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위안부' 저자 박유하 세종대 국제학부 교수가 "일본군 위안부는 매춘부"라 주장한 존 마크 램지어 미국 하버드대 교수에 대해 "역사적 디테일이 틀리지 않았다"고 발언했다.
박 교수는 지난 2일 페이스북을 통해 "하버드 교수의 글을 아직 읽어 보지 못해서 정확한 건 말할 수 없지만, 무조건 망언이니 심지어 전범 기업교수니 할 이야기는 아닐 것으로 보인다"며 "보도만 보자면 이 교수의 주장은 역사적 디테일에선 크게 틀리지 않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 '위안부=매춘부'라는 주장에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라며 " 매춘부와 성노예 담론 모두, 양쪽 다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중국 무한에 세워져 있다는 위안부 공양비를 들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그는 "위안부의 공양비는 말하자면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세워진 비. 일본군이 위안부를 왜 위로했을까"라며 "이 공양비가 의미하는 건 위안부와 군의 관계가 일방적으로 압박받는 존재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라 말했다.
또 "영화 <오키나와의 할머니>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며 "조선인군속이 고작 남의 물건을 훔쳤다는 이유로 그 자리에서 즉각 '처단'까지 했던 일본군인이, 다른 한편으로는 폭격으로 죽은 조선인 위안부를 수습했다는 이야기도. 조선인의 생명에 대한 이 군인의 양가적 태도는, 오로지 규율을 위반했는지 여부에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위안부를 '준군속'이라 표현하며 "위로를 받았다고 해서 피해자가 아니라는 이야기가 되는 건 아니다. 징용이나 징병처럼 동원당한 건 사실이지만 남성피해자에 비해 여성피해자들은 '법'이라는 강제틀 바깥에서 동원되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또 미쓰비시 중공업을 전범 기업으로 보기 어렵다고도 주장했다. 박 교수는 "미쓰비시를 전범 기업이라고 하는 것도 문제지만 기업의 연구비가 역사·정치적 목적으로 주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램지어 교수를 감쌌다.
해당 글에 댓글을 통해 박 교수는 자신의 저서와 관련 고발당했을 때 '알고보니 와세다'같은 보도가 있었다며 "이런 논리라면 모든 재일교포는 친일파여야 한다"며 "나를 공격 중인 학자·운동가·언론이 여전히 '박유하=이영훈=일본우익'으로 취급하는 건, 결정적인 차이도 미세한 차이도 이들에겐 관심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자신의 책 '제국의 위안부'와 관련해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바 있다.
지난 2017년 1월 25일 박 교수의 사건을 심리한 1심 재판부는 '학문의 자유'는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이고, 박 교수가 주장하는 내용이 기존 위안부의 사회 평가에 심각하게 부정적인 내용을 줬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해 박 교수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후에도 한국 법원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호소한 원고 12명에 대한 일본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판결에 대해 "재판부의 위안부 인식에 문제가 많다"며 비판적 의견을 내는 등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한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다음은 박 교수가 페이스북에 남긴 글 전문이다.
위안부를 '매춘부'라고 주장했다는 하버드 교수의 글을 아직 읽어 보지 못해서 정확한 건 말할 수 없지만, 무조건 망언이니 심지어 전범기업교수니 할 이야기는 아닐 것으로 보인다(미츠비시를 전범기업이라고 하는 것도 문제지만 기업의 연구비가 역사정치적 목적으로 주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즉각 이런 단순반응을 하는 언론의 잘못은 크지 않다. 이렇게 반응하도록 만든 확신=상식을 만든 지원단체와 관계학자들이 문제다.
보도만 보자면 이 교수의 주장은 역사적 디테일에선 크게 틀리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위안부=매춘부"라는 주장에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사진은 중국 武漢무한이라는 곳에 있었다는 위안부의 공양비 사진이다. 말하자면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세워진 비.
일본군이 위안부를 왜 위로했을까. 물론 강제로 끌어와 강제노동을 시킨' 노예를 위로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이 공양비가 의미하는 건 위안부와 군의 관계가 일방적으로 압박받는 존재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언젠가 DVD를 빌려서 모임에서 상영했던 <오키나와의 할머니>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또 조선인군속이 고작 남의 물건을 훔쳤다는 이유로 그 자리에서 즉각 '처단'까지 했던 일본군인이, 다른 한편으로는 폭격으로 죽은 조선인 위안부를 수습했다는 이야기도. 조선인의 생명에 대한 이 군인의 양가적 태도는, 오로지 규율을 위반했는지 여부에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들에게 너무나 가벼웠던 조선인의 생명의 무게를 생각하면 아득해지는 일이다.)
이들이 위안부의 시신을 수습하고 위로했던 이유는, 위안부가 '준군속'같은 존재 였기 때문이다. 물론 장소와 시기에 따라 군의 관여도와 종속도는 달랐다.
물론 위로를 받았다고 해서 피해자가 아니라는 이야기가 되는 건 아니다. 징용이나 징병처럼 동원당한 건 사실이지만 전자—남성피해자에 비해 여성피해자들은 '법'이라는 강제(죽거나 부상 당했을 때 보호망으로 기능하기도 했던)틀 바깥에서 동원되었던 것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매춘부와 성노예 담론 모두, 양쪽 다 문제가 있다. 30년이나 양쪽 극단의 주장에 휘둘려 왔지만 이제는 그 대립을 지양할 때가 됐다. '성노예'설을 유포/확산/정착 시켜 온(물론 신체를 착취당했다는 의미에서의 '성노예'를 나는 책에서도 부정하지 않았다)학자들은 아마도 당혹스러울 것이고 또다시 토론이 아니라비난과 규탄에 나서겠지만. 상기해야 할 건 미국 학자까지 이 싸움에 등판하도록 만든 건 바로 그들 자신이라는 점이다.
이런 이야기를 <제국의 위안부>에 다 쓴 건 아니지만(고발 이후에 알게된 사실도 많다), 그럼에도 내가 책에 쓴건 이런 이야기였다.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매일문예광장] (詩)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