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5년 8월 25일, 전국의 청년들이 비밀리에 모여 대한광복회를 결성한 장소인 대구 달성토성. 삼국시대에 토성을 쌓은 이후 대구읍성이 들어서기 전까지 달구벌의 정치 중심지였던 이곳을 일제는 공원(1905년)으로 조성한 뒤 대구신사(大邱神社.1914)를 짓고 참배를 강요했다. 달성토성에 아침 햇살이 밝아오고 있다.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대한광복회 지휘부 회의 상상도. 중앙부터 왼쪽으로 박상진 총사령, 김좌진 만주 지부장, 우재룡 지휘장,김한종 충청도 지부장, 권영만 지휘장, 이병호 전라도 지부장, 채기중 경상도 지부장. 사진= 대구독립운동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
일제강점기 달성토성에 들어선 대구신사(大邱神社). 일제는 1905년 이곳을 공원으로 조성한 뒤 1906년에 요배전, 1914에는신사를 건립했다. 1937년에 총독부가 관리하는 국폐소사(国幣小社)로 승격돼 증축했다. 대구신사는 해방 후 1966년이 되서야 철거됐다.
1937년 총독부가 관리하는 국폐소사(国幣小社)로 승격후 새로 증축한 달성토성 내 대구신사. 신사건물은 해방 후 1966년이 되서야 철거됐다.
일제강점기 달성토성 중심부에 들어선 대구신사(大邱神社)(위). 대구신사는 1966년에 철거되고 동물원과 공원관리사무소 등의 건물이 들어섰다.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달성토성 내 테니스장 롤러로 사용된 신사 도리 기둥석. 일제강점기 신사 건물에 사용된 석재가 지금도 토성 곳곳에 남아있다.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달성토성 테니스장 입구에 방치된 신사 도리받침대. 받침대에는 일본인 우미노 다케오(海野武男) 이름이 새겨져 있다.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달성 토성에 자리한 왕산 허위선생 순국 기념비. 의병장으로 싸우다 일본 헌병대에 체포돼 서대문형무소 1호로 순국했다. 대한광복회 총사령 박상진의 스승이다.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달성공원에 자리한 석주 이상룡 구국 기념비. 1910년 경술국치 이듬해 가족을 이끌고 만주로 망명해 항일투쟁을 이끌었다.1925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냈으며 1932년 중국 길림성에서 순국했다.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대구 두류공원에 세운 애국지사 우재룡 선생상. 대한광복회 지휘장으로 군자금 모집과 국외 연락책임을 맡았다. 1915년 12월 경주에서 세금을 수송하는 우편마차를 습격해 군자금을 확보하는 등 맹활약을 펼쳤다. 김태형 선임기자 th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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