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경보음처럼 전화벨이 울렸다. 친구였다. 이 시간에 전화한 걸보니 급한 일임에 틀림없다. 출근 준비를 멈추고 전화를 받았다. 그의 목소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간밤에 자다가 깨서 숨이 쉬어지지 않아서 한숨도 못잤다는 것이다. 산소 결핍으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으로 끔찍한 새벽을 보냈다고 했다. 한 달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어서 응급실도 가고 여러 가지 검사를 해보았지만 아무 이상이 없었다. 모두가 깊은 잠에 빠져있을 시간에 홀로 깨어 숨을 못 쉬는 상황이라니. 이보다 더 잔인한 악몽이 또 있을까.
어젯밤의 그의 질식감은 공황 발작이었다. 공황 발작(panic attack)은 불안 장애 중에서 가장 수위가 높은 불안이다. 그런 일이 또 생기지 않을까 하는 예기불안이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기 시작한다. 고속도로 터널 안에서 숨이 막히거나
답답함을 경험했다면, 터널을 피하게 되고, 시내에 차가 밀리면 갇힌 느낌 때문에 차를 버리고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이 든다. 지하주차장이나 엘리베이터 안에서 심장이 두근거리고 밀폐 불안이 엄습한다.
심장마비나 뇌출혈이 생겨서 갑자기 쓰러지거나 죽지 않을까 걱정해서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검사를 반복해서 받기도 한다. 검사결과는 정상이라고 하는데 본인은 신체 증상이 지속되니 의사들이 오진한 것은 아닌지 의심을 하고 또다른 의사를 찾아가게 된다. 이 모든 문제들이 자신의 마음이 강하지 못해서 또는 성격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증상을 숨기거나 우울증에 빠지기 쉽다. 공황장애는 평생 유병률은 3~5% 라고 알려져 있다. 요즘은 코로나로 마스크를 항상 착용하면서 공황 불안에 시달리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
공황불안은 왜 생기는 걸까. 유명 연예인들도 이 장애를 앓고 있다고 자주 소식을 접하게 된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종일수록 발병 위험성이 높다.장기간 지속되는 스트레스는 견디는 힘을 약화시켜서 살얼음이 꺼지듯이 갑자기 무너지게 한다. 가족들과 켜켜이 쌓인 불편한 감정들, 복잡한 사회관계에서 어려운 처신들, 몸이 아파도 일은 해야 하고, 통장 잔고와 당장 결재해야할 내역들이 눈앞에 버티고 있는 경제적 상황들 모두 스트레스 요인이다.
두 번째는 스트레스를 다루는 방식이 비효율적이라면 또한 위험하다. 무조건 참기만 하는 사람일수록 심한 불안이 올 가능성이 높다. 많이 눌린 스프링이 더 높이 튀는 원리다. 공황 발작은 열심히 일하고 막 성공가도에 오른 사람들이 위험하다.
스트레스를 술로 푸는 사람들이 많다. 일과를 마치고 폭탄주를 몇잔 들이키고 나면 걱정이 사라지고 잠도 잘 잘 수 있다고 술을 약삼아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공황발작은 전날 과음 후에 오는 경우가 가장 많다. 술은 잠시 불안을 속일뿐 진행되고 있는 내적 붕괴과정을 더 촉진시키는 가장 좋지 않은 방법이다.
나의 친구 역시 항상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달력에는 일정이 빈틈없이 빽빽하게 메모되어 있었고, 매일 모닝 커피로 몸을 깨우고 깊은 담배 한 모금으로 일과를 시작했다. 남에게 폐를 끼치거나 무리한 부탁을 절대 하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늘 부지런했고 친구도 많고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누구도 그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눈치 채지 못했다. 죽음의 공포까지 느낀 후에야 SOS를 보냈다.
중년에 찾아오는 무기력감을 카페인과 니코틴으로 근근이 버텨왔지만 그의 내면의 배터리는 충전의 기회가 없었다. 어느 날 문득 내리막을 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심리적 불안감인 상승정지증후군(rising stop syndrome)은 가족을 책임지고 있는 가장에게 가장 큰 스트레스다. 가장 안전한 마약배달원은 가족이 있는 가장, 거기에 아픈 자식이 있다면 가장 안전한 배달원이다. 드라마 <모범가족>에서 마약조직의 상선이 한 대사다.
스트레스는 심약하거나 우환이 있거나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 겪는 것이 아니다. 스트레스는 나쁜 자극에 맞서 이겨내려는 적응과정 증후군(adaptation syndrome)이다. 이 과정에는 우리 신체와 뇌, 그리고 마음까지 총동원 된다. 이 3가지는 한 팀이 되어서 침입한 적군을 물리치기 위해 동시에 움직인다. 몸 뇌 마음은 분리된 각자가 아니라 하나다. '밤송이'라는 신체 안에 '알밤'처럼 뇌와 마음이 나란히 들어있다고 하면 적당한 비유가 될것 같다.
몸이 병들면 마음이 힘들어지고 마음이 힘들어지면 신체에 병이 온다. 나는 스트레스는 없는데, 머리가 아프다, 소화가 안된다고 여러 병원을 전전하지 말고 심리적 상태를 점검받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리 약을 먹어도 낫지 않는 두통, 역류성 식도염, 방광염 증상이 있다면 정신과 상담을 권한다. 외롭다, 지친다, 힘들다고 감정과 느낌을 털어놓을 수 있어야 뇌가 맑아지고 위산 역류도 줄어든다.
평소에 쉰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고, 코로나에 걸려야 쉬고, 교통사고가 나야 입원하고, 암에 걸려야 건강을 돌보는 어리석음은 없어야한다. 마음이 가벼워지면 뇌가 회복되고, 뇌가 건강해야 비슷한 스트레스나 사건이 닥쳐도 미리 예상하고 잘 지나갈 힘이 생긴다.
머릿속이 걱정으로 가득 차 있으면 새로운 생각이 들어올 공간이 없다. 일어나지도 않을 일들을 미리 걱정하느라고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봐야 한다. 산사에서 목탁을 두드리다가 꾸벅꾸벅 조는 스님의 뇌가 가장 건강한 상태가 아닐까. 텅 비어있는 백지의 달력, 오후의 멍때리기, 해질녘 가로수의 긴 그림자와 동행하는 느린 산책. 커피나 담배 대신 이런 취향으로 갈아타는 것은 어떨까.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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