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 종교가 다른 종교들을 타도의 대상으로 삼아 갈등과 분쟁을 일으킨다면 이것은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겉으로는 평화를 유지하는 것으로 행세하지만 속으로는 다른 종교들을 미움과 배척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어떤 형태로든 결국은 표출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종교들이 지역 사회 안에서 건전한 역할을 하기 위해서도 종교 간의 대화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다른 종교들의 교리는 무엇인지, 나의 종교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알아야 나의 종교가 신봉하는 교리의 정당성도 확고하게 구축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종교들과의 평화로운 공존이 가능할 것이고 나아가 서로 인정하고 협조하는 일도 가능할 것이다.
과학문명이 우세한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은 이제 종교 자체에 대해서도 과학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려고 한다. 이러한 경향은 종교 자체에 대단한 도전이 되고 있다. 많은 수의 사람들이 점차 풍부한 자연과학적 지식과 인문학적 지식을 겸비해 나가는 과정에 있기에 이치에 맞는 정확한 진리로 무장하지 않은 종교 단체에 소중한 시간과 돈을 장기간 지속적으로 할애하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각 종교는 현존하고 있는 타종교들을 타도의 대상으로 삼아 그러한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함께 뭉쳐서 앞으로 다가올 수도 있는 반종교적인 시대적 분위기를 이겨나가기 위한 공동의 전선을 구축해 나가야 할 것이다. 유럽을 가보면 해마다 종교의 세력이 약화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원인은 사람들이 진리를 외면하기 때문이기 보다 기존의 종교가 올바른 진리와 실천으로 무장하기 위한 자기 쇄신을 소홀히 한 것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종교들도 장기적인 안목으로 앞을 내다보면서 참된 진리로 나아가려는 자기 쇄신을 끊임없이 하지 않고 교만한 마음으로 이미 완성된 진리와 표현 방식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여 안주한다면 오래지 않아 외면당하고 말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대단한 정열로 노심초사하기에 그릇되거나 별로 효용성이 없는 일에 오랫동안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할 리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태도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고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
건전한 종교라면 다른 종교들을 존중하고 지역사회의 사람들을 구원으로 인도하기 위한 작업에 협조하기 위한 모임을 주선하여 대화할 것이고, 그런 과정으로 얻은 방안들을 실천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볼 때, 최후로는 그런 열린 종교가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받아 번성할 것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종교 간의 대화와 평화를 중요한 일로 간주하여, 교황에 즉위한 후 얼마 되지 않아 전 세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종교의 지도자들을 한 자리에 초빙하곤 했다. 교황의 이러한 노력은 그 자리에 초대를 받은 각 종교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의식이 깨어있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매우 바람직한 작업으로 평가를 받았고, 지구촌의 여러 민족과 종교 간의 대화와 평화 정착에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이것은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종교자유에 관한 정신을 구체적으로 실천해 나간 것이기도 했다.
이러한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한 편으로 예상치 못한 문제도 발생했다. 종교 간의 대화와 평화에서 전제되는 것은 상호 인정과 존중인데, 그렇다면 우리가 믿고 있고 소속되어 있는 종교단체가 다른 종교들보다 특별히 더 낫거나 다른 것이 무엇이기에 굳이 이 종교단체에 머물러야 하며 전교를 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라는 정체성 확인의 문제가 대두된 것이다.
신부, 천주교대구대교구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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