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괴물’, 진짜 괴물 같은 색다른 스릴러의 탄생

‘괴물’, 신하균이라는 연기괴물의 심리추적스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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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금토드라마 '괴물'의 한 장면. jtbc 화면 캡처

연달아 벌어지는 참혹한 살인과 그걸 막기 위해 범인을 추적하는 강력계 형사의 이야기. 어찌 보면 우리에게도 익숙해진 범죄스릴러의 이런 이야기 틀이 최근 들어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보다 색다른 이야기의 진화를 보여주고 있는 것. JTBC '괴물'은 그런 범죄스릴러다.

◆범인을 잡는 게 다가 아니야

도대체 범인은 누구일까. 아마도 범죄스릴러의 힘은 바로 이 궁금증에서 나오는 것일 게다. 살벌한 살인이 연달아 벌어지고, 그래서 피해자 가족들이 울부짖고, 범인을 추격하는 형사들은 좌절과 분노에 빠지고…

jTBC 금토드라마 '괴물'도 그 기본적인 범죄스릴러의 공식을 똑같이 그려나가는 것처럼 시작한다. 즉 20년 전 문주시 만양읍에서 벌어진 살인사건과 실종사건으로 인해 이동식(신하균)은 엄청난 충격에 빠져버린다.

그는 당시 다방 여종업원을 살해한 용의자로 잡혔다가 풀려났고, 집 정원에 마치 전시라도 한 듯 잘려진 열 손가락을 남긴 채 여동생이 실종되는 사건을 겪는다. 그 후 20년 동안이나 이동식은 실종된 여동생을 미친 듯이 찾으며 형사가 됐고, 강력계에 있다 사고를 친 후 만양파출소로 좌천되어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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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금토드라마 '괴물'의 한 장면. jtbc 화면 캡처

그리고 20년 만에 그때 여동생 실종사건과 똑같은 사건이 벌어진다. 만양슈퍼 강진묵(이규회)의 딸 강민정(강민아)이 실종되고, 그의 잘려진 열 손가락이 평상 위에 놓여져 있었던 것. 마침 외지에서 이 시골마을 파출소로 전출 온 한주원(여진구)은 이동식을 연쇄살인범으로 의심하기 시작한다.

'괴물'이 흥미로운 건 범죄스릴러에서 보통 명확히 나뉘어 있는 범인과 형사의 경계를 전혀 알 수 없게 초반 스토리가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시청자들은 한주원의 시선을 따라 이동식은 물론이고, 어딘지 어떤 비밀을 공유한 채 서로를 위한 거짓말을 하는 마을 사람들(파출소 사람들을 포함)을 의심하게 된다.

특히 자신을 의심하는 한주원에게 살벌한 미소를 지어보이는 이동식의 섬뜩한 모습과, 평상 위에 잘려진 손가락 열 개를 올려놓는 그의 모습은 진짜 그가 범인이 아닌가 생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예상한 대로 그는 범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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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금토드라마 '괴물'의 한 장면. jtbc 화면 캡처

드라마 중반 즈음에 이르러 드디어 범인이 드러나는데 놀랍게도 이동식은 일찌감치 그 범인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 또한 밝혀진다. 그가 평상 위에 손가락을 올려놓았던 것이나 범인이 누구인지 알면서도 바로 붙잡지 않았던 이유가 등장한다.

그건 신체 일부는 있지만 사체가 발견되지 않으면 살인이라고 단정할 수 없어 범죄를 증명할 수 없고, 그렇게 한 번 풀려나게 되면 나중에 범죄사실이 밝혀져도 처음 받은 무죄를 번복할 수 없다는 걸 그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사체를 찾기 위해 그는 범인을 알면서도 일종의 덫을 놓았던 것이었다.


◆범죄스릴러가 심리와 추적극을 더하게 되면서

범인을 잡는 것이 끝이 아니라 사체를 찾아내 범죄 사실을 증명하는 것까지가 이 범죄스릴러가 풀어내야 할 숙제로 제시되면서, '괴물'은 심리와 추적극이라는 두 요소를 덧붙이게 됐다. 심리는 누가 범인이고 왜 그런 짓을 했는가 하는 걸 찾아가는 과정뿐만 아니라, 그 괴물 때문에 실종된 가족을 둔 마을 사람들이 가진 독특한 유대관계를 공감하는 과정에도 담겨 있다.

