후 매주 시청률이 껑충 뛰어오르더니 8회에는 9.3%라는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했다. OCN 자체 제작 드라마 사상 최고 시청률을 매회 갈아엎으며 일찌감치 대박드라마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사실 애초 '경이로운 소문'의 캐스팅은 이 정도까지의 대박을 예상하기는 어려웠다. 주인공 '소문' 역할로 캐스팅된 조병규는, 물론 JTBC 'SKY캐슬'로 괜찮은 연기력을 보인 바 있지만, 아역의 이미지가 강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타이틀 롤로서 조병규의 존재감이 그리 크다고 말하긴 어렵다. 조병규와 함께 '카운터(악귀를 센다는 의미로 악귀 들린 악당들을 물리치는 존재들을 일컫는다)' 역할을 맡은 유준상, 염혜란, 김세정, 안석환 같은 배우들도 마찬가지다.

유준상, 염혜란, 안석환이야 든든하게 작품을 만들어주는 중견배우들이지만 어디까지나 조병규를 지지해주는 역할이고, 김세정은 이제 막 배우의 길에 들어선 신인이다. 그러니 '경이로운 소문'은 애초부터 스타 캐스팅의 힘을 내세운 드라마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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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N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의 한 장면. 자료: OCN

소재도 대박을 내기 쉽지 않은 '악귀 타파 히어로물'이다. 어딘지 비현실적인 느낌을 주는 이 설명은 원작인 웹툰과는 잘 어울릴지 몰라도, 어느 정도의 리얼리티를 요구하는 드라마와 어울릴지는 고개가 갸웃해지는 이야기다.

그런데 '경이로운 소문'은 예고편이 슬슬 나오기 시작하면서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먼저 슈퍼히어로물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폼 나는 복장과는 사뭇 다른, 다소 촌스러운 빨간 트레이닝복을 입고 평소엔 국수집에서 일을 하는 카운터들의 모습이 그랬다. 이들이 악귀 들린 악당이 나타났다는 걸 감지하고는 출동하는 장면은 어딘가 유쾌하기 그지없었고 그 내용이 무엇이든 보는 동안에는 기분 좋은 액션들이 이어질 거라는 기대감을 만들었다.

연일 터지는 현실의 답답한 이야기들과 코로나19까지 겹쳐 즐거울 일 없는 시청자들이 원하는 건 그리 대단한 게 아니었다. 판타지 액션이라고 해도 잠시 동안 유쾌한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작품. 너무 진지하거나 대단한 메시지가 아니라고 해도 누구나 바라는 현실과는 다른 이야기. 즉 돈과 권력을 가진 이들이 제 맘대로 휘두르는 세상 속에서 핍박받고 힘겨운 약자들이 당한 만큼 돌려주고 정의가 지켜지는 그런 이야기면 충분했다. '경이로운 소문'은 그렇게 다가와 매회 시청자들의 갈증을 풀어주는 것으로 경이로운 대박 시청률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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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N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의 한 장면. 자료: OCN

◆'경이로운 소문'에 드리워진 한국형 퓨전의 향기

그렇다고 '경이로운 소문'이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낸 행운작이라고 말하는 건 아니다. 이 작품에는 지금껏 우리네 콘텐츠들이 시도하며 진화해온 '한국형 퓨전'의 향기들이 묻어 있다. 즉 유령 잡는 서구의 영화 '고스트 버스터즈' 같은 작품과 설정은 유사하지만, '경이로운 소문'은 그것보다는 '퇴마록'의 음산하면서도 유쾌한 우리 식 해석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드라마는 일진들에 집단 괴롭힘을 당하는 약자들이 등장하는 학원물로 시작해 조금씩 사회 전반에서 벌어지는 범죄의 세계로 나아간다. 어려서 부모님이 눈앞에서 살해되고, 한쪽 다리를 저는 장애를 가진 채 조부모 밑에서 바르게 자란 소문(조병규)은 그 주인공이 선 위치를 잘 보여준다.

