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희 작 'Blooming' 116x80.3cm, Mixed media (2021년)
그림 그리는 일을 업(業)으로 삼는 화가들이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직업적 철칙이자 바람은 뭘까?'를 생각해 본다. 자연의 재현?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화법 개발? 의식 또는 무의식적인 내면세계의 표출? 시대정신의 고발? 등등 존재하는 화가 수만큼이나 그들이 추구하는 회화적 정신도 다양하다.
하지만 '자연의 재현'은 카메라의 등장으로 힘을 잃었고, '화법 개발'은 인류가 동굴 벽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이래 웬만한 기법은 죄다 나온 것 같다. '내면세계의 표출'도 추상표현주의나 의식의 자동기술법 등의 등장으로 참신성이 떨어지며, '시대정신의 고발'은 역사적 위기 때마다 이미 많은 작품들이 선을 보였다.
미래사회에 어떤 회화적 물성이나 새로운 기법, 또는 전혀 다른 형태의 회화가 등장할 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그때까지는 적어도 화가라면 나만의 '독창성'을 화두 삼아 지루하고 힘겨운 작업을 감내해 낼 수밖에 없다. 그게 그림 그리는 사람들의 '팔자소관'이다.
질 들뢰즈는 '감각의 논리'에서 말했다. "그린다는 것, 그것은 채색된 감각을 기록하는 것"이라고. 그의 논리에 따르면, 화가들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자각하지 못하는 수많은 섬세한 감각을 화폭에 담아 전해주는 메신저들인 셈이다. 관람객은 화가가 기록한 '채색된 감각'을 눈으로 만지고, 눈으로 향기를 맡고, 눈으로 소리를 듣는다. 이 과정에서 회화적 기법이나 구상 또는 비구상은 중요하지 않다.
'좋은' 그림이란 작가와 관람자와의 소통이 무엇보다 우선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박성희 작 'Blooming'은 작품의도나 작가의 내면이 다양한 색채의 조형요소로 인해 잘 전달되고 있다고 여겨진다. 30초 정도 'Blooming'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뭔가 모르게 마음을 들뜨게 하는 파장이 느껴진다. 그러면서 마치 각양각색의 꽃이 피어난 비밀의 정원 속에 들어온 착시가 일어난다. 'Blooming'의 뜻도 '꽃이 활짝 핀'이다.
빨강, 노랑, 하늘색, 초록, 분홍, 하양 등이 어우러진 찬란한 색의 여러 꽃들을 일일이 정밀 묘사로 그릴 수도 있었겠지만 그건 오히려 컬러 사진기의 몫이다. 화가라면 당연히 이 생기 넘치는 꽃들의 향연을 어떻게 캔버스에 옮길까 고민해야 했고, 그 고민을 박성희는 혼합 재료를 이용해 눈에 들어온 작가의 감각을 고스란히 화폭에 옮겨 놓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컬러 사진에는 결코 없는 꽃의 향기, 꽃들의 속삭임이 박성희의 'Blooming'에서 공감각적으로 느껴진다. 이런 게 작가와 관람객의 '소통'이 아닐까?
마음 속 감정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작가는 부드러운 붓질과 덧칠을 통해 작가적 감정의 실루엣을 더하고 다시 작품의 조형성을 모색하면서 '무질서 속 숨겨진 질서'를 의도하고 있다. 박성희는 이 의도를 "그림이라는 건 그림을 보는 불특정 다수에게 화가가 공유하고 공감하고 싶은 메시지"라고 정의함으로써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다.
관람자 모두의 마음속에 긍정의 에너지가 피어나고 행복이 충만하기 바라는 마음, 그것이 박성희가 그림 그리는 '직업적 철칙' 내지는 '회화적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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