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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FOCUS]줄지 않는 여성 폭력 피해, 당신의 목소리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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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여성 폭력 추방의 날'인 지난달 25일 프랑스 파리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유명 가수 자하라는 20대 시절, 끔찍한 폭력 피해를 겪은 생존자이다. 그녀는 당시 한 남성과 차를 타고 가다 상대로부터 갑작스런 스프레이 공격을 받고 차에서 뛰어내려 큰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그 사건으로 기소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음악이 좋아 버스킹을 하다가 2011년 데뷔 앨범이 큰 인기를 얻으면서 스타가 되었지만, 폭력 피해의 트라우마는 늘 그녀를 따라 다녔다.

본명이 부렐와 음쿠투카나인 자하라는 지금은 여성에 대한 폭력에 저항하는 전사이기도 하다. 자신의 유명세를 이용해 남아공 내 여성에 대한 폭력 문제를 공론화하는 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2019년 남아프리카에서는 2천700명이 넘는 여성들이 살해당했다. 자하라는 '자하라 부대'라는 단체를 만들어 남아공의 젊은 여성들에게 '침묵하지 말라'고 하면서 그들이 강하게 성장하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다. 그는 최근 영국의 BBC가 선정한 '올해의 여성 100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여성에 대한 학대와 폭력은 아동·노인 학대와 폭력과 함께 사회적 약자에게 가해지는 비열한 범죄행위이다. 가정 내에서 남편이 아내를 폭행하고 교제 중인 남성이 상대 여성을 폭행하고 교제를 원치 않는 여성을 집요하게 쫓아다니거나 괴롭히는 스토킹 범죄 등이 모두 해당된다. 주먹이나 흉기를 휘두르는 물리적 폭력 뿐만 아니라 언어 폭력도 포함된다. 때로 여성이 살해당하는 '페미사이드'(Femicide)의 비극이 발생하기도 한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코로나19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면서 전세계적으로 더 증가하는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유엔이 정한 '세계 여성 폭력 추방의 날'인 지난달 25일 이탈리아에서 올 1월부터 10월 말까지 91명의 여성이 살해됐다는 슬픈 보고서가 발표됐다. 대략 사흘마다 여성 한 명이 살해당했으며 가족 구성원에 의해 살해당한 여성 수가 81명, 이 중 56명은 남자친구에게 희생된 경우였다. 세계적으로 여성 폭력을 근절하자는 캠페인이 진행된 이날도 이탈리아의 여성 두 명이 남편 또는 남자친구의 흉기에 찔려 사망하는 참변이 빚어졌다.

이탈리아의 비극적인 보고서가 알려진 날에 세계 곳곳에서 집회와 묵념이 잇따랐다. 집회 참가자들은 코로나19 사태로 봉쇄 조처가 내려지면서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여성이 급증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엔은 코로나19 팬더믹으로 여성에 대한 폭력도 대유행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품질레 음람보응쿠카 유엔여성기구 대표는 지난해 여성 2억4천300만명이 연인으로부터 성적·물리적 폭력을 경험했으며 올해도 가정폭력·사이버불링·아동결혼·성희롱·성폭력이 증가했다는 보고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국가별로 스페인에서는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여성들의 폭력 신고 건수가 6만3천여 건으로 지난해보다 2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포르투갈에서는 올해 현재까지 30명의 여성이 희생됐는데, 이중 절반은 가정폭력 피해자였으며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통계적으로 독일 여성은 45분마다 현재 또는 이전 파트너로부터 공격을 받는다고 개탄했다.

우리나라의 현실도 암울하다. 여성 운동가인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 집계를 통해 밝힌 데 따르면 2019년 교제폭력 신고 건수는 1만 9천940건으로 2017년 1만 4천136건보다 41.1%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검찰청은 2018년 총 살인범죄 건수 849건 중 7.8%가 연인에 의해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인터넷 매체 오마이뉴스는 2016년부터 2018년까지 발생한 '교제살인' 판결문을 조사해 3년 동안 적어도 108명의 여성이 교제살인으로 살해당했다고 보도했다.

