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영화, 詩그림을 만나다] <7>듄(2021)

신비의 물질 '스파이스' 차지하려 싸움…고대 권력 투쟁 담고 있어
메시아 상징하는 주인공…신의 의도 무엇일까 생각하게 돼

감독: 드니 빌뇌브

출연: 티모시 샬라메, 레베카 퍼거슨, 오스카 아이삭

러닝타임: 155분

10191년,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후계자인 폴(티모시 샬라메)은 시공을 초월한 존재이자 전 우주를 구원할 예지된 자의 운명을 타고났다. 그는 어떤 계시처럼 매일 꿈에서 아라키스 행성에 있는 한 여인을 만난다. 아라키스 행성은 물 한 방울 없는 사막이지만 우주에서 가장 비싼 물질인 신성한 환각제 스파이스의 유일한 생산지로 이를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 치열하다. 황제의 명령으로 폴과 아트레이데스 가문은 죽음이 기다리는 아라키스 행성으로 향한다.

영화 '듄'의 한 장면.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영화 '듄'의 한 장면.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드니 빌뇌브 감독의 '듄'은 놀라운 SF영화이다.

그 무수한 SF영화의 심연 속에서 진주 같이 경이로운 찬란함을 던져주는 작품이다. 원작은 1965년 프랭크 허버트가 발표한 소설이다. 프리랜서 기자였던 그가 오리건주 해안가의 사구(듄)를 취재하던 중 아이디어를 얻어 쓴 작품이다. 그가 20년간 집필한 시리즈는 총 6권으로 방대한 서사에 독특한 세계관, 역사적 은유로 독자들을 놀라게 했다.

그래서 많은 창작자들이 영화로 옮기는 노력을 하였다. 칠레의 거장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는 러닝타임 16시간의 대작을 기획했고, 리들리 스콧 감독도 욕심을 냈다. 1984년 데이비드 린치 감독에 의해 영화로 제작됐으나 당시 조악한 제작 환경에서 영상으로 옮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니나 다를까 데이비드 린치의 '듄'은 노력만 가상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무참히 실패했다.

37년의 기다림 끝에 드디어 2021년 드니 빌뇌브의 '듄'이 첫 선을 보였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영화관을 찾은 필자는 영화가 끝나고도 일어설 수 없을 정도로 매혹됐다. "아니, 이게 가능해? 드니 빌뇌브, 도대체 뭐야?" 그는 '듄'의 서사를 이제껏 보지 못한 비주얼과 웅장한 스케일, 놀라운 음악으로 재창조했다.

'듄'의 시대적 배경은 10,191년. 이는 서기 'AD'가 아니라 '애프터 길드'인 'AG'이다. 서기 1만6천년 경 인공지능 컴퓨터를 파괴했던 베틀레리안 지하드 운동이 기점이다. 결국 서기로 치면 26,191년인 셈이다. 이는 '듄'의 세계관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고리 중 하나다. 미래인들의 원시적인 의복과 생활습성, 무기와 비행체의 형태, 행성간 이동 수단 등이 여기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A.I. 파괴운동'은 컴퓨터의 발달로 인한 인간성 상실을 막기 위한 인간들의 최후의 성전이었다. 이후 놀라운 연산 능력을 가진 인간(멘타트)이 컴퓨터를 대신하고, 멘타트의 능력을 가능하게 한 것이 사막행성인 아라키스에서만 발굴되는 신비의 물질인 스파이스이다. '듄'은 스파이스의 패권을 놓고 벌이는 제후 행성들의 전쟁이고, 이를 조종하는 것이 막대한 권력을 지닌 황제이다.

화가 김병호는 '모래의 역사: deja-vu'에서 아라키스 행성의 슬픈 역사를 빼곡히 채워놓았다. 청명한 밤하늘과 모래 행성, 그 아래 흐르는 오아시스, 그리고 고래가 핵심적이다. 아라키스 행성 심층에는 물이 존재한다. 영화에서 물을 추출하는 시설물이 등장하기도 한다. 스파이스만 아니었다면 아라키스는 이 물을 통해 풍요로운 행성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스파이스가 발견되면서 이 행성은 탐욕의 대상으로 침탈을 받는다. 마치 석유가 발견되면서 열강이 몰려든 20세기 중동을 떠올리면 쉬울 것이다.

이 물을 생산하는 것이 거대한 모래 벌레 샤이 훌루드의 유충이고, 물고기와 비슷했다. 영화에서 주인공 폴의 궁에 거대한 물고기 부조 벽화가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화가는 모래 벌레 대신 고래로 대치했다. 한때 고래는 지구의 밤을 밝히는 기름으로, 향료로 각광받았다.

'듄'은 먼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고대부터 이어온 권력 투쟁과 정치적 담론을 담고 있다. 그림 오른 쪽에 위치한 쌍두 독수리는 로마제국, 독일 나치 시대를 관통하는 권력의 상징이다. 기에디 프라임 행성의 하코넨 가문이 아라키스 행성의 프레멘 종족을 착취하고 약탈하는 파쇼의 근원이다.

그 외 사막에 자라는 잎의 이미지, 배에 누워있는 사람, 집의 이미지 등은 죽음과 안식, 희망과 우주의 끝없음을 의미하며, '99.999999'는 완전하지 못함을, '10101010'의 숫자 그 반대를 꿈꾸는 전산언어들이다.

소설가 백가흠은 산문시 '메신저의 부름'을 통해 '듄'의 시공간적 개념의 무상함을 읽어냈다. 'UDFy-38135539'는 2010년 확인된, 131억 광년 떨어진 지구와 가장 먼 천체이다. 태양과 지구의 거리는 약 1억500백만㎞. 빛은 1초에 30만㎞ 나아간다. 태양의 빛이 생겨나 우리 눈에 도달하기까지 8분 20초 걸린다.

