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에 있는 경북외고에 다니던 채예원 양은 지난 2019년 3학년 진급을 앞두고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공부도 두드러졌을뿐더러 학교생활에 매사 적극적인 예원이에게 닥친 불행은 학교 구성원 모두에게 아픔으로 전해졌다. 전교 학생회 부회장을 하며 야간 자습 이후 기숙사로 돌아가는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야광 테이프를 부착하고 센스등 설치를 건의했고, 교내 축제를 총괄해서 운영했다. 생활관 아침 체조 도우미도 자원해서 맡았다.
예원이는 장래 희망인 외교관의 꿈도 차곡차곡 쌓았다. 교내 사이버외교활동반에서 독도의 날, 직지심체요절을 해외에 소개하고 역사 바로잡기 책자도 제작했다. 누구처럼 영향력 있는 부모와 주변의 도움으로 만들어진 거창한 스펙이 아니라, 오로지 스스로의 힘으로 한 땀 한 땀 엮어낸 노력의 결과물이었다.
무서운 혈액암으로 투병하면서도 예원이는 공부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았다. 병상에서 마약성 진통제를 몸에 달고도 책을 붙잡고 있어 저지당하기 일쑤였다. 항암 치료 통증으로 교재 글씨가 잘 보이지 않을 때는 '인강' 오디오에 집중했다. 결국 예원이는 백혈병을 극복하고 이듬해 복학했다. 신체 면역이 크게 떨어진 데다 코로나 상황까지 겹쳤지만 하루 17시간씩 공부했다고 한다. 의지와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고, 올해 서울대 정치외교학과에 합격(매일신문 1월 25일 자 보도)했다.
어머니 혼자서 조금 버는 수입이 전부인지라 예원이에게 학원은 사치였고, 그 흔한 어학연수는 꿈꿀 수조차 없었다. 어머니는 딸이 아팠을 때 "너무나 미안했다"고 눈물을 훔쳤다. 어머니가 해줄 수 있는 거라곤 기도밖에 없었단다. 그런 예원이가 의지할 곳은 학교였다. 선생님을 믿었고 친구들이 있어 버텨냈다고 했다. 이제 '구미의 딸' 예원이가 서울로 공부하러 떠난다. 장차 기후변화와 환경보호 국제 무대에서 국가를 위해 일하는 것이 목표다. 가난은 그저 불편한 것이었고, 역경은 넘을 수 있는 장애물이라고 믿는 스무 살 예원이가 대한민국의 딸로 성장하기를 기원한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이 공기업 산하 병원에 인턴 합격한 것을 두고 논란이 뜨겁다. 한 친문(親文) 검사는 샬롯 브론테가 쓴 소설의 주인공 '제인 에어'가 오버랩된다고 했다. 그는 "나이가 어린 ○○ 선생님이 1년 이상의 린치에 시달리면서도 당당히 시험에 합격하고, 면접도 통과한 것만 보아도 제인 에어 못지않은 자신감과 집중력, 선한 마음을 가지고 계신 것"이라고 추켜세웠다. 또 여당의 중진 의원은 "이를 악물고 의사시험 합격하고 인턴까지 합격한 멘탈에 경의를 표한다"며 "조만간 병원에 가서 응원하고 오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작금의 사법부를 봤을 때 최종심에서 입학 부정 무죄를 확신하지 않고선 이런 말을 하겠느냐는 비판이 터져 나온다.
이처럼 '권력자 딸 보호'가 만만찮다. 의학전문대학원 입학과 관련한 서류가 위조됐거나 허위라고 1심에서 유죄로 판결 난 상황에서도 부산대는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대법원 확정까지 기다려보자는 입장이다. 교육부 장관 역시 특별감사에 대해 "종합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하다가 "검찰 수사 때문에 감사를 할 수 없다"며 팔짱을 끼고 있다. 앞서 정유라와 숙명여고 쌍둥이의 경우 부모 수사 단계에서 대학 입학이 취소됐고, 기소와 동시에 퇴학 처분을 받은 것과는 딴판이다.
언론의 관심을 사회적 조리돌림으로 치부하고 정의롭고 공정하게 국시 관문을 통과했다고 칭찬하는 것을 자중해야 한다. 이미 많은 젊은이에게 상처를 줬고, 어쩌면 개천 용의 자리를 대신 차지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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