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앞산에 진달래가 환하게 피었다. 봄기운이 아직 다 올라오지 않은 이른 봄 삼사월이면 우리나라 산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진달래꽃이다. 가깝고 정겨운 이 꽃에 김소월은 사무치는 정한(情恨)을 안으로 삭이며 억눌렀던 이들의 마음을 담았다.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라고 슬픔과 결기를 함께 노래한 '진달래꽃'은 김소월의 대표 시이자 시집 이름이다('진달래꽃', 매문사, 1925년). 나라를 빼앗겨 우리의 이 땅을 무어라고 일컬을 이름이 없었을 때 무궁화가 피는 '근역'이라고 했고, 지금은 나라꽃 무궁화지만 애틋하기로는 진달래꽃이 으뜸인 데에는 소월 시의 영향이 큰 것 같다. 옛 그림에서 진달래꽃을 즐겨 등장시킨 화가는 신윤복이다.
신윤복의 진달래꽃은 김소월과 달라서 그림 속 광경이 봄을 배경으로 일어난 일임을 나타내는 계절 상징물이다. 진달래꽃으로 봄날이라고 꼭 드러낸 그림이 많은 것은 남녀상열지사의 그림이 많기 때문이다. 얼었던 대지가 화창한 양(陽)의 기운을 타고 따뜻하게 부풀어 오르는 이치를 연애의 설레는 마음에 빗대어 춘정(春情), 춘의(春意), 춘색(春色)이라고 했다.
'상춘야흥'은 진달래꽃 핀 어느 날의 광경을 그렸다. 갓 끈을 편안히 풀어 놓은 채 한 손으로 바닥을 짚고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음악의 선율에 몰두하고 있는 분이 이 봄맞이 상춘(賞春) 행사의 주최자이다. 청중은 본인과 화면 왼쪽 끝에 앉아 부채를 거꾸로 쥐고 장단을 맞추고 있는 친구 한 사람뿐이다. 두 명의 관객은 도포에 갓을 쓴 평상복 차림인데 풍채가 좋고 눈매가 날카로운 모습이어서 양반 중에서 무반(武班)의 고위 관료인 듯하다. 불려온 기생 두 명은 음악에 관심이 없는 듯 시큰둥한 표정이고, 오른쪽에 서 있는 창옷 차림 두 젊은이는 양반의 수행원이다. 거문고, 해금, 대금을 연주하는 세 명의 악사가 각각 작은 자리 위에 앉아 한창 연주 중이다. 화면의 왼쪽 아래에는 술상을 들고 오는 여성의 모습을 그렸다. 크지 않은 화첩에 양반, 기생, 음악가, 수행원, 하인 등 신분과 성별과 직업이 다른 10명의 인물이 옷차림과 자세와 표정으로 각자의 개성까지 드러내며 그려져 있어 한 장면으로 봄날 야외 음악회 광경을 빠짐없이 보여준다.
신윤복은 아버지와 종조부가 화원이었던 화원 명문가 집안 출신으로 그도 화원이었다고 하는데 기록에서는 철저하게 배제되어 언제 태어나서 언제 죽었는지도 알 수 없는 화가이다. 그는 여성 인물의 형상화와 기녀와 양반 남성 사이의 애정 풍속에 집중했다. 지금은 흥미로운 '풍속화'이지만 그의 주제는 당시로서는 시대의 금도를 넘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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