1억 광년은 이 빛이 1억년 동안 가는 거리다. 전기 백악기에 탄생된 빛이 지금 우리 눈으로 본다는 말이다. 그것의 131배라면 상상도 할 수 없다. 듄의 10191년은 지구의 시간으로는 먼 미래지만, UDFy-38135539로 보면 아라키스는 시작조차 알 수 없는 존재이다. 과거와 현재, 미래의 구분마저 무색해 진다.

소설가는 '우리가 본 것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지 않는 그 시간. 듄, 그러니까'라는 말로 관념의 모호함을 적고 있다. '보내었지만 당도하지 않음으로 아직 존재하지 못하는 과거의 과거여.' '죽은 자들이 돌아와 산 자의 편에 섰다 과거는 미래가 되었고 현재는 과거가 되었다.'의 표현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우주의 시간으로는 우리의 시간을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에겐 미래이지만 어떤 별에서는 이미 사라져 버린, 아련하고 가늠되지 않는 공간과 태초의 신의 의도 같은 것만 잔상으로 남았다"고 영화 관람 후기를 전했다.

그렇다면 신의 의도는 무엇일까. 메시아는 영화가 지향하는 궁극적인 메시지다. 1억 년 전이나 후나 인간이 영원히 염원하고 갈구하는 것이 구원이다.

'듄'에서 구원자 메시아를 상징하는 두 집단이 있다. 퀴사츠 헤더락은 남자 메시아로 폴의 운명이고, 이를 잉태하는 것이 여성 종교집단인 베니 게세리트이다. 폴의 어머니 제시카가 바로 베니 게세리트로 이들은 메시아를 탄생시키고, 행성에 파견돼 메시아의 당도를 알리는 비밀 결사대, 선교사와 같은 역할을 한다. 황제가 우주의 실권을 잡고 있지만, 그의 뒤를 조종하는 협력자가 바로 베니 게세리트이다. 모계 중심의 여성성이 우주의 평화를 유지하는 성모인 셈이다.

영화에서 하늘은 항상 먼지 구름에 가득 쌓여 있다. 영화의 마지막, 폴이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사막 길을 떠날 때 비로소 하늘은 푸른빛을 찾는다. 화가의 그림에서 아라키스의 밤하늘은 별과 달이 청명한 푸른 하늘이다. 그 위에 쓰인 'Messiah'(메시아)는 베들레헴을 비추던 예수 탄생의 간절함이 아라키스 행성에도 깃들기 바라는 소망이다.

비록 시가 '우주는 돌고 돌아 제자리다. 어리석음을 구원하려는 메신저의 시도와 믿음이여!'라고 탄식했지만, 프랭크 허버트가 'In the week before their departure to Arrakis'(아라키스 행성으로 떠나기 전 주)라고 시작하는 '듄'의 첫 문장을 쓸 때 메시아는 이미 상정한 이미지였을 것이다.

김중기 영화평론가

◆그림

김병호 작, 모래의 역사: deja-vu, 130,8×162.2㎝, Acrylic on canvas, 2022.
김병호 작, 모래의 역사: deja-vu, 130,8×162.2㎝, Acrylic on canvas, 2022.

◆시

메신저의 부름

백가흠

10191은 UDFy-38135539의 오래된 옛날이고, 지구의 너무 먼 미래이며, 아라키스의 현재다 131억 광년 떨어져 있는 곳에서 우리를 향해 오고 있는 빛이 있으매 과거는 시작되지 않았다 이미 존재했었던 시간, 우주에서 가장 밝게 빛났던 곳, 이제 거의 모든 별이 이미 사라지고 없다 우리가 본 것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지 않는 그 시간, 듄, 그러니까

완벽해야한다, 과거에 대한 부정문을 쓴다, 그런 생각은 지금에서는 틀렸다는 것이다. 답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신의 입장에서 이런 짓은 그만두어야한다는 것이다 그 자신 말고는 그런 것을 알거나 신경을 쓰는 형상은 이 세상에 밖에 있다 확신을 갖는 일, 불필요한 것에 붙들려 있는 우주, 고로 우리는 과거에, 그 밖에 존재한다 듄,

우리는 우리의 근원이 아니다 먼저 있었던 교유(交遊)들이 미래에 있거나 먼 곳에 있거나 죽은 자 가운데 있다 속력의 속력보다 보다 앞섰고 과거였으며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빛이여. 보내었지만 당도하지 않음으로 아직 존재하지 못하는 과거의 과거여. 우주의 몸은 어둠으로 둘러싸여 빛을 발한다, 듄, 그래서

우리는 우리를 꿈꾸었다 허상을 실제처럼 실존을 본질로 바꾸면서 건축가의 집을 지었다 어떤 나무들은 끈질기게 살아남았고 뿌리가 곧 줄기와 잎이 되었다 그 무렵 죽은 자들이 돌아와 산 자의 편에 섰다 과거는 미래가 되었고 현재는 과거가 되었다

불가사의한 것이 신의 모습이다 구원자의 형상이 인간을 모래언덕 너머 가나안 사막으로 이끈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파멸있으라! 우리는 젖과 꿀이 흐르고 풍요로움이 넘쳐나는 오아시스의 게으른 나태를 찾아 떠난다 우리의 숙명이므로 그리하여 전쟁과 소멸의 축복에 이름이라! 우리는 반복된다 우리는 여전하다 우주는 돌고 돌아 제자리다 어리석음을 구원하려는 메신저의 시도와 믿음이여!

소설가 백가흠
소설가 백가흠
화가 김병호
화가 김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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