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은 겨우 건졌는데 앞으로 살 길이 막막합니다."
산불 3일째인 6일 울진 하늘은 소방헬기와 군용헬기가 물주머니를 매단 채 쉴 틈 없이 날고 있었다. 그러나 빨간 불빛은 여전히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았고, 잿빛 연기는 하늘을 뒤덮었다.
북면과 울진읍을 잇는 7번 국도변 절개지 산쪽은 화마가 할퀴고 간 흔적이 시커멓게 남았다. 표지판 등 교통시설물들도 불에 타 검게 그을려 있었다.
불이 휩쓸고 간 북면지역은 마을마다 폭삭 내려앉은 집들과 엿가락처럼 휘어진 창고철제벽이 당시의 처참함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었다.
몇몇 집 닭장에는 닭들이 미처 도망가지 못한 채 타죽어 있었으며 주인 잃은 개들도 집 근처를 떠돌고 있었다.
주민들은 화마를 피해 울진국민체육센터를 비롯한 13곳의 대피소에서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재민들은 자원봉사자들이 날라 준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부모를 따라 대피소에서 지내고 있는 아이들은 천진난만한 얼굴로 텐트 안에서 뒹굴며 장난을 치고 있어 이를 지켜보는 부모들의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
국민체육센터에서 만난 이재민 주미자(77·북면 신화리) 씨는 "산불 소식을 듣고 밖으로 나왔지만 집과 한참 떨어져 있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면서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불씨가 날아들어 불이 붙기 시작하면서 순식간에 집이 불에 타버렸다"고 당시의 끔찍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몸서리 쳤다.
이 마을은 25가구 가운데 4가구 정도를 제외하고 모두 불에 타 이재민으로 전락했다.
주 씨는 "눈물만 나고 심장이 무너지는 것 같다"며 "빨리 집으로 돌아가 내 손으로 밥을 해먹고 싶지만 돌아갈 집이 사라져 버렸다"고 울먹였다.
같은 마을 노성순(87) 씨는 "급히 대피하느라 지갑도 못 꺼내고 몸만 달랑 빠져 나왔다"며 "앞으로 대피소에서 얼마나 지내야 할 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남상억(90), 남응숙(85·북면 소곡리) 씨는 "불씨가 미친 듯이 날려 금방이라도 불에 타 죽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면서 "산불이 잡히고 집에 돌아가 보니 재만 남아 이제 어떻게 농사를 짓고 살아가야 할 지 눈앞이 캄캄해 졌다"고 하소연했다.
이날 울진국민체육센터를 찾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이재민들의 하소연이 쏟아졌다.
박순례(67·북면 주인리) 씨는 문 대통령에게 "정부가 이재민에 대한 대책을 신속하게 마련해 달라. 임시 대피소에서 지내기가 너무 불편하다"면서 "임시 집이라도 만들어 주면 고맙겠다"고 말했다.
80대 남성은 "대통령님 도와 주이소. 도와 주이소"라고 거듭 외쳤다.
문 대통령은 이재민들이 하루빨리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모든 행정력을 동원해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울진지역에는 이날 오후 6시 현재 269 명의 이재민이 대피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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