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모스크바에서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의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2021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드미트리 무라토프 노바야 가제타 편집장이 고르바초프의 영정 사진을 들고 운구 행렬을 이끌었다. 푸틴은 장례식에 불참했다. 이런 장례식 풍경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며, 러시아 현대사가 응축되어 있다. 고르바초프와 푸틴은 오늘날 러시아에서 가장 강력하고 대립적인 두 대안을 상징하고 있다.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마르크스가 1848년 발표한 '공산당 선언'은 이렇게 시작된다. 공산주의에 열광한 건 누구보다도 지식인들이었다. 계급 없는 사회라는 유토피아 때문이다. 지식인은 현실보다 이상을 먹고 산다. 하지만 공산주의는 일종의 지평선이다. 브레즈네프가 공산주의의 빛나는 미래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한 늙은이가 말했다. "멋진 연설이었소. 이제 우리 같은 늙은이도 공산주의가 도래하는 걸 볼 수 있겠구려. 질문 하나만 합시다. '공산주의의 새벽이 이미 지평선 너머에서 시작되고 있다'고 했는데, 정확히 지평선이란 게 뭐요?" "하늘과 땅이 만나는 가상의 선이오. 그런데 그 지평선은 사람이 가까이 가면 계속 뒤로 물러나죠." 노인이 중얼거렸다. "이제야 무슨 말인지 알겠구먼."
처음에 해방의 복음이었던 공산주의는 결국 재앙으로 끝났고, 아직 끝나지 않은 재앙이다. 1917년 혁명 이후 70년간 소련에서는 4천만 명 이상이 희생되었다. 1천300만 명이 농업 집단화 과정에서, 800만 명이 내전에서, 2천만 명 이상이 스탈린 압정하에서 죽었다. 더 중요한 건 자유가 완전히 파괴되었다는 점이다. 현실로 나타난 공산주의는 전체주의였다. 한 인간이 전체를 위해 모든 걸 생각하고, 그 밖의 사람은 사고를 멈췄다. 소련에서 '생각하기'는 범죄였다. 솔제니친은 강제수용소에, 사하로프는 정신병원에 수감되었다.
이 스탈린 체제의 가슴에 비수를 꽂은 게 고르바초프였다. 고르바초프의 고향은 스타브로폴 프리볼노예이다. 코카서스산맥과 볼가강 하류에 펼쳐진 카자흐의 광대한 스텝 지대에 있다. 어린 시절 그의 할아버지는 쿨라크(부농)로 찍혀 시베리아 유형을 떠났다. 외할아버지는 트로츠키파로 몰려 모진 고문을 당했다. 핍박받고 가난에 찌든 삶은 러시아 농민의 오랜 숙명이었다. 차르 대신 공산당이 집권해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빈농 출신이지만 총명했던 고르바초프는 모스크바대학에 진학했다. 그때 이미 "농부들의 삶은 사실상 노예의 삶이나 다름없었다. 세금 정책은 한마디로 수탈 수준이었다. 스탈린 정권은 농부들을 농노처럼 취급했다"고 간파했다. 그건 이론이 아니라 고향에서 몸소 체험한 것이었다. 1979년 정치국원 세바르드나제는 고르바초프에게 소련이 "머리 꼭대기부터 발끝까지 모조리 썩었다"고 비판했다. 고르바초프 역시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동의했다.
1985년 최고 지도자가 되자 고르바초프는 페레스트로이카(개혁), 글라스노스트(개방)로 알려진 파격적 개혁에 착수했다. 스탈린 체제를 해체하는 게 최종 목적이었다. 그러나 결국 실패했다. 일단 자유화가 시작되자 개혁은 곧바로 격류로 변했다. 소련 국가 자체가 공중분해되어 버렸고, 세계 최강대국에서 굴러떨어졌다.
지금 러시아는 푸틴과 고르바초프, 사하로프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다. 푸틴은 스탈린의 분신이다. 스탈린 체제는 러시아인의 심장에 깊숙이 존재해 왔다. 페레스트로이카가 한참 진행 중인 1989년 러시아인의 40%가 '강한 손'을 가진 지도자의 부활을 열망했다. 민족주의자들은 고르바초프가 조국을 진흙탕에 내팽개쳤다고 비난한다. 스탈린은 아직 살아 있는 신화다. 우크라이나 침공도 그렇게 일어났다.
고르바초프는 영원한 레닌주의자였다. 레닌은 볼셰비키의 실패를 인정했고, 반대파의 의견에 귀 기울였다.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의 미래를 믿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의 가장 큰 잘못은 '사회주의를 보다 잘하려고 한 것'이었다. 그래서 핵물리학자이자 러시아의 양심이었던 사하로프는 죽음 직전에 "고르바초프는 나에게 패러독스"라고 말했다. 그는 사회주의를 믿지 않았다. 인간은 도달할 수 없는 걸 사랑한다. 그게 역설적으로 인간의 비극을 초래한다. 공산주의는 그 한 사례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의 586 중 일부는 아직도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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