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농촌의 사관이고 싶었다는 김종광 작가의 소설집이 '성공한 사람'이라는 제목을 달고 나왔다.
열한 편의 단편소설이 실렸다. 책을 많이 읽는 중학생이 책을 많이 읽으면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게 맞는지 전수조사에 나선다는 내용의 원제 '독서실태조사'를 개제한 '성공한 사람, 훌륭한 사람'이 표제작이다. 하지만 입소문을 제법 탄 작품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당산뜸 이웃사촌'은 신동엽 50주기를 기념해 2019년 나온 신작소설집에서, 장면 하나하나를 바로 옆에서 지켜보며 채록한 듯한 '보일러' 역시 2019년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에서 존재감을 알린 작품이다.
'보일러'는 르포문학이라 불려도 무리가 없을 수작이다. 순우리말을 많이 쓴 작품으로도 분류된다. 근자에 나온 김연수 작가의 '일곱 해의 마지막'에 버금간다. '에멜무지로, 종애 곯리다, 사분대다, 가뭇없다, 생게망게하다, 으르딱딱대다, 무르춤하다, 겉볼안, 아퀴…'
'일곱 해의 마지막'은 작중 배경이 이북인데다 1950년대라 검색하기 바빴다지만, '보일러'를 보노라면 보일러 A/S 기사가 보일러 부품을 하나씩 살피듯 해야 한다. 포털사이트 검색창이 새로운 단어들로 채워지며 검색의 수고가 늘수록 읽는 풍미는 깊어진다. 아귀가 착착 맞아 들어가는 작가의 필력 덕에 중도포기도 쉽잖다.

줄곧 충청도 사투리로 짜인 소설 속 인물들의 대화는 외려 이해하기 쉽다. 가끔 충청도 개그코드도 툭툭 튀어나온다.
"회장님댁이 엎어지면 코 닿을 데지만 구십 늙은이가 되니께 지우 부엌 옆 화장실 갈 때 걷는 것도 죽기 살기로 걸어야 되는디 은행(은행나무 열매를 지칭, 편집자 註)을 워칙히 날라유. 차라리 무덤 들어가라고 하셔유.('당산뜸 이웃사촌' 中)"나 "한 게 왜 없어? 엄청 놀러 다녔잖아. 글케 지성으로 관광에 참석하는 이장들은 첨 봤어. 대동여지도를 만들라고 그랬나.(여성 이장 탄생기 中)" 같은 기습이다. 사전을 '솔찬히' 뒤적여야 하는, 전라도 사투리 중심의 조정래 작가 대하소설급 고난도는 아니다.
단편소설 모음집이지만 열한 편의 소설은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모두 안녕시 육경면 역경리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앞서 본 작품의 주연이나 조연이 나머지 작품에서 역할이 바뀌고 카메오로 등장한다. 정세랑 작가의 '피프티피플'과 언뜻 비슷하다.

소설 전체를 일관되게 끌고 가는 힘은 작가의 적극적 참견에서 나온다. 천명관 작가의 '고래'에서 본 기시감이다. 판소리 속 아니리에 비유하면 알맞다. 다만 '고래' 속 작가의 개입에 비하면 짧은 길이다. 초단타 개입이다.
이를테면 "역경리 최고 부자로 통하는 큰면장의 막내딸 팔방미가 상고(정보과학고로 바뀐 지가 어언 십수 년이건만 여전히 상고 소리를 들었다) 아니면 고등학교에 안 가고 검정고시 치르겠다고 나대는 것은…(성공한 사람, 훌륭한 사람 中)"에서처럼 괄호 속 부연설명을 넣는다든지, "더 복잡한 얘기 해봐야 직구, 커브, 슬라이더 모르는 이가 프로야구중계 듣는 거나 마찬가지일 터, 결론만 전하자면 한 달 후 이장 선거를 하기로 했다.(여성 이장 탄생기 中)"와 같은 중재자적 정리에 나서는 식이다. 흥미로운 서술 방식이기도 하지만 농촌의 사관 역에 충실하려 했던 작가의 의도로 읽힌다.
작가는 충청도 사투리가 진한 보령 출신으로 '텔레비전에 비친 힐링의, 치유의, 전원의, 체험의, 먹방의, 자연의 농촌과 다른 시골의 현재를 직시하는 시골소설'을 실록처럼 적어냈다. 그러므로 대한민국 235개 시군에 없는 게 지극히 당연한 안녕시는 충남 보령의 익명이라 풀이하면 되겠다. 350쪽, 1만4천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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