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을 하다 다른 직업을 찾는 사람들이 예전에는 꽤 있었다. 알고 지내는 공무원 출신 기자도 여럿 있다. 이들은 몸담은 공직 사회의 인맥과 정보를 활용해 비교적 성공적인 언론인의 길을 걸었다.
세월이 흐르고 직업에 대한 선호도가 바뀌면서 공무원을 그만두고 언론인이 되려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얼마 전 대구 한 구청 직원의 기고 게재 부탁을 받았는데, 그는 30년 전 기자를 그만두고 공무원이 됐다고 한다. 현재 상황에서 세상을 바라보면, 그는 일찌감치 탁월한 선택을 했다.
최근 두 가지 대구 지역 신문을 읽다가 대비되는 기사에 공무원 좋은 세상임을 다시금 알게 된다. '빚 감당을 못해 대구 개인 파산 신청이 14% 늘었다'는 매일신문의 분석과 '대구 상당수 지방자치단체가 세금으로 퇴직 공무원에게 고가 선물을 계속하고 있다'는 영남일보의 지적 기사다.
둘 다 새삼스러운 내용은 아니지만 한 번 들여다보자. 대구지방법원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5월까지 접수된 개인 파산 신청 건수는 1천803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천583건)에 비해 13.9% 증가했다. 올해 1월은 지난해(261건)보다 28.7% 많은 336건이었고, 3월은 한 해 사이 340건에서 450건으로 32.4% 급증했다. 이는 장기화한 코로나19 사태와 경기 침체의 여파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역 법조계 관계자들은 파산 문의가 늘어 경기 침체를 체감한다고 밝히고 있다.
대구시에 따르면 자영업자들의 폐업도 늘었다. 지난해 일반음식점의 폐업 건수는 2천776건으로 2019년(2천483건)보다 11.8% 증가했다. 이는 금융위기 때인 2008년(2천708건)과 비슷한 수준이다. 올해는 5월까지 927건으로 지난해(1천135건)보다 다소 줄었지만, 4월에는 폐업이 241건으로 2008년(374건) 이후 가장 많았다.
이런 시민들의 고단한 삶을 비웃듯 국민권익위원회의 중단 권고에도 대구시와 8개 구·군 중 중구와 달서구를 제외한 지자체가 예산으로 퇴직 공무원 선물을 제공하고 있다. 서구청과 남구청은 1인당 100만원 상당, 달성군은 150만원 상당, 수성구는 200만원 상당의 금 열쇠를 각각 퇴직 공무원에게 주고 있다. 북구는 1인당 60만원 상당의 금배지를, 동구는 1인당 150만원 상당의 선물을 준다. 대구시도 1인당 50만원 상당의 방짜유기 수저 세트와 금배지를 퇴직 선물로 제공하고 있다.
반면 대구 중구는 2018년 6월부터, 달서구는 2016년 하반기부터 예산으로 퇴직 선물을 하지 않고 있다.
퇴직자들에 대한 선물은 오래전부터 우리 사회의 미덕으로 거의 모든 직장에서 관행적으로 이뤄져 왔다. 하지만 살기가 팍팍해지고 계급, 권위 타파로 선후배 관계가 무너지면서 다수 직장에서는 퇴직자에 대한 고가의 선물은 사라졌다. 다만 동료 직원들이 십시일반 사비를 모아 마련한 선물로 감사의 마음을 전달하고 있다.
이런 실정에도 우리나라 공직 사회는 변화를 받아들이는데 무디다. 국민권익위는 2015년 전국 지자체에 퇴직 예정자에 대한 국외 연수와 금제품 등 고가의 금품 제공 관행을 중단하라고 권고했다. 올 4월에도 행정안전부와 전국 지자체에 연수나 기념금품을 지원하는 예산 집행을 중단하고, 관련 조례를 연말까지 삭제하도록 권고했다.
국민권익위에 따르면 2016~2019년 전국 지자체 243곳(광역 17곳·기초 226곳) 중 제주와 강원 속초 등 9곳을 뺀 234곳이 장기근속 퇴직 공무원에게 예산으로 국내외 연수를 지원하고 기념금품을 줬다. 전체의 절반이 넘는 지자체 143곳(58.8%)이 여행 성격의 해외연수를 보냈고 일부는 가족도 동반할 수 있도록 했다. 지자체 66곳(27.1%)은 금열쇠 등 고가의 금제품을 퇴직 기념품으로 제공했다.
이 기간 234개 지자체가 퇴직자 여행과 각종 기념금품 지급에 쓴 예산은 총 781억원으로 집계됐다. 연수 비용으로 일부 가족을 포함해 총 2만3천562명에 대해 597억원을 사용했고, 184억원을 들여 3만105명에게 장기 재직 기념품과 공로패를 줬다. 조례 근거도 없이 18곳(7.4%)이 연수를 시행하고 125곳(35.4%)이 기념금품을 제공했으며 별도 심의 없이 관련 예산을 집행하기도 했다.
시민단체에서도 이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대구경실련은 지난해 세금으로 퇴직 공무원을 예우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며 관련 예산을 편성하지 말 것을 요청하는 공문을 구청 등에 보냈다.
국민권익위의 지속적인 권고와 시민들의 부정적인 시선에도 지자체가 관행을 멈추지 않는 것은 노조 등 공무원들의 조직적인 반발 때문이다. 전국공무원노조 대구경북지역본부는 언론 보도에 대해 규탄 성명을 발표했다. 노조는 성명을 통해 "평생을 자신의 노동으로 헌신했던 조직으로부터 마지막 선물을 받는 것조차 허락받지 못한 노동자들이 얼마나 있는지, 모든 노동자에게 그것을 보장하라고 어떻게 주장해 나갈 것인지를 고민하라"고 주장했다.
또 국민권익위의 권고에 대해 "정부가 노동자인 공무원을 향해 해외연수와 전별 선물을 주는 것을 공무원 노동자만의 특혜인양 이야기하고, 부정부패라고 이야기하는 것에 국민은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성명이 공직 사회 전체를 대변한다고 믿고 싶지 않다. 일반 시민 정서와 거리가 멀어 보인다. 아무리 좋은 취지라 하더라도 세금으로 퇴직 공무원을 예우하는 건 사적인 영역이다. 일부 의견이라 할지라도 공무원들은 급변하는 시대상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는 외면할 수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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