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담장 밖에 나온 도서관

정인열 논설위원
정인열 논설위원

300년 전, 1721년 낙육재(樂育齋)라는 건물이 대구읍성 남문 밖 오늘날 대구 중구 남산동 옛 동산양말공업사 터 일대에 들어섰다. 경상도 최초 관립(官立) 성격의 도서관을 겸한 인재 양성소였다. 경상감사 조태억이 당시 소외됐던 영남의 문풍(文風)을 떨치고 인재를 키우기 위해 세웠다. 경상도 71고을 인재를 뽑아 기숙사에서 먹고 자며 마음껏 책을 읽고 공부하도록 했다.

뒷날 일제 간섭으로 1906년 문을 닫을 때까지 185년을 이은 낙육재 재산 일부는 대한제국 시절 옛 협성학교 설립에 쓰였고, 협성학교는 오늘날 경북고의 전신인 관립 대구고등보통학교 재정에 보탬이 됐다. 이런 역사의 낙육재는 암흑기를 거쳐 지난 1990년 대구향교 안에 재건돼 옛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엄선된 교육생이 몰린 낙육재에는 영조와 순조가 선물한 귀한 서적에다 사들인 도서를 두루 갖춘 곳이었으니 배움에 목말랐던 경상도 사람에겐 더없이 좋은 지식 보급의 샘 같았다. 450여 명의 교육생이 남긴 글과 문집도 여럿이었으니 낙육재는 그야말로 영남 고을마다 지식을 전파하는 전령 역할도 했다.

한때 장서각 비치 도서는 1천397책에 이르렀고, 구한말에는 1만 권쯤 됐다. 낙육재의 공부 분위기와 서책 수요로 대구에서는 인쇄물도 잇따라 발간됐다. 뒷날 대구의 앞선 인쇄 문화는 우연이 아니었다. 과거 풍미한 관립 도서관 역할의 낙육재 소장 서책 일부는 지금도 대구시립도서관에 남아 옛날을 엿보게 한다.

이런 학문과 교육의 도시 대구에는 도서관이 많다. 뭇 학교 시설에다 행정기관과 민간단체 운영 도서관도 숱하다. 특히 대학 도서관은 빼놓을 수 없다. 무엇보다 장서량 350만 권을 자랑하는 경북대 도서관이 그렇다. 국내 모든 대학 가운데 서울대 다음이라니 놀랍다. 국립대학 도서관인 만큼 300년 전 영남의 첫 관립 도서관 낙육재에 견줄 만하다.

마침 본지는 올 1월 9일부터 매주 한 차례 대학 도서관을 재발견하는 기획물을 선보이고 있다. 대학이 가진 장서뿐만 아니라 대학 사회에 갇힌 뭇 지식 자산이 대학 담장을 넘어 세상 속으로 스며들어 지역사회 기여와 함께 대구경북 발전을 이끌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350만 권, 담장 안에 그냥 두기 아깝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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