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 제1조다. 상징적이지만 여기엔 '민주'주의의 본질이 그대로 담겼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선거를 통해 실현된다. 선거관리는 공정해야 한다.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 등 선거 4대 원칙은 지켜야 한다. 선거와 국민투표의 공정한 관리를 위해 독립된 선거관리위원회까지 둔 이유다. 이런 조건들이 충족되고, 충실히 이행될 때 비로소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라 할 수 있다.
선관위가 제20대 대선 사전 투표 과정에서 또다시 부정투표 논란을 일으킨 것은 그래서 유감이다. 코로나19 확진자와 격리자를 위한 사전 투표장에서 항의가 빗발쳤다. 기표를 마친 투표용지는 유권자가 직접 투표함에 넣는 것이 원칙이다. 그럼에도 선거관리원이 표를 박스나 쇼핑백, 속이 훤히 비치는 비닐 등에 제멋대로 받았다가 멀리 떨어진 투표함에 넣었다. 투표함은 유권자가 넣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곳에 있지도 않았다. 중간에 표가 사라지는지, 선거관리원이 투표 내용을 훔쳐보는지 확인 불가였다. 심지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에 이미 기표된 투표용지를 받아든 사례가 잇달아 나왔다. 선관위는 "기표가 된 용지가 들어 있던 봉투와 투표용지를 준 것"으로 실수라고 했다. 하지만 초박빙이라는 선거에서 하필 특정 후보에 쏠린 투표용지들만 나온 것인지 의문은 여전하다. 선거부정 여부를 떠나 개표일에나 공개되어야 할 결과가 미리 알려졌으니 비밀선거 원칙도 무너졌다. 선관위는 헌법 정신을 명백히 훼손했다.
선관위가 편파성 논란에 휩싸인 것이 처음도 아니다. 지난해 4·7 재보선을 앞두고는 한 여성단체가 벌인 '보궐선거 왜 하죠?' 캠페인에 대해 선거법 위반이라 판단했다. 구호가 특정 정당과 후보자를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이라는 이유였다. '내로남불'도 같은 이유로 '사용 불가' 결정을 내렸다. 그러더니 이번엔 여당이 요구한 '청와대 굿당'이니 '살아 있는 소의 가죽을 벗기는 세력' 같은 문구는 '표현의 자유'라고 했다. 반면 국민의힘이 '대장동' 비리 의혹과 관련해 제기한 "진짜 몸통은 설계한 이다"는 문구는 사용 불허 판정을 내렸다. '공정과 중립'이 생명인 선관위가 '기울어진 운동장' 소리 듣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가뜩이나 현재 중앙선관위원장은 '우리법 연구회' 출신 노정희 대법관이다. 선거법 위반으로 2심서 당선 무효형을 받았던 이재명 후보가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으며 극적으로 되살아난 재판을 맡았던 주심이었다. 6명 선관위원은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2명,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명한 2명, 민주당 추천 1명, 국회 여·야 합의 추천 1명 등이다. 8명 정원 중 2명은 공석이다. 중립이어야 할 선관위가 야당 몫 선관위원 한 명 없이 대선을 치른다. 이쯤되면 단 한 치의 의혹도 나오지 않도록 공정하고 투명하게 운영해도 시비를 피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사전 투표에서 특정인에 기표된 표가 나돌아 다닐 정도로 선거를 관리했다면 할 말을 잃는다. 노 위원장이 말하는 '엄정중립 공정관리'는 공허하다.
이번 대선 결과는 예측 불가다. 윤석열·이재명 두 후보 지지자들이 결집하면서 사전 투표율은 37%까지 치솟았다. 선거 결과 박빙의 결과가 나온다면 어느 쪽도 선거 승부에 승복하지 않을 우려가 크다. 선관위의 사소한 잘못도 선거 후 나라를 엄청난 후폭풍에 몰아넣을 수 있다. 선관위는 이번 사태에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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