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 경험의 베테랑 경찰 출신인 탐정 권대원(61) 씨는 지난해 제왕절개 수술 직후 사망한 산모 사건을 의뢰받았다. 권 씨는 "몸무게가 30㎏가 안 되는 성인 산모의 경우 소아용 산소 호흡기를 달아야 하는데 당시 병원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며 "또 보통 5분 이내로 끝내야 하는 인공호흡도 이 산모의 경우 한 시간 동안이나 한 점이 문제였다"고 했다.
권 씨는 약 5개월간 3천여 장의 의무기록지를 살핀 끝에 의료인의 과실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를 토대로 완성한 탐정조사보고서를 바탕으로 의뢰인은 해당 병원에 대한 고소장을 수사기관에 접수할 수 있었다.
지난해 국회에서 신용정보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탐정업과 탐정 명칭 사용이 가능해지면서 탐정이 제2의 직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유사한 업무 특성 덕분에 전·현직 경찰들 사이에서 탐정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17일 대한탐정연합회에 따르면 현재 소속된 회원은 3천여 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10년 이상 경력의 경찰 출신이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다. 대구경북에도 200여 명의 회원이 있고, 이 중 절반가량이 경찰을 거쳤다.
한국 탐정은 어떤 일을 할까. 권 씨가 하고 있는 주 업무는 ▷가출 청소년 소재 파악 ▷의뢰인이 수사기관에 진정을 넣기 전 참고 자료 작성 등이다. 권 씨는 "불륜 등 사생활과 관련된 부분은 철저히 배제하면서 법 테두리 내에서 의뢰인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 해결하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국내에서는 사람들이 탐정 업무를 흥신소·심부름센터에서의 뒷조사 등 불법영역과 혼동하는 탓에 이 같은 문의가 많이 온다고 한다.
권 씨의 경우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한 적도 있다. 지난해 차량끼리 부딪힌 사고에서 의뢰인에게만 100% 구상권이 청구된 내용이었다. 급제동한 상대 차량의 정황에 비춰, 좌회전하던 의뢰인의 과실이 크다는 것이 조사기관의 판단이었다. 권 씨는 현장을 찾아 급제동 증거가 없다는 것을 밝혀내면서 상대 차량의 전방 주시 소홀 가능성을 제시했다.
현직 경찰들도 탐정에 대한 관심이 높다. 퇴직을 앞둔 대구의 한 경찰관은 "경찰에서 몸담은 업무 노하우를 탐정에 접목하면 직무 연관성을 높일 수 있고, 제2의 삶을 꿈꿀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구의 탐정인 박모(59) 씨는 "최근 퇴직을 앞둔 경찰 친구에게 동업을 하자고 제안했더니 긍정적으로 반응했다"고 했다.
경찰·탐정 간 유착 등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있다. 로스쿨 출신 변호사로 구성된 한국법조인협회는 성명을 통해 "사설 탐정은 향후 경찰 출신 탐정과 경찰의 유착을 통한 전관 비리를 조장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민간조사원', '흥신소' 등 이름으로 운영되던 사설 업체들이 대거 '탐정'이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도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탐정업계는 향후 흥신소 등 불법화나 유착관계를 막으려면 탐정의 업무범위·요건 등의 법적 제도화가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11월 탐정의 업무 범위와 자격 요건을 명확히 설정하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됐는데, 현재 소관위에 접수된 상태에 머물러 있다.
대한탐정연합회 관계자는 "불법과 근절할 수 있는 소양을 갖춘 사람이 탐정을 할 수 있게 이 같은 법안이 하루빨리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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