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에피소드로 읽는 전쟁 톡톡] 일상 속에서 만나는 마지노선

마지노선 벙커
마지노선 벙커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디지털에 대한 나의 아날로그적 반격은 수시로 일어난다. 클릭 한 번에 세계 곳곳을 볼 수 있건만 종이지도를 서재 가득 펼쳐놓고 동서양을 종횡무진으로 누빈다. 낡은 지도나 지구본을 보고 있으면 솔바람 소리며 산곡을 흐르는 물소리가 들린다. 국경을 짓밟고 문화를 침탈하는 전쟁의 포화가 귓전을 앵앵거린다. 징기스칸과 나폴레옹의 말굽 소리, 유럽을 호령하던 롬멜의 탱크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프랑스 중심의 유럽지도를 꺼내 보면 접경 국가들끼리 벌인 치열한 전쟁사를 읽게 된다. 러시아는 부동항을 찾아서, 독일은 넓은 남쪽 평원을 쟁취하기 위해 그리고 프랑스는 동부의 보고를 확보하고 서쪽의 제해권을 확대하려고 호시탐탐 노린다. 영국인들 어디 손 놓고 있겠는가.

1870년 보불전쟁에서 승리한 독일이 세력을 확장해 나가자 영국을 비롯한 프랑스, 러시아 등 주변국들이 그냥 두고 보지 않는다. 패권 다툼은 급기야 1차대전의 불씨가 되고 만다.

특히 프랑스와 독일은 견원지간이나 다름없다. 언제 돌변하여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눌지 모르는 양국은 군비증강에 경쟁을 벌인다. 나폴레옹 이후 프랑스는 독일 침공에 대비하여 견고한 참호구축에 집중하고 독일은 전략체계를 과감하게 개혁해 나갔다.

1916년 2월, 프랑스는 1년이 넘는 악전고투 끝에 베르덩(Vrdun)에서 독일의 침공을 막아냈다. 파리 북쪽의 전략적인 요충지인 베르덩을 지켜냄은 곧 프랑스군의 자존심과 방어제일주의를 확인한 결과가 되었다. 콘크리트 보루는 소낙비를 퍼붓는 듯한 독일군의 포격에도 거뜬히 버틸 수 있었기에 베르덩의 승리는 프랑스 국민적 예찬을 넘어 전설이 되었다. 군내외 지도자는 물론 시민들에 이르기까지 영웅적인 방어전이 베르덩을 승리로 이끌어냈다며 방어전략에 대한 믿음을 확고히 했다.

마지노선
마지노선

1차대전 이후 드디어 프랑스는 독일과의 전쟁에 대비하여 스위스부터 룩셈부르크에 이르는 독일과 접경지역 지하에 총길이 750km의 요새를 구축한다. 대략 5km 간격으로 5,000여 개의 벙커를 만들었는데 그 중에는 일천 명의 병력이 상주할 수 있는 142개의 요새를 갖춘 대규모의 철근콘크리트 보루를 만들었다.

베르덩 전투에 부사관으로 참전하고 훗날 국방장관이 된 앙드레 마지노(1877∼1932)가 제안하고 건설하기 시작하였는데, 견고한 참호야말로 어떠한 공격도 이겨낼 수 있다는 강한 믿음에서 출발되었던 것이다. 마지노 사후에 완성된 마지노벙커는 견고한 내벽뿐만 아니라 건물 밖에도 총포를 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독일군의 근접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도록 하였다. 그것이 곧 2차 대전 당시 독일침공에 맞선 그 유명한 프랑스의 방어선, 마지노선(Ligne Maginot)이다.

마침내 1939년 9월,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하자 프랑스는 육군 병력의 절반 이상을 마지노벙커에 투입,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1940년 5월, 독일은 프랑스가 가장 취약하게 여기고 있는 마지노선 북부 아르덴느 삼림지대를 강타하였다. 무소불위의 독일 전차 앞에서 프랑스군과 국민이 확신했던 마지노벙커에서 마저 단 6일 만에 항복하고 만다. 철벽의 마지노선이 무너지고 만 것이다.

몇해 전, 나는 프랑스 알자스 로렌지역의 베커링(Veckring)에 있는 하켄베르크(Hackenberg) 벙커를 찾았다. 관광지로 개방된 그 요새는 야트막한 언덕에 불과하고 보통의 숲과 잔디로 별나지 않게 위장된 한낱 풀밭에 불과했다. 그러나 외부와 달리 벙커 안은 마치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힌 지하도를 따라 다양한 군사 용처를 만들어 놓았다.

철로가 설치된 벙커는 길이와 폭이 상상을 초월했다. 지휘소와 총포대는 말할 것 없고 주방과 부식 창고 그리고 탄약고와 병사들이 자고 쉬기에 부족함이 없는 거의 완벽한 공간 구조였다.

필자는 프랑스군이 난공불락의 요새로 믿었던 마지노 벙커의 옛 모습 앞에서 만감이 교차했다. 한 시대사를 고스란히 안은 채 역사의 산물로 남아있는 그 지하벙커에서 나는 문득 우리 땅의 동서 허리를 가로 지르고 있는 군사분계선을 떠올렸다.

지난 날 6.25전쟁은 어느 편에도 승리를 안겨주질 못했다. 우리는 그 지울 수 없는 상처와 함께 남북의 내왕을 단절한지 반세기를 훌쩍 넘기고 있다. 먼 훗날 통일세대는 군사적으로 용도를 다한 군사분계선을 무엇이라 부를까. 그리고 그 불모의 땅을 무엇으로 거듭나게 할 것인가.

이제, 군사용어였던 마지노선은 세간에 자주 회자되는 언어가 되었다. 참호방어의 대명사로 불리어지던 마지노선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그 의미는 생활 속에 살아남아 '지켜야할 한계 선', '넘어서는 안 될, 더 이상 허락되지 않는 경계' 등을 일컬을 때 어김없이 쓰인다. 경제지표의 마지노선, 정치도의의 마지노선 심지어 K방역의 마지노선이 뚫렸다는 기사 등이 그 구획을 결정짓는 단호함과 절박함을 더욱 절실히 느끼게 해준다.

김정식
김정식

김정식 육군삼사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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