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죽음에 대해 연구한 정신의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심리적 반응 혹은 태도가 다섯 단계를 밟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처음엔 상황을 부정하다가 분노, 타협, 우울을 거쳐 결국 수용한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처지에 몰렸을 때도 해당한다.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참패한 문재인 정권이 퀴블러 로스가 규정한 5단계 과정을 밟고 있어 시선을 끈다. 4년 동안의 실정(失政)에 대해 국민이 심판을 내렸는데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부정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어서다.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선거 결과에 대해 짤막한 입장을 밝혔다. '엄중히' '더욱' '보다' 등의 단어들이 동원됐지만 인적 쇄신이나 정책 변화에는 선을 그었다. 이번 선거는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을 심판한 게 아니라 문 대통령의 4년 국정을 단죄(斷罪)한 것이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무엇이 잘못됐고 어떻게 변화하겠다는 메시지를 내놓지 않고 기존 정책을 밀어붙이겠다고 했다. 인적·정책 쇄신을 촉구한 민심과 거리가 멀다. 정권을 심판한 선거 결과를 부정하고 싶은 심리가 깔린 것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남의 탓을 하는 것도 선거 참패를 부정하는 심리와 맞물려 있다. 김종민 민주당 의원은 "(오세훈 서울시장이 내곡동 개발을) 알고 추진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증언이 많았는데 언론이 꼼꼼하게 따졌어야 했다"며 "언론이 편파적이면 민주주의에 상당한 위험 요소가 될 것"이라고 했다. 언론, 포털, 검찰 탓 등 다른 원인 찾기에 광분하는 모습에서 선거 참패 부정 심리가 물씬 느껴진다.
반성문을 쓴 민주당 초선 의원들을 '초선 5적'으로 지칭하고 공격하는 민주당 당원들에게서는 분노마저 엿보인다. "내부 총질" "배은망덕" "초선족"과 같은 격한 문구와 문자 폭탄에서 분노가 뚝뚝 묻어난다.
2007년 대선에서 참패한 뒤 친노(親盧)를 두고 폐족(廢族) 말까지 나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으로 친노는 부활했다. 4·7 선거로 이젠 친문(親文)이 폐족 위기에 몰렸다. 문 대통령과 집권 세력이 정권 심판을 수용하지 않고 부정과 분노만 한다면 내년 대선에서 더 엄중한 심판이 내려질 것이다. 친문이 영영 폐족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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