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당선작 없음

조두진 논설위원
조두진 논설위원

제13회를 맞이한 현진건 문학상이 올해는 본상 수상작을 선정하지 못했다. 대신 최종심에 오른 작품 중에 추천작 7편을 뽑아 시상했다. 심사위원들은 당선작을 내지 못한 이유를 "상투적이다. 소통이 되지 않는다. 사유가 부족하다"고 밝혔다.

추천작 7편 모두 전개 방식의 정교함, 표현의 미려함과 적확함이 예년 당선작에 비해 부족함이 없었다. 세련미에서는 예년 당선작들보다 뛰어났다. 그럼에도 심사위원들을 만족시키지 못한 까닭은 무엇일까? 현진건 문학상의 권위가 높아졌고, 상금도 늘었기에 더 높은 잣대를 댄 면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닌 것 같았다.

첫 연애를 시작하는 청년은 미숙하다. 그의 말과 행동은 유치하고 때로는 조악(粗惡)하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그의 진심은 정확하게 상대의 심장에 꽂히고, 두 사람은 연인이 된다. 비록 말과 행동이 어설프고 유치하지만 경험과 기술로 짜낸 정교한 작위(作爲)가 아니라, 터져 나오는 진심이기 때문이다.

추천작 모두 기량(skill)이 돋보였지만, 가슴에서 솟아나는 떨림은 없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청년의 수줍은 고백이 아니라, 연애 숙련공의 '웰 메이드(well-made) 고백' 같은 작품이었다. 7편 중 6편이 '이 이야기'를 쓰지 않을 수 없어 쓴 소설이 아니라, 소설을 쓰기 위해 '이 이야기'를 불러낸 느낌,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되기 때문이 아니라, 연인이 필요해서 '이 사람'을 택한 느낌.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는 예술이 지향하는 바다. 꿩 아니면 닭을 잡고, 닭 아니면 달걀을 집는 것은 생활의 지혜다. 예술은 꿩 아니면 그것으로 끝이지, 다른 것으로 타협하지 않는다. 그 비타협성, 그 절대성이 예술이 존재하는 근거다. 그래서 '예술'은 종종 인생에 손해를 끼치고, 때때로 위험하지만, 예술 없는 세상은 공허하다.

어느덧 장년(壯年)에 이른 한국 사회는 어떤 '예술'을 품고 있을까. 정교한 기술이 아닌 거친 열정으로 마주 서야 하는 무엇, 시간과 금전 손해를 기꺼이 감수할 수 있는 무엇, 그것 아니면 다른 모든 것은 무의미한 것 말이다. 쓰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무엇'이 없다는 것, 몰두할 '무엇'이 없다는 것은 행(幸)이고 동시에 불행이다. 안정적이나 '당선작' 없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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