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 시절 음악대학 동기들은 강의 시간을 제외하고는 연습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당시 나는 대명동 캠퍼스 동산도서관으로 등교해서 일단 가방으로 한 자리를 맡아 두고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나만의 연구실이었다. 거기서 막연하게나마 유학을 준비하고 영어공부를 했다. 도서관에는 샛별 동문 선배들(효성여고, 대륜고)이 많았다. 그들과 점심을 같이 하고, 자판기 커피도 마시고, 다 마신 종이컵은 접어서 컵 차기도 했다. 긴 머리에다 악보를 한 손에 들고 지나가던 피아노과 동기들은 그런 나의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캠퍼스 밖에서는 타대학생들과 작은 독서 모임을 만들어 '쇼펜하우어'를 읽고 열띤 토론을 했다. 나는 당시 그 철학자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토론하는 만남이 좋았을 뿐. 지금은 사라져버린, 동성로 전통 찻집에서 우리는 만났다. 주인은 서비스로 몇몇의 사주를 봐주기도 했다. 내 사주에는 책이 세 개가 있다는 말이 기억난다.
유학 시절 방학을 이용해 한국에 들어오면 집 근처에는 용학도서관이 있었다. 열람실을 연구실처럼 사용하며 반겼던 터라, 나는 부모님을 포함한 지역 주민들을 위해 지난 1월부터 매주 '임진형의 음악인문학' 강좌를 맡아서 하고 있다.
오랜 해외 생활을 마치고 귀국해 문화적, 사회적 차이를 느끼면서 한국사회 생활에 적응하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가 않았다. 무엇보다 영국에서의 음악학 박사과정 시절, 학술세미나에서 발표하고 토론했던 시간들이 그리워졌다. 나는 수성도서관 '빛소리 독서회' 등 독서모임에 참가했다. 빛소리 독서회는 특히 시각 장애인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었기에 남다른 의미와 감회가 있다. 시각 장애인들은 음성기기로 듣고 이해해야 하기에 전체 맥락을 파악하는 것이 어렵다고들 한다. 적어도 세 번은 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줄을 긋고 필기해가며 편하게 책을 읽는 나로선 겸손과 일상의 소중함을 배우는 시간이다.
지난 7월부터 범어도서관에서 글쓰기 수업에 참가하고 있다. 글을 잘 쓰는 테크닉을 배우고 싶어서였다. 글쓰기 강사는 말한다. 글을 잘 쓰는 방법은 다름 아닌 '다작'이라고. 매주 제출해야 하는 숙제가 밀려 있다. 옆자리에 앉은 여든 넘은 어르신은 어린 시절 사고로 청력을 잃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주 과제는 제일 먼저 제출한다. 그분의 열정에 나는 한없이 숙연해진다.
지난 토요일 두류도서관에서 대구챔버페스트와 함께하는 '두류음악회'가 열렸다. 천장이 낮은 시청각실이었지만, 유럽의 살롱 음악회 못지않은 현장감이 있고 울림이 좋았다. 해설과 함께 하는 연주는 청중들의 이해와 감동을 크게 고조시킨 힐링의 시간이었다. 누군가는 몸과 마음의 병이 다 나았다고 기쁨의 눈빛을 전한다. 음악을 전공한 것이 다행스럽다.
도서관은 한여름 아름드리 나무의 그늘과도 같다. 쉼이 얼마나 아름답고 힘이 되는지, 더욱이 새소리, 바람소리 같은 음악회라도 가질 것 같으면 일상의 즐거움과 행복은 배가된다. 미래를 꿈꾸며 준비하는 누군가에게 도서관은 지붕이 있는 개인 연구실이 되기도 하고, 더러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할 수 있는 '판'이 되기도 한다. 도서관은 건물 이상의 의미를 갖는 우리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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