또 한국여성의전화가 2019년 언론에 보도된 살인사건을 분석한 결과, 한 해 동안 남편이나 애인 등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해 살해된 여성은 최소 88명, 살인 미수 피해 여성은 최소 108명으로 나타났다. 최선혜 여성인권상담소 소장은 한 토론회에서 '친밀한 관계'에 있는 여성을 상대로 폭력을 가하거나 살해한 가해자들이 '헤어지자고 해서', '좋아해서', '밥을 달라는 자신의 말에 대답하지 않아서', '짜증을 내서...' 등의 이유를 범행 동기로 내세웠다고 발표했다. 최 소장은 "이런 사소한 이유로 여성들이 살해당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뿐 아니라, 여성들이 친밀한 관계 내에서 어떤 방식으로 '통제'되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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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으로부터 여성을 보호하는 법적 보호 장치는 꾸준히 강화되고 있다. '가정폭력특별법'과 '성폭력특별법'에 이어 지난해 크리스마스때부터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이 시행되고 있다. 기존 법에서 한계를 드러냈던 교제 폭력, 스토킹, 디지털 성폭력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2차 피해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최근 조주빈이 텔레그램 'n번방'에서 미성년자 포함 여성을 상대로 성 착취물을 제작·유포한 범죄가 인정돼 1심에서 징역 40년형의 중형을 받은 것이 그 긍정적 결과물이다.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는 24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 모두발언에서 "폭력으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겠다"며 "디지털 성범죄, 온라인 그루밍 범죄 등 여성 폭력 범죄를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있도록 법률 개정 및 대책의 후속 조치를 철저히 이행하겠다"고 말했다. 정 후보자는 이날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의 권력형 성범죄 사건을 명확하게 규정하고 약자들을 폭력으로부터 보호하겠다는 강단있는 자세를 보여 일말의 기대감을 갖게 했다. 여성들은 이러한 법적 강화가 약자에 대한 폭력을 없애는 토대가 되길 바라고 있다.

그러나 여성들은 여전히 폭력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살아간다. 으슥한 공간에서 낯선 남성을 만나면 본능적으로 움츠러들게 되고 그 남성이 덩치마저 크다면 두려움은 더 커진다. 오히려 남편, 남자친구 등 가까운 남성이 폭력적 성향을 드러낼 경우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입게 된다. 보호해줄 줄 알았던 남성으로부터 폭력을 당하는 것은 깊은 배신감과 트라우마를 남기게 된다. 직장 등 사회 생활 과정에서는 권력형 성범죄가 언제든 여성들을 위협한다.

폭력의 위험이 생활 내에 도사리고 있다면 여성들이 좀 더 용기를 내 강해진 법체계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가정폭력, 교제폭력 등에 대해 관계의 특수성 때문에 신고를 망설이는 경우가 많다. 2019년 가정폭력실태조사에 따르면, 배우자로부터 신체적, 성적, 경제적, 정서적 폭력을 경험했다고 답한 응답자 중 경찰에 도움을 요청한 경우는 단 2.3%에 불과했다. 매우 답답한 현실이다. 폭력 피해 여성이 경찰에 빨리 알려야 하며 주위에서도 도움에 나서 해당 여성이 질곡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한 개인의 변화가 쌓임으로써 가정폭력 등이 개인적 일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회적 인식을 바꾸고 사회적인 보호벽도 더 빨리 높일 수 있다.

세계적인 배우 니콜 키드먼이 지난 22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에 기고한 글을 통해 코로나19 사태에서 여성대상 폭력이 증가하는 데 주의를 촉구하고 나섰다. 그녀는 인기 드라마 '빅 리틀 라이즈'에 가정폭력 피해자 역할로 연기하면서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된 채 연약하고 매우 치욕스럽게 느껴졌다는 경험을 털어놓았다. 실제 상황에서의 열패감은 더욱 클 것이라고 언급하면서 그녀는 자신의 의견들을 제시했다.

그녀는 특히 "당신의 목소리가 중요하다"며 "친구가 폭력을 당하는 것 같아 걱정된다면 도움의 손길을 뻗고, SNS 등에 경각심을 일깨우는 글을 올리고, 가능하다면 피해자를 돕는 단체를 지원하라"고 말했다. 여성들이 폭력에 대항하는 행동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임을 일깨운 말이라고 본다. 여성들의 용기와 남성들의 연대가 함께해야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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