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은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데 기자는 최근 배앓이를 좀 했다. 적게 벌었다는 사람들은 몇천만 원, 많이 벌었다는 한 친구는 수억 원을 벌었다는 투자 성공담도 들려줬다. 가상화폐 얘기다.
기자도 할까 말까 망설이다 그냥 두어 달을 보냈는데 결국 투자를 못 했다. 최근 가상화폐 시장에 공포 심리가 커지고 세계의 돈줄을 쥐락펴락하는 중국이 강도 높은 규제에 나서면서 가상화폐 값이 확 떨어지니 기자는 그나마 위안을 삼고 있다.
며칠 전 대학생 아들과 밥을 먹다가 20대 청년들의 가상화폐 투자 열기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들 친구들 대다수가 투자를 한다는 것이었다.
"너는 왜 안 하느냐"고 물으니 "잘 모르는 분야는 들어가면 안 된다. 지식이 부족한 분야에 들어가면 꽁무니만 쫓아다니다가 결국 이성적 판단을 못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교학상장(敎學相長)이라 하더니, 아들의 말은 비록 상식적 언급이었지만 기자는 아들에게 한 수 배웠다.
여러 학자들의 연구를 살펴보면 인간의 뇌는 어떤 정보를 획득할 때 생각을 많이 하지 않는다는 경향이 발견된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가진 뇌는 무궁무진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지만, 생각 밖으로 뇌의 활동은 게으르고 생각 투자에 매우 인색해 구두쇠라 칭할 수 있다는 것이다.
1980년대 미국 학자들은 이를 '인지적 구두쇠' 이론으로 정립했다. 인간은 인지능력의 한계로 인해 몇 가지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요소로만 구성된 자신의 좁은 지식 체계에 의해 대상을 판단한다는 설명이었다. 가상화폐에 대한 몇 가지 좋은 평판에만 의존해 '거름 지고 장에 가는' 패턴이 반복되는 현상과도 연결된다.
제1야당 국민의힘 당권 경쟁 구도에서 신진들의 돌풍이 거세다는 결과치가 각종 여론조사에서 쏟아지고 있다. 보수 정당에서 신진들이 당권에 도전해 목소리를 낸다는 것 자체가 신선한 충격이요, 탄핵 정당으로 외면받던 제1야당 전당대회가 국민적 관심사로 떠올랐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외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제1야당의 리더를 뽑는 데 있어서 국민의힘 당원의 절대 다수를 구성하고 있는 대구경북 지지자들을 비롯해 국민의힘 지지층이 과연 '인지적 구두쇠'에서 탈피하려는 노력이 있는가라는 물음이다.
인간이 생각 투자에 인색한 구두쇠라는 이론은 정치학에도 접목되면서 유권자들의 정치 참여 행태 연구와 연결되고 있다. 유권자들은 기존 자신이 갖고 있는 태도와 신념만 기반으로 해 어림짐작을 이용하기 쉽다. 그러다 보니 가장 손쉬운 정보 획득 방식인 후보자의 몇몇 외적 이미지에 과도하게 의존하면서 정보의 지름길만 걸으려는 행태가 나타난다.
멀리 볼 것도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나, 박근혜 전 대통령은 본인들의 정치적 역량도 있었겠지만 '후광 효과'라는 이미지에 힘입어 대권을 거머쥐었다는 분석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문 대통령의 뒤에는 '정치 혁신의 아이콘' 노무현 전 대통령, 박 전 대통령 뒤에는 '5천 년 가난을 떨쳐낸' 박정희 전 대통령이라는 강력한 후광이 있었다. 지금 국민들은 후광 효과라는 이미지에 기댔던 선택이 과연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지를 제대로 목격하고 있다.
구두쇠가 지름길을 걸으려는 유혹을 정당이 차단해야 한다. 정당이 엉뚱한 후보를 걸러내는 거름망 역할을 해야 하고, 국민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정치인의 입장을 문지기로서 막아내야 한다. 정당이 이 역할을 포기하고 여론조사에만 기대 국민에게 외주를 맡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국민의힘 당원들은 살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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