무려 20년 동안이나 찾다보니 살아있기를 기대하는 건 일찌감치 포기했고, 사체라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실종자 가족들. 이들의 절망감은 이동식이 범인을 알면서도 사체를 찾기 위해 혼자 그 진실을 감당하며 덫을 놓는 '미친 짓' 또한 납득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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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금토드라마 '괴물'의 한 장면. jtbc 화면 캡처

어머니가 실종된 후 바람나 도망갔다는 소문에 시달리며 20년간 정육점을 지키며 살아온 유재이(최성은)는 그래서 이동식의 '미친 짓'을 단박에 알아차리고 공감하는 인물이다. 게다가 실종자 가족의 삶을 이해하고 연민하는 지역사람들의 남다른 유대관계는 이 범죄스릴러의 수사과정을 쉽지 않게 만드는 장치로도 활용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괴물'의 심리 추적극이라는 장치가 중요한 건, 이것이 이 드라마가 스릴러를 통해 담아내려는 주제의식과도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누가 진짜 괴물인가. 드라마가 던지는 이 질문은 심리 추적극이라는 장치를 통해 효과적으로 그려진다.

처음에는 어딘가 제정신이 아닌 듯한 변두리 사람들이 '괴물'처럼 섬뜩하게 느껴지지만, 그 깊은 심리를 파고 들어가 보면 그들을 그렇게 만든 진짜 괴물이 따로 있었다는 걸 드라마는 보여준다. 20년 전 이미 사건이 벌어졌지만 당시 제대로 수사하지 않아 범인을 잡지 못한 것이 그 후 계속 벌어진 실종사건(사실은 살인사건)의 진짜 원인이다.

그런데 20년 전이나 20년 후나 그 수사를 방해하는 건 그곳을 재개발하려는 이들의 욕망이다. 그들은 혹여나 그 지역이 살인사건이 벌어진 흉흉한 곳으로 보여지고 그래서 재개발 이야기가 쏙 들어가게 될까봐 전전긍긍한다. 사람의 목숨보다 돈과 권력에 대한 욕심이 앞서는 저들이 진짜 '괴물'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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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금토드라마 '괴물'의 한 장면. jtbc 화면 캡처

◆연민과 섬뜩함을 넘나드는 연출, 연기, 음악

'괴물'은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 끔찍한 연쇄 실종사건을 그리면서,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 같은 복고적인 영상 연출을 시도했다. 즉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섬뜩한 살인의 풍경들이 그려지지만, 어딘가 사람 냄새 나는 정감이 영상 속에 더해져 있는 것.

특히 만양파출소 사람들이 만양정육점 식당에 둘러 앉아 고기를 구우며 술을 마시는 장면이나 으슥한 시골길을 걷는 장면들은 우리가 그런 낯선 변두리 마을을 걸을 때 동시에 갖게 되는 따뜻함과 섬뜩함이라는 이율배반적인 느낌을 잘 표현해낸다.

하지만 무엇보다 '괴물'의 이런 독특한 색깔을 잘 구현해내는 건, 연민의 감정과 섬뜩한 느낌을 오고가는 신하균의 연기다. 어찌 보면 너무나 슬픈 얼굴을 보여주지만, 가끔 미친 듯이 이빨을 드러내며 웃는 모습은 괴물 같은 공포를 느끼게 만든다. 바로 그 점이 그를 자꾸만 범인으로 오인하게 만들고 범죄스릴러의 긴장감을 높여주는 힘으로도 작용한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드라마 전편을 거의 장악하고 있는 최백호의 노래, 'The Night'이다. 최백호 특유의 페이소스 가득한 음색은 이 마을 전체를 뒤덮고 있는 쓸쓸하고 을씨년스러운 공기를 노래 한 자락에 담아 시청자들에게 전해준다. 그것은 또한 어두운 밤길을 실종된 여동생을 애타게 찾아 헤맸을 이동식의 절규처럼 들리기도 한다. 드라마에서 노래 한 곡이 이토록 강렬한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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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금토드라마 '괴물'의 한 장면. jtbc 화면 캡처

우리에게 범죄스릴러 장르는 생각만큼 그 역사가 길지 않다. 물론 7,80년대에도 '수사반장' 같은 작품들이 있었지만, 그건 범죄스릴러라기보다는 사건에 담긴 인물들의 스토리를 담는 휴먼드라마에 가까웠다.

본격적인 범죄스릴러는 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사회적인 이슈가 됐던 지존파 사건, 유영철 사건 등의 강력범죄들이 나오면서부터 등장했다. 영화 '살인의 추억', '추격자' 같은 작품들이 큰 성공을 거두었고, 드라마에서도 김은희 작가의 '싸인' 같은 범죄스릴러가 화제가 되었다.

폭력 수위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tvN과 OCN 같은 케이블 채널이 보다 강도 높은 범죄스릴러를 담기 시작했고 지금은 지상파들의 수위도 거의 비슷해졌다. '괴물'은 이 일련의 범죄스릴러 장르의 진화 과정을 두고 보면 끝단에 서 있는 작품이라 할 만하다. 아예 19금을 내걸고 표현수위를 높이고 있는 데다, 단순한 범인 잡기가 아닌 심리와 추적극의 요소 등을 추가해 색다른 스릴러의 맛까지 보여주고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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