소문이 선 사회적 약자의 위치는 그가 바로 서민들을 위한 슈퍼히어로라는 걸 분명히 하고, 가장 먼저 학교에서부터 벌어지는 부조리에 맞서는 모습으로 시청자들에게 통쾌함을 안긴다. 매일 같이 아이들을 괴롭히지만 부모가 시장이나 국회의원이라는 이유로 교사도 경찰도 건드리지 못하는 일진들을 통쾌하게 때려눕히는 것. 물론 그가 이렇게 할 수 있게 된 건 어느 날 저승파트너 위겐(문숙)이 빙의되면서다. 그렇게 카운터가 된 소문은 다리도 고치고 엄청난 능력을 발휘하는 슈퍼히어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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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N 드라마 '손 the guest'의 한 장면. 자료: OCN

여기서 흥미로운 건 카운터들이 대적하는 악귀 들린 악당들과 OCN표 범죄 액션물과의 퓨전이다. 이미 OCN 드라마 '손 the guest'에서 시도됐던 것이지만, 범죄자의 몸에 악령이 빙의된다는 설정을 '경이로운 소문'도 같은 방식으로 활용한다.

따라서 '경이로운 소문'에 등장하는 상습적인 가정폭력범이나 묻지마 살인자들은 악령이 빙의된 존재들로 그려짐으로써 카운터들의 활약이 그저 비현실적인 악령과의 싸움에 머물지 않게 해준다. 그것은 실제 우리네 신문 사회면에 등장하곤 하는 피해자들을 구해내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범죄자 빙의' 설정을 가져오고 있지만 '경이로운 소문'은 '손 the guest'와 작품의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손 the guest'가 공포물에 가까울 정도로 음산하다면, '경이로운 소문'은 살벌한 장면들이 등장하면서도 슈퍼히어로물 특유의 경쾌함을 잃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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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경이로운 소문'의 원작인 장이 작가의 '경이로운 소문'의 한 장면. 자료: 다음 웹툰

◆사회 정의, 범죄 액션, 악령 퇴치라는 세 가지 요소

'경이로운 소문'은 높은 건물을 뛰어오르고, 엄청난 괴력을 발휘하며, 때론 다친 자를 치유하고, 터치만으로 그 사람이 겪은 과거를 읽어내는 남다른 능력을 가진 카운터들이 등장한다. 게다가 이들 카운터들과 각각 연결되어 있는 저승파트너들이 있고, 그들이 사는 저 세상 판타지 풍경도 그려진다. 그러니 결코 현실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드라마는 OCN표 장르물에서 무수히 많이 등장했던 현실적인 악당들을 통해 이러한 비현실성이 그저 허황된 이야기로 흐르는 걸 잡아준다. 이들 악당들은 중진시라는 가상의 도시에서 시장을 거쳐 대권을 노리는 정치인, 그 정치인에게 막대한 비자금을 대주는 건설사 대표, 그리고 그 대표가 이끄는 조폭들로 이뤄져 있다.

악귀가 아무에게나 마구 빙의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런 범죄를 저질렀거나 혹은 저지를 욕망을 가진 자들에게 빙의된다는 설정은 그래서 이들 현실적 악당들과 연결되어 세 가지 요소들을 하나로 묶어낸다. 그것은 사회 정의의 구현과 범죄 느와르 액션 그리고 악령 퇴치라는 세 가지 요소다.

이렇게 세 가지 요소를 하나로 묶어내자 시너지도 생겨난다. 사실 '경이로운 소문'의 폭력 수위는 상당히 높다. 하지만 그것이 악귀가 빙의된 자라는 비현실적 설정이 들어감으로써 그 수위는 중화된다. 실제 상황이 아니라 여기게 만든다는 것이다.

또한 앞서 말한 것처럼 악귀나 슈퍼히어로 같은 비현실적 설정은 거꾸로 신문 사회면에 나올 법한 현실적 악당들을 연결하면서 몰입감을 준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고구마 현실을 드러내는 악당들을 통쾌하게 때려눕히는 카운터들을 통해 유쾌하고 안전한(?) 사이다 카타르시스를 경험한다.

최근 들어 시청자들은 다소 복잡한 이야기보다는 단순해도 확실한 카타르시스를 주는 이른바 '사이다 드라마'에 열광하고 있다. 물론 그런 감상법이 과연 괜찮은 것인가 하는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이것이 말해주는 건 그만큼 힘겨운 현실과 그 현실이 채워주지 못하는 갈증과 결핍이 크다는 반증이다.

'경이로운 소문'이 툭 치고 들어온 이 놀라운 성과의 이면에는 그래서 답답하고 씁쓸한 현실이 진하게 느껴진다. 액션이 액션에 머물지 않고, 어떤 주먹 하나에도 정서가 느껴지게 만드는 그 현실. 그것이 이 드라마가 대박을 낸 비결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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