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이었다. 주차장에 세워둔 차 밑에서 꺼림칙한 기분이 느껴졌다. 고개를 기울여보니 새끼고양이 한 마리가 죽어 있었다. 아내는 자기는 저런 거 못 치운다면서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럼 나라고 치워봤겠니. 할 수 없이 미간을 찌푸리며 그 녀석을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렸다. 그래도 꺼림칙한 기분은 영 가시질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후 또 다른 고양이 한 마리가 차 밑에 죽어 있었다. 이 녀석들은 왜 하필 남의 차 밑에 와서 이러는 걸까. 고양이 사체를 치우는 일은 곤욕이었다. 다른 건 괜찮은데 제발 여기 와서 죽지 좀 마. 그 뒤로 나는 어딘가 아파보이는 녀석들이 보이면 조금씩 밥을 챙겨주기 시작했다. 죽지 말라고. 아니, 정확히는 내 차 밑에 와서 죽지 말라고.
그렇게 밥을 챙길 고양이들이 늘기 시작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죽지 말라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고양이들이 죽지 않고 살아갈 방법들을 찾게 됐고, 콧물 흘리는 녀석, 침 흘리는 녀석, 증상에 맞게 약도 먹이게 됐다. 그래도 꼭 오늘내일 할 녀석들은 생기기 마련이었지만.
2년 전 겨울날도 그랬다. 급작스런 한파가 예보된 날이었는데, 그날따라 평소 감기가 심했던 새끼고양이 녀석이 비틀거리고 있었다. 나는 또다시 꺼림칙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다.
저대로라면 또 내 차 밑에 와서 죽을 텐데. 더 이상 고양이 사체를 치우고 싶지도 않았지만, 한편으론 그렇게 죽을 거라 생각하니 갑자기 그동안 이 녀석한테 들인 내 돈이며 정성이 아까워지기 시작했다. 특히 그 녀석은 우여곡절이 많아서 다른 녀석들에 비해 더 많은 돈과 정성이 들어간 녀석이었다. 짜증이 났다. 그동안 너한테 들인 돈이 얼만데.
그래서 에라 모르겠단 심정으로 아내와 함께 녀석을 집에 데려오기로 했다. 그대로는 얼어 죽을 게 뻔했으니까. 그렇게 병원에 데려가 치료를 받고 돌아오는 길에 녀석에게 단단히 일러줬다. "넌 내가 들인 돈이 아까워서 구해준 거야. 안 그랬으면 지금쯤 하늘나라로 갔을 테니까. 그러니 이제 남은 생은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 하지만 그때 녀석은 내 말을 들으면서 하품을 하고 있었다. 그때 알아차려야 했다. 그게 얼마나 의미 없는 말이었는지를.
지금도 녀석은 내가 말할 때마다 지겹다는 듯 하품을 하곤 한다. 하품만 하면 다행이지, 대개 고양이들이 그렇듯 '물에 빠진 사람 구해주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식이다. 아마 그 속담의 진짜 주인공은 고양이었을 거다. 집에 온 뒤로는 본격적인 주인 행세를 하기 시작했는데, 집 한가운데 드러누워 밥이며, 간식이며, 잠자리며 다 내놓으란 식이다. 심지어 요즘에는 녀석이 반말로 그걸 시키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아직 나이도 한참 어린놈이.
한데 졸지에 그런 '시중'까지 들다보니, 문득 나 역시도 녀석처럼 살고 있는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내가 이 사회 속에서 죽지 않고 살아가기를 바라며 많은 것들을 챙겨주고 있는 게 아닐까. 가족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나와 녀석의 관계처럼 아무 혈연이 얽혀있지 않은 사람들도 말이다. 그게 나처럼 꺼림칙해서든, 불쌍해서든, 아니면 뭐가 아까워서든지 간에. 그런 게 없었다면 지금의 삶이 가능하기나 했을까. 어이없이 주인 행세 하는 고양이를 보면서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곤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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