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재·보궐선거가 집권여당의 참패로 끝났다. 정부·여당에 치명타를 가한 건 다름 아닌 20·30대의 표심(票心)이었다.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 서울시장 선거에서 20대는 55.6%, 30대는 56.5%가 오세훈 시장에 표를 몰아줬다. 특히 20대 남성의 오 시장 지지율은 72.5%로 가장 높았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양상은 정반대였다. 촛불 혁명의 선두에서 박근혜 정부를 전복시킨 젊은층은 보수정당에 좀처럼 마음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지난해 4·15 총선 출구조사 결과 더불어민주당에 각각 56.4%와 61.1%의 지지를 몰아줬던 20·30대는 이번 서울시장 선거 출구조사에서는 33.6%, 38.7%만 민주당 박영선 후보를 찍었다. 지지율 폭락의 이면에는 문재인 정부 4년간 민주당을 겨냥해 차곡차곡 쌓아온 젊은층의 반감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의' 집착에 놓친 '정의'
전문가들은 민주당이 허울 좋은 '시대적 대의(大義)'에 집착해 젊은층이 중요시하는 '공정·정의' 이슈를 놓쳤다고 비판한다. 60대 이상(산업화), 40·50대(민주화)처럼 세대를 관통하는 시대정신보다는 '내 삶 속 불공정'에 가장 민감한 20·30대를 철 지난 586식 대의론(論)으로 억누르려 했다는 것이다.
젊은층의 민심 이반 현상이 본격적으로 감지되기 시작한 게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논란부터라는 점도 이런 지적을 뒷받침한다.
북한 선수들을 위해 일부 선수들이 국가대표팀 자리를 내놔야 했고,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선수들의 노력을 희생시켰다"는 여론이 들끓었지만, 정부는 '평화'라는 대의로 이를 덮었다. 그러나 더는 북한을 '언젠가 합쳐야 할 같은 민족'으로 느끼지 않고, 통일에 반대하는 여론도 가장 높은 젊은층을 설득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고용 안정'을 명분 삼아 추진한 인천국제공항공사 등 공기업 정규직화 정책, '공공의료 강화'를 내세워 추진한 공공의대 정책도 공정을 중시하는 젊은층의 반발에 직면했다.
성평등이라는 대의를 앞세워 노골적으로 무시해온 젊은 남성들의 여론은 이번 선거에서 20대 남성이 오세훈 시장에게 던진 72.5%의 투표율로 부메랑처럼 돌아왔다.
이렇듯 20·30대가 분노하며 쌓아온 '장작'에 기름을 끼얹은 건 부동산 가치 폭등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 사태, 정부·여당의 '내로남불' 기류였다. 정당한 노력 대신 부정한 방식으로 부를 축적한 이들이 발각됐고, '내 편'이라 여겼던 김상조·박주민 등 여당 인사들도 그저 기득권에 불과했다는 인식이 생겼다.
공정과 정의는 이들 세대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에 무게를 실었던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취임 일성이었던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라는 말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판단한 20·30대는 결국 박 정권을 몰락시킨 의제로 문 정권에 다시 한 번 심판을 내린 셈이 됐다.

◆'꼰대'가 된 586
고정 지지층을 믿고 '꼰대'가 된 정부·여당과 그 지지자들은 이들을 보듬기는커녕 도덕적 우월감을 바탕으로 훈계하고 가르치려 들며 오히려 불만을 더 키웠다.
선거 막판 논란을 빚었던 진보 언론 출신 허재현 전 기자가 대표적이다. 그는 오세훈 시장 유세에 동참한 20대들을 향해 "얼굴 잘 기억했다가 취업 면접 보러 오거든 반드시 떨어뜨리라. 국민의힘 지지해서 문제가 아니라 바보라서 문제"라고 썼다.
과거 기성세대에 맞서 혁신과 개혁을 부르짖었던 586세대가 이제는 '면접관'의 자리로 표상되는 기득권을 손에 쥐고 20·30대를 계도와 교육의 대상으로 취급한 것이다.
정치권도 다르지 않았다.
설훈 민주당 의원은 "20대 지지율이 낮은 것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교육받았기 때문"이라고 했고, 같은 당 홍익표 의원도 "박정희 시대를 방불케 하는 반공 교육으로 아이들에게 적대의식을 심어줬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김용찬 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민주당은 젊은 세대를 '집토끼'처럼 생각한 것 같은데, 여론조사 결과에서 그렇지 않다는 결과가 나오자 '남 탓'을 했다. 정치적으로 최악의 수"라며 "사회초년생이거나 취업을 준비하는 등 불안정성이 강한 이들 세대에게 이런 비아냥은 매우 모욕적으로 다가왔고, 투표로 저항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2030, '보수화'는 아냐
그러나 이번 선거로 섣불리 20·30대가 '보수화' 됐다고 착각해선 안 된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장의 대안으로 국민의힘을 선택했을 뿐, 특정한 집단적 시대정신에 지배받지 않는 젊은층은 보수·진보의 양 갈래로 나뉘었던 구세대와 달리 언제든 자신의 요구에 맞는 정당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용찬 교수는 "지금의 20·30대에게 '민주당을 찍으면 진보, 국민의힘을 찍으면 보수'라는 단순도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선거가 가지는 의미에 주목할 뿐"이라며 "이번 선거는 민주당 소속 시장들의 성 비위로 인해 치러졌고, 정부·여당의 실정을 심판하는 성격이 강한 선거라고 20·30대는 규정한 것"이라고 했다.
김태일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민주화가 시대적 화두이던 시대에는 '민주 대 반민주'의 이분법적 구도에서 한쪽을 지지하는 것이 도덕적 의무처럼 돼 있었다"며 "그러나 지금 20·30대의 표심에서는 '그런 시대에는 이제 관심이 없다'는 생각을 확인할 수 있다. 대신 '개인의 행복'이 보장되는 사회를 기대하고 있기 때문에 이전의 틀에서 벗어나 언제든 '스윙 보터'가 될 수 있는 정치적 주체인 셈"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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