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선종(善終)한 이문희(바울로) 대주교의 유언장이 공개됐다. 681자에 이르는 유언장 전문 가운데 눈에 확 들어오는 문구가 있었다. "하늘나라에 대한 열정이 커서 그런 것도 아닌데 나는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 있었다는 기억이 계속 남아있는 것을 바라지 않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교관 구내에 있는 성직자 묘지에 묻혀서 많은 사람이 자주 나를 생각하는 것을 좋아할 수가 없습니다."
울림이 가슴 깊은 곳까지 닿는다. 명예를 훼손당했다고, 자존심 구겼다고 너 죽고 나 죽자고 덤비는 게 세상사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지만 역설적으로, 호랑이는 가죽 때문에 죽임을 당하고 사람은 이름값 때문에 화를 당한다. 유언장을 통해 본 이 대주교는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고 싶다거나 누군가에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욕망으로부터도 초월한 듯 느껴졌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인간의 기본적 욕구 중 하나이지만 과하면 좋지 않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일수록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고 한다. 타인의 관심, 인정, 칭찬 등을 통해 심리적 보상을 받으려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타인의 인정과 평판은 마치 소금물과 같아서 마실수록 더 심한 갈증을 부른다.
이 대주교의 바람과 달리 남은 자들로서는 그를 아름답게 추억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천주교대구대교구는 물론이고 지역사회에 드리운 그늘은 너무나 크다. 천주교대구대교구의 현 모습을 사실상 정립한 그는 최고위급 성직자임에도 불구하고 검소한 삶을 살았으며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대했다. 10여 년 전 우연찮게 가까이서 뵀던 필자 기억 속 그의 모습도 그랬다. 은퇴 후 행적도 빛났다. 당신이 암 환자였음에도 호스피스 자원봉사 활동을 통해 암 말기 환자들의 벗이 되어 주었다.
이 대주교의 유언장을 보면서 떠오른 문구가 있다. '하늘을 나는 새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법구경) 그의 유언을 되새기면서 필자는 천주교 신자가 아닌데도 절로 두 손을 숙연히 모았다. 대주교님 뜻, 잊지 않겠습니다. 하느님 품에서 안식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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