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와 구미시가 체결했던 '맑은 물 협정'이 깨졌다. 깨진 협정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구시와 경상북도가 매일 구미시 해평취수장 물 30만 톤을 쓰는 대가(代價)로 매년 대구시와 정부가 각각 100억 원을 지급한다. 구미시가 대가를 더 달라고 하는데 대구시는 더 주지 않겠다고 하니 협정이 깨질 수밖에 없다. 협정은 협상의 결과다. 협상의 본질은 거래다. 조건이 안 맞으면 거래가 성사되지 않는다. 수요자가 지불하려는 대가가 공급자가 받으려는 것보다 커야 거래가 성사된다. 왜 더 달라고 하느냐, 왜 더 주지 않느냐 다툴 이유가 없다. 그것은 소음(騷音)에 불과하다. 홍준표 대구시장 말이 맞는다면 요금 인상 없이 안동시에서 깨끗한 물을 끌어올 수 있다. 수로(水路) 건설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국비 지원도 추진한다고 한다. 두고 볼 일이다.
대구시와 구미시의 '먹는 물 분쟁'이 우리에게 시사(示唆)하는 바가 크다. 근본적인 문제는 물 주인이 누구인가이다. 주인이 있으면 분쟁은 발생하지 않는다. 거래만 가능하다. 주인이 있는 물건을 사용하려면 그가 원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지불하지 않으면 사용하지 못한다. 원칙적으로 낙동강은 국가 소유다. 구미시를 지나는 낙동강의 주인은 구미시가 아니다. 하지만 구미시의 관리 권한이 인정된다. 그러기에 대구시가 물을 끌어오려면 구미시가 동의해야 한다. 동의를 얻으려면 구미시가 원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협상에는 비용이 든다. 협상이 타결되기까지 긴 시간이 흐르거나 심한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협상 비용이 너무 크면 이해관계가 없는 제3자가 개입해야 한다. 이해관계가 없으면 손님의 관점에서 해결책을 찾는 것이 가능하다. 이를 객관(客觀)이라 한다. 현실적으로 제3자는 법원과 정부다. 당사자들이 소송을 제기하면 법원이 개입한다. 법원이 물 가치를 계산해서, 대구시가 구미시에 물값을 지불하고 구미시는 대구시에 물을 공급하게끔 강제할 수 있다. 물론, 소송에도 시간과 비용이 든다. 경우에 따라서는 소송 비용이 협상 비용보다 크다. 정부가 물 가치를 계산해서 미리 요금표를 제시할 수도 있다. 대구시가 정해진 요금을 구미시에 지불하고 물을 사용하면 협상이 필요 없다. 협상이 없으니 갈등도 없다.
사전(事前)에 분쟁을 방지하는 것이 사후(事後)에 해결하는 것보다 낫다. 비용이 적게 들고 불확실성을 없앨 수 있다. 먹는 물 분쟁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물 사용 요금표'를 만드는 것이다. 이 방법에도 문제는 있다. 정부가 책정한 '객관적' 요금이 시민들이 느끼는 주관적(主觀的) 가치와 다르다. 관건(關鍵)은 물 가치를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이다. 물의 가치를 어떻게 측정하는가. 물을 마시는 시민들에게 직접 묻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보다 더 정확하고 쉬운 방법은 없다. 대구시장과 구미시장이 말싸움할 필요가 없다.
대구 시민에게 "깨끗한 물을 마시는 대가로 얼마를 내겠는가", 구미 시민에게는 "깨끗한 물을 주는 대가로 얼마를 받겠는가"라고 물어야 한다. 설문조사는 이럴 때 한다. 연예인 병역을 면제하기 위해 설문조사를 하는 것이 아니다. 대구 시민이 내겠다는 금액은 구미 시민이 받겠다는 금액보다 작을 것이다. 대구 시민이 얻는 효용(效用)은 구미 시민이 느끼는 비효용(非效用)보다 작다. 사람은 고통에 비해 쾌락을 작게 느끼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나라에는 수학, 통계학, 공학, 사회과학 전문가가 많다. 이들은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비교적 정확하게 물 가치를 계산한다.
대구시 동구, 북구 주민들이 소송 없이 '군소음보상법'으로 정한 보상금을 받았다. 의미 있는 진전(進展)이다. 먹는 물 분쟁에도 같은 제도를 도입할 수 있다. 정부가 원자력발전소 근처에 방사성폐기물을 저장하려고 한다. 발전소를 유치했다고 해서 폐기물을 저장할 의무는 없다. 특정 지역에 방사성폐기물을 저장하려면 주민들과 협상해야 한다. 주민들에게 "방사성폐기물을 저장하는 대가로 얼마를 받겠는가"라고 물어봐야 한다. 그것이 협상의 시작이자 끝이다. 보상이 없으면 협상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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